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三年에 太子右庶子張玄素가 以承乾頗以遊畋廢學으로 上書諫曰
臣聞皇天無親
하여 惟德是輔
注+ 惟德是輔:周書蔡仲之命之辭.라하니 苟違天道
면 人神同棄
니이다
然古
之禮
는 非欲敎殺
이라 將爲百姓除害
注+ 將爲百姓除害:爲, 去聲.니
故湯羅一面
에 天下歸仁
注+ 故湯羅一面 天下歸仁:湯出見野張網四面, 祝曰 “自天下四方, 皆入吾網.” 湯曰 “嘻, 盡之矣.” 乃去其三面. 祝曰 “欲左, 左, 欲右, 右. 不用命, 乃入吾網.” 諸侯聞之曰 “湯德至矣, 及禽獸.”하니이다
今苑內娛獵이 雖名異遊畋이나 若行之無恒이면 終虧雅度니이다
且傅說曰 學不師古
는 匪說攸聞
注+ 匪說攸聞:說, 音悅, 商書傅說告高宗之辭.이라하니
旣奉恩詔
하여 令孔穎達侍講
注+ 令孔穎達侍講:令, 平聲. 後同.하시니 望數存顧問
注+ 望數存顧問:數, 音朔. 後同.하사 以補萬一
하소서
仍博選有名行學士
注+ 仍博選有名行學士:行, 去聲.하여 兼朝夕侍奉
하여
此則盡善盡美
니 을 焉足言哉
注+ 焉足言哉:焉, 於䖍切.리잇가
夫爲人上者
注+ 夫爲人上者:夫, 音扶.가 未有不求其善
이나 但以性不勝情
注+ 但以性不勝情:勝, 平聲. 後同.하여 耽惑成亂
하나니 耽惑旣甚
이면 忠言盡塞
이니
古人
이 有言
라하니 故知禍福之來
가 皆起於漸
이니이다
殿下
가 地居儲貳
하사 當須廣樹嘉猷
커늘 旣有好畋之淫
注+ 旣有好畋之淫:好, 去聲. 後同.하시니 何以主斯
이리잇가
愼終如始라도 猶恐漸衰어늘 始尙不愼하면 終將安保리잇가
臣聞稱
者
는 欲令太子知君臣父子尊卑長幼之道
注+ 長幼之道:長, 音掌. 後同. 見敎誡篇註.니이다
然君臣之義와 父子之親과 尊卑之序와 長幼之節이 用之方寸之內하여 弘之四海之外者니
伏惟殿下가 睿質已隆이나 尙須學文以飾其表이니이다
竊見孔穎達趙弘智等은 非惟宿德鴻儒라 亦兼達政要하니
望令數得侍講하여 開釋物理하시고 覽古論今하여 增輝睿德하소서
至如騎射畋遊
와 酣歌妓翫
은 苟悅耳目
이나 終穢心神
이니 漸染旣久
注+ 漸染旣久:漸, 音尖.하면 必移情性
이니이다
古人
이 有言
이라하니 恐殿下敗德之源
이 在於此矣
하노이다
承乾이 覽書愈怒하여 謂玄素曰 庶子가 患風狂耶아하다
十四年
에 太宗
이 知玄素
가 在東宮
하여 頻有進諫
하고 擢授銀靑光祿大夫
하고 太子左庶子
하다
時
에 承乾
이 嘗於宮中擊鼓
하여 聲聞于外
注+ 聲聞于外:聞, 去聲.어늘
玄素
가 叩閤請見
注+ 玄素 叩閤請見:見, 音現.하여 極言切諫
커늘 乃出宮內鼓
하여 對玄素毀之
하고
遣
하여 伺玄素早朝
注+ 遣戶奴 伺玄素早朝:朝, 音潮.하여 陰以馬檛擊之
注+ 陰以馬檛擊之:檛, 音查.하여 殆至於死
러라
是時
에 承乾
이 好營造亭觀
注+ 好營造亭觀:觀, 去聲.하여 窮極奢侈
하여 費用日廣
커늘 玄素
가 上書諫曰
臣以愚蔽
로 竊位
하니 在臣有江海之潤
이나 於國無秋毫之益
이라
伏惟儲君之寄
는 荷戴殊重
注+ 荷戴殊重:荷, 上聲.하니 如其積德不弘
하면 何以嗣守成業
이리잇가
聖上이 以殿下親則父子요 事兼家國하여 所應用物을 不爲節限이나
恩旨未逾六旬하여 用物已過七萬하니 驕奢之極이 孰云過此리잇가
今言孝敬
하면 則闕
之禮
하고 語恭順
하면 則違君父慈訓之方
하고
求風聲하면 則無學古好道之實하고 觀擧措하면 則有因緣誅戮之罪하며
宮臣正士는 未嘗在側하고 群邪淫巧가 昵近深宮하며
