凡營衣食
에 以不失時爲本
이라 夫不失時者
注+① 夫不失時者:夫, 音扶, 後同.는 在人君簡靜
이라야 乃可致耳
라 若兵戈屢動
하고 土木不息
하면 而欲
나 其可得乎
아
王珪曰 昔秦皇漢武
가 外則窮極兵戈
하고 內則崇侈宮室
하여 人力旣竭
하여 禍難遂興
注+② 禍難遂興:難, 去聲.하니
亡隋之轍
이 하니 陛下親承其弊
하사 知所以易之
注+③ 知所以易之:易, 如字.니이다
然在初則易
注+④ 然在初則易(이):以豉切.나 終之實難
이니 伏願
라야 方盡其美
니이다
君無爲則人樂
注+⑤ 無爲則人樂:樂, 音洛.하고 君多欲則人苦
니 朕所以抑情損欲
하며 剋己自勵耳
로다
注
【集論】愚按 太宗之言曰 國以人爲本하고 人以衣食爲本하며 營衣食은 以不失時爲本하고 人不失時는 以人君簡靜爲本이라하니 竊嘗因其言而推之컨대
自古興王之君
은 未有不簡靜寡欲者也
요 自古亡國之君
은 未有不淫侈多欲者也
라 至哉
라 太宗之言乎
여 其可謂知本者矣
로다 雖然
이나 이니
太宗이 旣以隋之崇侈宮室爲鑑矣로되 而復有飛仙翠微之作하고 旣以隋之窮兵黷武爲鑑矣로되 而復有高麗西域之師라
魏徵曰
라하고 王珪曰 在初則易
나 終之實難
이라하니 然則向非二臣之言
이면 又豈能始終踐言也哉
리오
정관貞觀 2년(628)에 태종太宗이 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모든 일은 근본을 힘써야 하니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의식衣食을 근본으로 삼소.
의식을 경영할 땐 제철을 놓치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소. 제철을 놓치지 않는 것은
注+부夫(무릇)는 음音이 부扶이다. 뒤에도 같다. 임금이 간소하고 차분히 해야만 이룰 수 있소. 만일 전쟁을 자주 일으키거나 토목공사를 쉬지 않는다면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려고 해도 가능하겠소.”
왕규王珪가 말하였다. “옛날
진 시황秦 始皇과
한 무제漢 武帝가 밖으로는 전쟁을 끝없이 벌이고 안으로는 궁궐을 호사스럽게 꾸며 인력이 바닥나서 재앙과 난리가 결국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注+난難(난리)은 거성去聲이다.
그들이 어찌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백성을 편안하게 할 방법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수隋나라를 망하게 한
전철前轍이 거울로 삼을 것이 멀리 있지 않은데 폐하께선 친히 그 폐해를 이어받아 바꾸실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注+역易(바꾸다)은 본래의 음의音義대로 독해한다.
하지만 시작은 쉽지만
注+〈역易(쉽다)는〉 이以와 시豉의 반절이다. 끝마치기가 실로 어려우니 부디 끝까지 신중하기를 처음처럼 하셔야만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극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공公의 말이 옳소.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오직 임금에게 달려 있소.
임금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없으면 백성들이 즐겁고
注+낙樂(즐겁다)은 음音이 낙洛이다. 임금이 욕심이 많으면 백성들이 괴롭소. 이는 짐이 감정을 억제하고 욕심을 줄이며, 자신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엄히 다스리려는 이유이오.”
注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이,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의식衣食을 근본으로 삼으며, 의식을 경영할 땐 제철을 놓치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제철을 놓치지 않는 것은 임금이 간소하고 차분한 것을 근본으로 삼소.” 라고 했는데, 삼가 그 말을 따라 다음과 같이 추론해본 적이 있다.
순舜임금이 안일에 빠지지 않은 것은 온 나라가 모두 편안한 것의 근본이 되었고, 우禹임금이 집안에서 능히 검소한 것은 남북에 교화가 미치는 근본이 되었고,
탕湯임금이 음악과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은 것은 만방萬邦에 의표가 되는 근본이 되었고, 문왕文王이 감히 사냥놀이에 빠지지 않은 것은 백성들을 감싸고 보호하는 근본이 되었다.
예로부터 왕도王道를 일으킨 임금은 간소하고 차분하여 욕심을 적게 갖지 않은 자가 없고, 예로부터 국가를 망하게 한 임금은 음탕하고 사치하여 욕심이 많지 않은 자가 없다. 훌륭하도다! 태종의 말이여. 근본을 알았다 할 만하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어렵다.
태종은 수隋나라가 궁궐을 호화롭게 지은 것을 경계로 삼았으면서도 다시 비선궁飛仙宮과 취미전翠微殿을 짓고, 수隋나라가 전쟁을 끝까지 하여 무도武道를 어지럽힌 것을 경계했으면서도 다시 고구려高句麗와 서역西域에 병사를 동원했다.
위징魏徵이, “시작을 잘하는 예는 실로 많지만 끝까지 잘하는 예는 적다.” 라고 하고, 왕규王珪가, “처음은 쉽지만 끝마치기는 실로 어렵다.” 고 했다. 그렇다면 예전에 신하의 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말을 실천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