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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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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四年 太宗問蕭瑀曰
隋文帝 何如主也注+隋文帝, 姓楊, 名堅, 弘農人. 後周朝以元舅輔政, 位相國, 封隋王, 受周禪, 國號隋.
對曰
克己復禮注+論語, 孔子答顔淵問仁之辭, 言克去己私, 復還天理也.하며 勤勞思政하여 每一坐朝注+音潮. 或至日昃하고 五品已上 引坐論事하며 宿衛之士 傳飱而食注+飱, 音孫, 熟食也.하니 雖性非仁明이나 亦是勵精之主라하거늘


정관貞觀 4년(630)에 태종太宗소우蕭瑀에게 물었다.
문제文帝는 어떤 임금이었소?”注+ 문제文帝이고 이며 홍농弘農 사람이다. 후주後周(北周) 시대에 원구元舅로서 정사를 도와 지위가 상국相國이 되었으며 수왕隋王에 봉해졌고, 후주後周 정제靜帝의 선양을 받고는 국호를 라고 하였다.
소우가 대답하였다.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여 를 회복하였으며注+극기복례克己復禮는〉 《논어論語》 〈안연顔淵〉에서 공자가 을 묻는 안연에게 대답한 말이니, 자기의 사욕私欲을 잘 제거하여 천리를 회복함을 말한다. 애써 정사를 생각하여, 한번 조정에 앉을 때마다注+(조정)는〉 음이 이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 때까지 정무를 보는 경우가 있었고, 5품 이상의 관원을 자리로 인도하여 일을 논의하였으며, 숙위하는 군사를 시켜 저녁을 가져오게 하여 먹었으니,注+은 음이 이니, 익힌 음식이다. 비록 성품이 인자仁慈하고 명철明哲하지는 않았으나 또한 여정勵精(정신을 떨쳐 힘씀)한 군주입니다.”
隋 문제文帝隋 문제文帝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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