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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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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伏惟陛下 明照未形하시고 智周無際하사 窮奧祕於麟閣注+⑮ 窮奧祕於麟閣:漢宣帝圖功臣於麒麟閣.하고 盡探賾於儒林注+⑯ 盡探賾於儒林:探, 平聲. 賾, 革切.하소서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명철함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 비추어보시고, 지혜는 끝없이 두루 살피시어 기린각麒麟閣에서 심오한 비책을 궁구하고注+한 선제漢 宣帝기린각麒麟閣공신功臣화상畵像을 그려놓았다., 유림儒林들에게서 은미한 이치를 모두 탐구하소서.注+(탐구하다)은 평성平聲이다. (심오하다)은 의 반절이다.
千王理亂之蹤 百代安危之迹 興亡衰亂之數 得失成敗之機 固亦包呑心府之中하시며 循環目圍之內하사 乃宸衷久察하시니 無假一二言焉이라
역대 제왕의 치세治世난세亂世의 자취, 과거 시대의 안위安危의 흔적, 흥망성쇠의 운수, 득실과 성패의 관건 같은 것은 본래 또한 가슴속에 간직하고 계시고, 시야 안에 떠돌고 있어 폐하께서 오랫동안 살피고 계시니, 신첩의 한두 마디 말을 빌려 표현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志驕於業著하며 體逸於時安이라
오직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공업을 이루었을 때 마음이 교만해지고, 시국이 안정되었을 때 몸이 안일함에 빠지게 됩니다.
伏願抑志摧心하여 愼終成始하고 削輕過以添重德하시며 擇今是以替前非하시면 則鴻名與日月無窮하고 盛業與乾坤永泰하리이다하니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 마음을 억누르시어 끝까지 삼가시어 처음과 같이 하고, 가벼운 허물을 줄여 큰 덕을 늘리며, 현재의 옳은 것을 택하여 과거의 잘못을 고친다면 폐하의 크나큰 명성은 일월日月과 함께 영원하고, 성대한 공업은 천지天地와 함께 길이 평안할 것입니다.”
太宗甚善其言하여 特加優賜甚厚하다
태종은 그 말을 아주 훌륭하게 여겨 특별히 후한 상을 많이 내렸다.
【集論】愚按 人臣進諫於君 古人擬之批鱗하니 雖士夫라도 猶以爲難이어든 況婦人女子乎
내가 살펴보건대, 신하로서 군주에게 간언하는 것을 옛사람들이 용의 비늘을 건드리는 것에 견주었으니, 비록 사부士夫라 하더라도 어렵게 여겼거늘, 하물며 부인과 여자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其見之史傳하고 하며 하고 하니 寥寥千載 不多見也
사전史傳에 보이는 것은, 등만鄧曼막오莫敖의 패배에 대해 논하였고, 성풍成風수구須句해줄 것을 청하였으며, 반희班姬성제成帝와 함께 수레에 오르는 것을 사양하였고, 유귀빈劉貴嬪진원달陳元達을 형벌에서 구원하였으니, 아득한 천 년 사이에 많이 보이는 일이 아니다.
太宗納諫之德 冠絶古今하니 外之房杜王魏 內之文德皇后 亦足以交修而夹輔之矣
태종太宗이 간언을 받아들이는 덕은 고금에 으뜸이었다. 밖으로는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왕규王珪위징魏徵이 있었고, 안으로는 문덕황후文德皇后가 있었으니, 역시 교대로 수양하여 보좌하기에 충분하였다.
宮妾之中 復有如徐氏者焉하니 觀其諫疏 有老師宿儒라도 不能遠過者 嗚呼 賢哉로다
궁첩宮妾 가운데 또 서씨徐氏와 같은 이가 있었으니, 그의 상소를 보면 비록 노숙한 선생과 학자일지라도 훨씬 뛰어나지 못하니, 아! 훌륭하도다.
역주
역주1 知之非難 行之不易 : 《書經》 〈商書 說命 中〉의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다.[非知之艱 行之惟艱]”를 변용한 것이다.
역주2 (土)[士] : 저본에는 ‘土’로 되어 있으나, 《六書故》에 의거하여 ‘士’로 바로잡았다.
역주3 鄧曼論莫敖之敗 : 鄧曼은 楚 武王의 부인이며, 莫敖는 楚나라의 官職名으로, 초나라 大夫 屈瑕를 말한다. 魯 桓公 13년(B.C.699) 봄, 초 무왕이 굴하를 대장으로 삼아 羅國을 정벌하도록 하였다. 鬪伯比가 초 무왕에게 군대를 증원하여 굴하를 도우라고 간언하였는데, 무왕이 그 말을 따르지 않자 등만에게 말했다. 등만이 투백비의 말을 무왕에게 전하며 굴하가 이전 전투의 승리로 인해 羅國을 업신여길 것이니, 그에게 경계하는 말을 하라고 간언하였다. 그러나 굴하는 이미 출발한 뒤였다. 결국 초나라 군대는 패배하였고 굴하는 荒穀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春秋左氏傳 桓公 13년》
역주4 成風請須句之封 : 須句는 風姓으로, 東平 須昌縣 서북쪽에 있는 나라이고, 成風은 魯 僖公의 어머니로, 수구가 그 親家이다. 邾人이 수구를 멸망시키자, 須句子(須句國 子爵)가 성풍에 의지하기 위해 魯나라로 도망쳐왔는데, 성풍이 그를 위해 희공에게 “明祀를 높이고 小國을 보호하는 것은 周나라의 예법이고, 蠻夷가 諸夏를 어지럽히는 것은 주나라의 재앙이니, 만약 수구를 封해준다면 이는 太皥와 有濟를 높여 제사를 수행하고 재앙을 푸는 일이오.”라고 말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21년》
역주5 班姬辭共輦之載 : 班姬는 班婕妤로, 漢 成帝 때 총애를 받던 궁녀이다. 성제가 後庭에서 노닐 때에 婕妤를 황제의 수레에 함께 태우려고 하였는데, 첩여가 사양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그림을 보니, 훌륭한 임금은 모두 名臣을 옆에 둔 반면에 三代의 못된 임금은 총애하는 여자를 옆에 두었습니다. 지금 함께 수레에 태우려 한다면 이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성제가 그 말을 옳게 여겨 그만두었다. 《漢書 권97 孝成班婕妤列傳》
역주6 劉氏救元達之刑 : 劉氏는 前趙의 3대 군주 劉聰의 后妃인 劉貴嬪이고, 元達은 당시 諫言을 잘하던 신하인 陳元達이었다. 유총이 太后 張氏가 죽고 나서 유귀빈을 황후로 삼아 그를 위해 궁전을 지어주려고 하자, 廷尉 진원달이 간언을 올려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 궁전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간언을 올렸다. 그러자 유총이 大怒하여 진원달을 참수하려고 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간언을 해도 듣지 않았다. 유귀빈이 그 사실을 알고 몰래 칙서를 내려 사형 집행을 정지시키고, 죽기를 각오하고 유총에게 상소를 올리자, 유총이 그제야 마음을 돌려 진원달을 석방하고 그의 忠心을 알아주었다. 《晉書 권96 劉聰妻劉氏列傳》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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