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七年에 太宗이 謂司徒長孫無忌와 司空房玄齡曰
三師는 以德道人者也니 若師體卑면 太子無所取則이라하고
於是詔令
注+ 詔令:令, 平聲.撰太子接三師儀注
호대
太子出殿門迎하여 先拜三師어든 三師答拜하고 每門에 讓三師하며 三師坐어든 太子乃坐하고
注
【集論】愚按 太宗制太子接三師儀注하여 委曲尊隆하니 意亦至矣라
師嚴然後道尊이어늘 況元良而屈體하여 盡敬於師傅하니 其關繫豈不尤重也리오
師는 道之敎訓이요 保는 保其身體요 傅는 傅之德義라
又不止於儀注之文而已니 爲君父者는 不可不考於賈誼之書라
정관貞觀 17년(643)에 태종이 사도司徒 장손무기와 사공司空 방현령에게 말하기를
“삼사三師는 덕행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사람들이니, 만약 스승의 체모가 낮으면 태자가 본보기를 취하는 바가 없을 것이오.” 라고 하고,
이에 조서를 내려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태자가 삼사를 대하는
의주儀注(
예절禮節 제도制度)를 편찬하게 하였는데,
“태자가 전각 문을 나와서 영접하여 먼저 삼사에게 인사를 하면 삼사가 답례를 하고, 문에 이를 때마다 삼사에게 양보하며, 삼사가 자리에 앉고 나면 태자도 자리에 앉는다.
삼사에게 올리는 글은 전면에 ‘황공惶恐’이라고 쓰고, 후면에 ‘황공재배惶恐再拜’라고 쓴다.” 라고 하였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이 태자가 삼사를 대하는 의주儀注를 제정하여 곡진하게 존중하였으니, 뜻이 또한 지극하다.
스승이 엄한 뒤에야 도가 높아지는 법인데, 더군다나 황태자가 몸을 낮추어 사부師傅에게 극진하게 공경하였으니, 그 관계되는 점이 어찌 더욱 무겁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의賈誼가 《대대례기大戴禮記》 권3 〈보부保傅〉의 말을 인용한 것을 보았는데, 정사政事에 관한 글에 이르기를
“사師는 교훈敎訓으로 인도하고, 보保는 그 신체를 보호하고, 부傅는 덕의로 가르친다.
삼공三公과 삼소三少는 진실로 효孝‧인仁‧예禮‧의義를 밝혀 그것을 익히도록 인도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사師를 섬기며 도道를 묻고 물러나와 익히면서는 태부太傅에게 질정하는데, 태부太傅는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에 벌 주고 미치지 못한 점을 바로잡아준다.” 라고 하였다.
이는 옛날에 태자가 사부師傅를 가까이하던 실제 모습이다.
또한 의주儀注의 기록에만 그칠 뿐만이 아니니, 군부君父가 된 사람은 가의賈誼의 글을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