愛好者는 皆遊伎雜色이요 施與者는 竝圖畫雕鏤이니이다
在外瞻仰
에 已有此失
하니 居中隱密
을 寧可勝計哉
注+ 寧可勝計哉:勝, 平聲.리잇가
은 不異
注+ 不異闤闠:闤, 音環. 闠, 音會.하여 朝入暮出
에 惡聲漸遠
이니이다
右庶子趙弘智
는 經明行修
注+ 經明行修:行, 去聲.하여 當今善士
라
라도 尙恐不逮
어늘 飾非拒諫
하면 必是招損
이니이다
書入
커늘 承乾
이 大怒
하여 遣刺客
하여 將加屠害
라가 俄屬宮廢
注+ 十四年……俄屬宮廢:按後一書, 通鑑係十三年. 詔自今皇太子, 出用庫物, 所司勿爲限制. 於是, 太子發取無度, 故玄素上疏. 十七年, 承乾廢.하다
注
用物不會는 是尊貴之故나 得肆爲費侈가 豈節以制度하여 自家刑國之道哉리오
正使周官饍夫酒正內府
에 有此文
이나 然冢宰之職
은 量入爲出
하여 得以
均節財用
하니
則雖曰不會나 而會在其中이요 特不使有司以法沮止를 若自下而制上耳라
太宗之詔太子가 於是에 大失이로되 諸賢在朝하여 不聞以爲不可하고
獨張玄素가 止於末流하여 幾於被害하니 豈非君臣之交失乎아
注
承乾이 諱其切至하여 遣戶奴檛擊하고 遣刺客伺之하니 其脫死者는 幸矣라
乃與他宮僚同坐하여 至除名爲民이라가 起爲刺史나 訖不復親近이라
事는 與于志寧同이로되 而賞罰異하니 太宗이 何所見而然耶아
注
雖二人不肖하여 有以自取나 亦文帝太宗所以處之失其道也니 何也오
文帝가 旣立勇爲太子하고 而復寵待煬帝하고 太宗이 旣立承乾爲太子하고 而復寵待魏王하니
向使太宗이 於太子諸王之間에 早有定分이면 則承乾이 雖不肖나 不至如是之甚也라
今旣不能消其不平之忿하고 乃賞擢張玄素于志寧之流하여 使救正於言語章疏之末이나 果何益之有哉리오
정관貞觀 13년(639)에 태자우서자太子右庶子 장현소張玄素가 이승건李承乾이 자주 사냥을 나가며 공부를 팽개친 것에 대해 글을 올려 간하였다.
“신이 들으니 ‘하늘은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고 오직 덕이 있는 사람을 도와준다.’라고 했으니
注+《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蔡仲之命〉에 있는 내용이다. 참으로 하늘의 도를 어기면 사람과 신명이 모두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옛날
삼구三驅의
예법禮法은 생물을 죽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려 함이었습니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그래서
탕왕湯王이 한 면에만 그물을 펼치자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인자함에 귀의하였습니다.
注+탕왕湯王이 나와서 들판의 그물이 사면에 쳐진 것을 보았는데, 새그물을 친 사람이 축원하기를 “천하 사방이 모두 내 그물 안에 들어오라!”라고 하자, 탕왕湯王이 말하기를 “아, 다 망라해버렸구나!”라고 하고 삼면을 제거하게 했다. 탕왕이 다시 축원하기를 “왼쪽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라. 명을 듣지 않는 새만 내 그물 안으로 들어오라!”라고 했다. 제후들이 그 말을 듣고 “탕왕湯王의 덕이 지극하여 금수에게까지 미쳤다.”라고 했다.
