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元年 遷中書令注+唐制, 中書省之長, 掌佐天子執大政, 而總判省事宰相也.하고 三年 拜尙書左僕射監修國史注+唐制, 史館有監修國史, 皆宰相兼領.하고 封梁國公하니 實封一千三百戶注+唐爵九等, 一曰王, 食邑萬戶, 二曰郡王, 食邑五千戶, 三曰國公, 食邑三千戶, 四曰開國郡公, 食邑二千戶, 五曰開國縣公, 食邑千五百戶, 六曰開國縣侯, 食邑千戶, 七曰開國縣伯, 食七百戶, 八曰開國縣子, 食五百戶, 九曰開國縣男, 食三百戶. 此言千三百戶者, 實封數也. 後倣此.
旣總任百司 虔恭夙夜하고 盡心竭節하여 不欲一物失所
聞人有善하면 若己有之하며 明達吏事하고 飾以文學하며 審定法令 意在寬平이라
하고 不以己長格物하며 隨能收敍하고 無隔疎賤하니 論者稱爲良相焉注+相, 去聲, 後同.이라
十三年 加太子少師注+少, 去聲. 唐制, 太子少師少傅少保, 掌曉德行, 以諭皇太子, 奉觀三師之德.


정관貞觀 원년元年(627)에 방현령房玄齡중서령中書令注+중서령中書令은〉 나라 제도에 의하면 중서성中書省의 우두머리이니, 천자天子를 보좌하여 대정大政을 집행하고 중서성의 일을 총괄적으로 판단하는 일을 관장하는 재상이다.으로 승진하고, 정관 3년(629)에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감수국사監修國史注+나라 제도에 의하면 사관史館에는 감수국사監修國史를 두니, 모두 재상宰相이 겸직으로 관장한다. 임명되었으며, 양국공梁國公에 봉해졌는데, 실제 봉호封戶는 1,300였다.注+나라 작위爵位에는 9등급이 있다. 첫 번째는 이니 식읍食邑이 10,000이고, 두 번째는 군왕郡王이니 식읍食邑이 5,000호이고, 세 번째는 국공國公이니 식읍食邑이 3,000호이고, 네 번째는 개국군공開國郡公이니 식읍食邑이 2,000호이고, 다섯 번째는 개국현공開國縣公이니 식읍食邑이 1,500호이고, 여섯 번째는 개국현후開國縣侯이니 식읍食邑이 1,000호이고, 일곱 번째는 개국현백開國縣伯이니, 식읍食邑이 700호이고, 여덟 번째는 개국현자開國縣子이니 식읍食邑이 500호이며, 아홉 번째는 개국현남開國縣男이니, 식읍食邑이 300호이다. 여기에서 1,300호라고 한 것은 이다. 뒤에도 이와 같다.
백관들을 통솔하게 되자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경건하게 행동하고 마음을 다해 절조를 지켜서 한 사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가 없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선한 행실이 있다고 들으면 마치 자기에게 그런 점이 있는 것처럼 기뻐했으며, 관리의 직무에 통달하고 문학적 재능도 갖추었으며, 법령을 심의하고 제정할 때는 너그럽고 공평하게 하는 데 마음을 두었다.
사람을 취할 때 완비되기를 구하지 않고 자기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바로잡지 않았으며, 능력에 따라 거두어 서용하고, 소원하거나 미천한 사람이라고 해서 차별하는 일이 없었으니, 논의하는 자들이 훌륭한 재상이라고 칭송하였다.注+(재상)은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정관 13년(639)에 태자소사太子少師注+(낮다)는 거성去聲이다. 나라 제도에 의하면 태자소사太子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삼사三師의 덕행을 밝혀서 황태자를 깨우쳐주고 삼사三師을 받들어 관찰하는 일을 관장한다. 겸임하였다.


역주
역주1 不以求備取人 : 《論語》 〈微子〉에 “한 사람의 몸에 모든 것이 갖추어지기를 요구하지 않는다.[無求備於一人]”라고 하였다.
역주2 實封 : 古代에 封建國家는 名義上 功臣과 貴族에게 내려주는 食邑의 戶數가 실제로 봉해주는 숫자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실제로 주는 封戶를 實封이라고 하였다.
역주3 三師 : 太師‧太傅‧太保를 말한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