虞世南
이 初仕隋
하여 歷起居舍人
注+ 歷起居舍人:隋制, 掌書王言動作之事, 以爲國志.이러니
宇文化及
이 殺逆之際
注+ 宇文化及 殺逆之際:殺, 讀曰弑.에 其兄世基
가 時爲內史侍郎
注+ 其兄世基時爲內史侍郎:隋改中書爲內史.하여 將被誅
어늘
世南
이 抱持號泣
注+ 世南 抱持號泣:號, 平聲.하여 請以身代死
하되 化及
이 竟不納
하니
注
【集論】愚按 虞世基兄弟
가 出于吳中
하여 嘗從
學
하여
世基가 與宇文化及之難할새 世南이 不愛其身하여 求代其兄하니 其孝友가 可尙已라
世南이 歸唐하여 爲唐名卿하니 盖其溫恭豈弟가 出於天性云이라
우세남虞世南이 애초에
수隋나라에 벼슬해서
기거사인起居舍人을
注+수隋나라 제도에 의하면, 왕王의 말과 행동거지를 기록해서 국지國志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역임했다.
우문화급宇文化及이
양제煬帝를 시해할 즈음에
注+쇄殺(시해하다)는 읽기를 시弑로 한다. 그의
형兄 우세기虞世基가 당시
내사시랑內史侍郎으로 있었는데
注+수隋나라 때에 중서성中書省을 내사성內史省으로 바꿨다. 죽임을 당하려 하자,
우세남이 형을 안고 울부짖으며
注+호號(울부짖다)는 평성平聲이다. 자신을 대신 죽여달라고 했으나 우문화급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세남이 이때부터 슬픔에 지쳐 뼈만 앙상한 채로 몇 년을 지내니 당시 사람들이 칭찬하고 중시했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우세기虞世基 형제는 오중吳中에서 배출되었고 일찍이 고야왕顧野王을 찾아가 배웠는데
당대에 문학과 재능과 기예를 갖춰 사람들이 진晉의 이륙二陸에 견주었고, 수隋나라에 들어와 모두 조정의 반열班列에 올랐다.
우세기가 우문화급의 난難에 연관될 때 우세남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형을 대신해줄 것을 요청했으니 그 효심과 우애는 숭상할 만하다.
우세남이 당唐나라에 귀의하여 당의 유명한 경卿이 되었으니 온후하고 공손하고 화락함이 천성에서 우러나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