지금 원내苑內에서 즐기는 사냥은 비록 교외로 나가 사냥하는 것과 명칭은 다르지만 만일 절제 없이 계속 행하신다면 결국 바른 법도를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배움이 옛 것을 법으로 삼지 않는 것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
注+설說(기뻐하다, 좋아하다)은 음音이 열悅이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命 하下〉에서 부열傅說이 고종高宗에게 아뢴 말이다.’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도를 넓히는 것은 옛 것을 배우는 데에 있고 옛 것을 배우는 것은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을 힘입어야 합니다.
이미 성상의 은혜로운 조칙을 받아
공영달孔穎達에게
시강侍講의 임무를 맡기셨으니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 부디 자주 물어보셔서
注+수數(자주, 곧잘)은 음音이 삭朔이다. 뒤에도 같다. 만에 하나라도 보충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명성과 덕행을 갖춘 학사들을 널리 선발해서
注+행行(행실)은 거성去聲이다. 아침저녁으로
시봉侍奉하게 하여,
성인이 남기신 가르침을 살피고 이전의 행적들을 관찰하여 날마다 부족한 바를 알고 달마다 능한 것을 잊지 않도록 하셨으니,
이것은 아주 훌륭하고 아주 아름다운 일인바,
하夏나라
계啓와
주周나라
송誦쯤을 어찌 거론할 것이 있겠습니까.
注+언焉(어찌)은 어於와 건䖍의 반절이다.
무릇 모든 사람의 위에 있는 이는
注+부夫(발어사)는 음音이 부扶이다. 그 선을 추구하지 않은 적이 없으나, 다만 본성이 감정을 감내하지 못해
注+승勝(감당하다)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 현혹을 탐닉하여 혼란이 이룩되고, 현혹을 탐닉함이 심해지면 충직한 말이 모두 막힙니다.
따라서 신하가 구차하게 순종하게 되어 임금의 도리는 점차 망가지게 됩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작은 악이라고 하여 제거하지 아니하지 말고
注+거去(버리다)는 상성上聲이다., 작은 선이라 하여 실천하지 아니하지 말라.’라고 했으니, 재앙과 복의 다가옴은 모두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
저이儲貳(태자)의 자리에 계시면서 마땅히 좋은 계획을 널리 수립하셔야 하는데, 이미 사냥을 좋아하는 탐닉이 있으시니
注+호好(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어떻게
비창匕鬯(국가 제례)을 주관하실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을 신중히 하기를 처음처럼 한다 해도 점차 쇠퇴할까 염려스러운데, 시작부터 삼가지 않는다면 마침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승건이 받아들이지 않자 장현소張玄素가 또다시 간언을 올렸다.
“신이 들으니, ‘황자가 학교에 들어가면 태자도 나이 순서로 배치한다.’라고 했는데, 이는 태자에게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어른과 아이의 도리를 알도록 하고자 함입니다.
注+장長(어른)은 음音이 장掌이다. 뒤에도 같다. 〈교계敎誡〉편 주석에 관련 내용이 보인다.
하지만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친함,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사이의 질서, 어른과 아이 사이의 예절은 모두 마음속에서 운용되어 사해四海 밖에까지 널리 퍼지는 것이니,
모두 행동을 통해 먼 곳까지 알려지고 말을 빌려 넓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선 타고난 바탕이 이미 빼어나시나 반드시 학문을 통해 그 외면을 닦으셔야 합니다.
살며시 살펴보건대, 공영달孔穎達과 조홍지趙弘智 등은 훌륭한 덕행을 갖춘 학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의 요체를 통달하고 있으니
자주 시강侍講하도록 해서, 사물의 이치를 열어 풀이하고 고금을 살피고 논하게 하여, 훌륭하신 덕성을 더욱더 빛나게 하시기 바랍니다.
