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德二年
에 謂長史郭孝恪曰
注+長, 音掌. 郭孝恪, 許州人. 初附密爲長史. 後謁秦王, 上策擒竇建德, 拜上柱國. 後遷大總管, 破龜玆國, 爲流矢所中而卒. 魏公
이 旣歸大唐
이나 今此人衆土地
는 魏公所有也
라
吾若上表獻之면 則是利主之敗하여 自爲己功하여 以邀富貴니 是吾所恥라
今宜具錄州縣及軍人戶口
하여 總啓魏公
하여 聽公自獻
이면 此則魏公之功也
니 不亦可乎
아하고 乃遣使啓密
注+使, 去聲, 後同.이라
使人初至에 高祖聞無表하고 惟有啓與密하고 甚怪之러니 使者以勣意聞奏하니 高祖方大喜曰 徐勣이 感德推功하니 實純臣也라하다
拜黎州總管
注+黎州, 今濬州, 隷腹裏.하고 賜姓李氏
하여 附屬籍于宗正
注+唐制, 宗正府掌親屬以别昭穆, 宗室居之.하고 封其父蓋爲濟陰王
注+濟, 上聲, 瀆名.한대 固辭王爵
이어늘 乃封舒國公
하고 授散騎常侍
注+唐制, 掌規諷過失‧侍從顧問之職.라
及李密反叛伏誅
하여는 勣發喪行服
注+喪, 平聲.하여 備君臣之禮
하고 表請收葬
하니 高祖遂歸其屍
라
於是
에 大具威儀
하여 三軍縞素
注+三軍, 上軍‧中軍‧下軍也.하여 葬於黎陽山
注+在今濬州.하고 禮成
에 釋服而散
하니 朝野義之
라
尋爲竇建德所攻
하여 陷於建德
한대 又自拔歸京師
注+竇建德, 貝州人. 世爲農, 材力絶人. 大業中, 募兵伐遼, 補隊長. 後據渤海, 自立爲夏王, 建元置官屬. 武德初, 擒化及於魏縣, 進兵攻勣, 力屈降之, 收勣父爲質, 令勣復收黎陽. 三年, 勣自拔歸京師. 四年, 從太宗平建德, 於是獲而斬之.하여 從太宗
하여 征王世充竇建德
하여 平之
라
무덕武德 2년(619)에
장사長史 곽효각郭孝恪에게 이르기를
注+장長(어른)은 음이 장掌이다. 곽효각郭孝恪은 허주許州 사람이다. 처음에 이밀李密에게 귀의하여 장사長史가 되었다가 뒤에 진왕秦王을 알현하고 뛰어난 계책으로 두건덕竇建德을 사로잡아 그 공로로 상주국上柱國에 임명되었다. 뒤에 대총관大總管으로 승진하여 구자국龜玆國을 토벌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
위공魏公(李密)이 이미
당唐나라로 귀의했지만 지금 이 백성들과 토지는 위공의 소유이다.
내가 만일 표문表文을 올려 이것을 바친다면 이는 주군의 패배를 이용하여 자신의 공으로 삼아 부귀를 구하는 것이니, 내가 부끄럽게 생각한다.
지금 주현과 군인과 호구를 모두 기록해 위공에게 모두 보고하여 위공이 스스로 바치게 하면 이는 위공의 공로가 되니 옳지 않겠는가.”라고 하고, 사신을 보내 이밀에게 보고했다.
注+사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사신이 처음 이르렀을 때 표문은 없고 이밀에게 보고하는 글만 있다는 말을 듣고 고조高祖가 몹시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사신이 이적李勣의 생각을 아뢰자 고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서적徐勣이 덕에 감화되어 공을 주군에게 미루니 참으로 순수한 신하이다.”라고 하였다.
여주총관黎州總管에 임명하고
注+여주黎州는 지금의 준주濬州이니, 복리腹裏에 속한다.이씨李氏 성姓을 하사하여 본적을
종정宗正에 예속시키고
注+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종정부宗正府는 황제의 친속親屬에 관한 일을 관장하여 소목昭穆의 차례를 구별하니, 종실宗室이 맡는다. 그의 부친
개蓋를
제음왕濟陰王에 책봉하였는데,
注+제濟(물 이름)는 상성上聲이니, 강의 명칭이다. 왕의 작위를 굳이 사양하자
서국공舒國公에 책봉하고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임명하였다.
注+〈산기상시散騎常侍는〉 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과실을 바로잡아 간언하며 시종侍從과 고문顧問의 직책을 담당한다.
얼마 뒤 이적에게
우무후대장군右武侯大將軍을 더해주었다.
注+〈우무후대장군右武侯大將軍은〉 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무력으로 호위하는 직책이다.
이밀이 반란을 일으켜 죽임을 당하자 이적이
발상發喪을 하여 상복을 입은 채
注+상喪(초상)은 평성平聲이다. 군신의 예를 갖추고 표문을 올려 시신을 거두어 장례 지낼 것을 청하니, 고조가 결국 시신을 돌려주었다.
이에 크게 예의를 갖추어
삼군三軍이 상복 차림으로
注+삼군三軍은 상군上軍‧중군中軍‧하군下軍이다.여양산黎陽山에서 장사를 지내고,
注+〈여양산黎陽山은〉 지금의 준주濬州에 있다. 장례를 마친 뒤에 상복을 벗고 해산하니 조정과 민간에서 의롭게 여겼다.
이적은 얼마 뒤
두건덕竇建德에게 공격을 받아 패하였는데, 스스로 탈출하여 서울(장안)로 돌아와
注+두건덕竇建德은 패주貝州 사람이다. 대대로 농사를 지었고, 재주와 힘이 남보다 뛰어났다. 대업大業(605~616) 연간에 병력을 모집하여 요동遼東을 정벌할 때 대장隊長에 보임되었다. 뒤에 발해渤海를 점거 스스로 하왕夏王이 되어 연호年號를 정하고 관속을 두었다. 무덕武德(618~626) 초기에 위현魏縣에서 우문화급宇文化及을 사로잡고, 군대를 보내 이적李勣을 공격하여 위세로 굴복시킨 뒤 이적의 부친을 잡아 볼모로 삼아 이적에게 여양黎陽을 수복하게 하였다. 무덕 3년(620)에 이적이 스스로 탈출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무덕 4년(621)에 태종太宗을 따라 두건덕을 진압하였는데, 이때 두건덕을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태종太宗을 따라
왕세충王世充과
두건덕竇建德을 정벌, 평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