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初
에 太宗
이 從容
注+① 從容:從, 卽容切.謂侍臣曰 周武平紂之亂
하여 以有天下
하고 秦皇因周之衰
하여 遂呑六國
하니 其得天下不殊
로되 祚運長短
은 若此之相懸也
라하니
尙書右僕射蕭瑀進曰 紂爲無道
하여 天下苦之
라 故八百諸侯不期而會
注+② 故八百諸侯不期而會:武王伐紂, 諸侯會孟津者八百餘國.하고 周室微
에 六國無罪
어늘 秦氏專任智力
하여 蠶食諸侯
하니 平定雖同
이나 人情則異
니이다
太宗曰 不然하다 周旣克殷에 務弘仁義하되 秦旣得志에 專行詐力하니 非但取之有異라 抑亦守之不同하니 祚之修短이 意在玆乎인저
注
【集論】愚按 太宗君臣嘗論創業守成孰難이어늘 玄齡以創業爲難이라하고 魏徵以守成爲難이라하니 夫創業者는 旣往之事요 守成者는 方來之事也니 與其追論於旣往으론 曷若致力於方來者爲有益乎아
他日에 與群臣論周秦運祚長短之由하니 蕭瑀之言卽創業之事요 太宗之言卽守成之事也라 夫所貴乎君臣之間講論古今者는 欲其反之於己하여 而推之於治也라
取天下之事는 太宗旣已身親之矣하니 方當卽位之初하여 所宜監秦之所以失하고 効周之所以得하여 庶乎如周祚之長하고 不至如秦祚之短也라 嗚呼라 太宗之言은 可謂能切己近思者矣로다
정관貞觀 초년에
태종太宗이 조용히
注+종從(조용히)은 즉卽과 용容의 반절이다. 근신近臣들에게 말하였다. “
주 무왕周 武王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혼란을 평정하여 천하를 차지하였고,
진 시황秦 始皇은
주周나라가 쇠약해지자, 결국 6국을 병탄하였소. 그들이 천하를 차지한 것은 다르지 않으나
국운國運의 길고 짧음은 이처럼 현격하게 차이가 있소.”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소우蕭瑀가 말하였다. “
주왕紂王이 무도하여 천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였기 때문에 800명의 제후들이 약속을 하지 않고도 모였고
注+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할 때 맹진孟津에 모여든 제후들이 800여 국이었다., 주나라 왕실이 쇠약해지자 6국이 죄가 없는데도 진 시황이 오로지 지혜와 힘에 의지하여 제후국을 잠식하였습니다. 평정한 것으로 보면 비록 동일하지만 인정상으로는 차이가 있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소. 주周나라는 은殷나라를 무너뜨리고 나서 인의仁義를 펼치려고 노력하였지만, 진秦나라는 뜻을 얻고 나서 오로지 속임수와 무력만을 일삼았소. 천하를 차지한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역시 지키는 방법도 달랐으니, 국운의 길고 짧음이 다른 것은 그 의미가 여기에 있을 것이오.”
注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이 군신간에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는데, 방현령房玄齡은 창업이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고, 위징魏徵은 수성이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다. 창업은 지나간 일이고 수성은 앞으로의 일이니, 지나간 일을 따라 논하기보다는 어찌 앞으로의 일에 힘을 쏟아 유익함을 얻는 것만 하겠는가.
그 후에 여러 신하들과 주周나라와 진秦나라의 국운國運의 길이에 차이가 생긴 원인을 논하였는데, 소우蕭瑀는 창업을 가지고 말을 하였고, 태종은 수성을 가지고 말하였다. 군신간에 고금의 역사를 논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 일을 자신의 몸에 돌이켜 정치에 미루어 적용하기를 원해서이다.
천하를 차지한 일은 태종이 이미 자신이 직접 시행하였으니, 제위에 오른 초기에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원인을 살피고 주나라가 천하를 얻은 원인을 본받아, 국운이 길었던 주나라를 기대하고 국운이 짧았던 진나라처럼 되지 않는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아! 태종의 말은 자신에게 절실하고 가까이에서 생각한 것이라 말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