말 타고 활 쏘며 사냥놀이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기녀들과 노는 일은 귀와 눈을 즐겁게 할 수는 있지만 결국 마음과 정신을 더럽히니, 점차 물드는 시간이 오래되면
注+점漸(점차, 점진적)은 음音이 첨尖이다. 반드시 본성을 바꾸게 할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마음은 모든 일의 주인이어서 행동할 때 절제가 없으면 혼란스럽게 된다.’라고 했으니, 전하께서 덕행을 망가뜨리는 근원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승건이 상서를 본 뒤 더욱 노하여, 장현소에게 이르기를, “우서자右庶子가 미친 것 아니오.” 라고 했다.
정관貞觀 14년(640)에 태종太宗이 장현소가 동궁東宮에서 곧잘 간언을 올린다는 사실을 알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발탁하고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를 겸임하게 했다.
당시 이승건이 궁 안에서 북을 쳐서 그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자
注+문聞(들리다, 소문나다)은 거성去聲이다.,
장현소가 문을 두드려 뵙기를 청한 뒤
注+견見(뵙다)은 음音이 현現이다., 절실한 간언을 올리자, 이승건이 궁 안의 북을 내와서 장현소 앞에서 깨뜨리고,
호노戶奴를 보내 장현소가 아침 일찍 조회할 때를 기다렸다가
注+조朝(조회하다)는 음音이 조潮이다. 몰래 말채찍으로 공격하게 해서
注+과檛(채찍)는 음音이 사查이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이승건이 건물 짓기를 좋아하면서
注+관觀(누각, 망루)은 거성去聲이다. 사치의 극치를 보이며 그 비용이 나날이 커지자, 장현소가 글을 올려 간하였다.
“신이 우둔한 몸으로 두 궁宮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신에겐 하해河海와 같은 윤택함이 있으나 국가에는 털끝만큼의 보탬도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부족한 정성이나마 다하여 신하의 절의를 다하려 하고 있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저군儲君(태자)의 지위는 담당하는 것이 퍽 무거우니
注+하荷(메다, 책임지다)는 상성上聲이다. 만일 쌓은 덕이 크지 않으면 어떻게 완성된 사업을 이어서 지킬 수 있겠습니까.
성상은 전하에게 친분으로는 부자관계이고 또 일이 가정과 나라를 겸하여 쓰시는 물품에 대해 제한을 두지 않으셨습니다만,
내리신 성지聖旨가 60일도 되지 않았는데 쓰시는 금액이 이미 7만을 넘으셨으니, 교만과 사치의 극치가 이보다 과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용루龍樓 아래에선 오직 공장工匠들만 모여 있고 망원望苑 안에선 현자들을 볼 수 없습니다.
지금 효도와 공경을 이야기하자면 전하께서는 폐하의 드시는 음식을 살피고 수신豎臣(소신小臣)에게 묻는 예절을 빠트리고 계시고, 공손과 순응을 이야기하자면 임금과 아버지의 자애로운 가르침을 어기고 계시고,
풍문과 명성을 찾아보자면 옛 것을 배우고 도道를 좋아하는 사실이 없으시며, 거조擧措를 살펴보자면 권력에 의지해 주륙하는 죄가 있습니다.
동궁 안의 바른 인사들이 곁에 있지 않고 사악하며 음탕한 자들이 깊은 궁 안에서 가까이하고,
사랑하며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기생들이나 완상물들이고, 상으로 주는 것들은 모두 그림이나 조각 따위이십니다.
밖에서 바라볼 때도 이미 이런 잘못들이 있는데, 안에서 벌어지는 은밀함이야 어찌 이루 다 셀 수 있겠습니까?
注+승勝(감내하다)은 평성平聲이다.
선유금문宣猷禁門(태자 거처의 문)은 여느 거리와 다름이 없어서
注+환闤(네거리)은 음音이 환環이고, 궤闠는 음音이 회會이다., 아침에 들어갔다 저녁에 나오면서 추문이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서자右庶子 조홍지趙弘智는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이 잘 갖추어져
注+행行(행실)은 거성去聲이다. 오늘날의 훌륭한 인물이어서
신이 전하께 매번 자주 불러들여서 그와 담론하면 훌륭한 덕을 넓게 갖출 수 있을 것이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하의 말씀은 도리어 그를 시기하고 혐의를 두어, 신이 함부로 추천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을 물 흐르듯이 쫓는다고 해도 미치지 못할까 걱정해야 하는데 잘못을 감추고 간언을 거부하게 되면 반드시 손해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쓴 약은 병에 이롭고 쓴 말은 실행에 이롭다.’라고 했으니, 부디 바라옵건대,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여 하루하루 더욱더 신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상서가 들어가자 이승건이 크게 노하여 자객을 보내 살해하려 했으나, 이내 이승건이 폐출을 당하였다.
注+살펴보건대, 뒷부분의 한 상서는 《자치통감資治通鑑》 정관貞觀 13년조에 나와 있다. 태종太宗이 내린 조칙에서, ‘지금부터 황태자皇太子가 창고의 물품을 낼 때 담당자는 제한을 두지 말라.’고 하자, 이에 태자가 한도가 없이 내썼고, 그래서 장현소張玄素가 소를 올린 것이다. 정관 17(643)년에 승건承乾이 폐출되었다.
注
호인胡寅이 말하였다. “《주관周官》에 ‘왕과 왕후 및 세자의 음식과 의복은 회계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는데,
내가 생각해보건대, 가장 존귀한 것은 왕이고 그 다음은 왕후이고 그 다음은 세자이다.
재물을 사용할 때 회계하지 않는 것은 존귀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마음대로 쓰도록 하는 것이 어찌 제도로 절제하여, 집안에서 국가에 모범을 보이는 도리이겠는가.
바로 《주관周官》 〈선부饍夫〉‧〈주정酒正〉‧〈내부內府〉에 이러한 문장이 있지만, 총재冢宰의 직책은 수입에 맞춰 지출하여 ‘아홉 가지 형식’으로 비용을 균등하게 절제해야 하니,
비록 ‘회계하지 않는다.’라고는 하지만 회계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고, 다만 유사有司에게 법으로 제지하기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제재하는 듯하지 않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태종이 태자太子에게 내린 조칙은 여기에서 크게 잘못한 것인데, 뭇 현자들이 조정에 있으면서 안 된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고,
장현소張玄素만이 마지막까지 제지하여 거의 해를 당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注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태종太宗이 장현소張玄素에 대해 잘 살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장현소가 태자太子에게 힘껏 간언하여 두 번에 이르고 세 번에 이르자,
이승건李承乾이 그 절박함을 싫어해서 호노戶奴를 보내 채찍으로 치고 자객을 보내 사찰했으니, 죽음을 모면한 것은 다행이다.
그런데 다른 궁료宮僚와 연좌되어 제명되어 평민이 되었다가 기용되어 자사刺史가 되긴 했지만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았다.
태종이 여기에서 지나친 형벌을 행한 피해가 선한 사람에게까지 미친 것이니 슬프다 하지 않겠는가.
내용은 우지녕于志寧과 같은데 상과 벌이 다르니, 태종이 무엇을 보고 그렇게 한 것인가.”
注
내가 살펴보건대, 수隋나라 태자太子 양용楊勇과 당唐나라 태자太子 이승건李承乾은 모두 죄를 범해 폐출되었는데,
비록 두 사람이 착하지 못해 스스로 취한 것이긴 하지만, 문제文帝와 태종太宗이 대처에 있어 그 정도正道를 잃었기 때문이니 무엇인가.
문제가 양용을 태자로 세우고 나서 양제煬帝를 다시 총애하고, 태종이 이승건을 태자로 세우고 나서 위왕魏王을 다시 총애했다.
양제가 앞에서 찬탈하자, 위왕魏王이 뒤에서 그 잘못을 본받은 것이다.
이승건이 서인庶人이 된 양용의 화를 목도했으므로 이처럼 부득이한 나쁜 모의를 행한 것이다.
만일 태종이 태자와 제왕諸王들 중에서 일찍이 분한分限을 확정했다면 이승건이 착하지 않긴 해도 이처럼 심한 경우까진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 불공평에 대한 분노를 해소시키지 못한 채 장현소張玄素와 우지녕于志寧 등에게 상을 내리거나 발탁을 해서 말과 글 따위로 바로잡게 했으나, 과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