虞世南
注+字, 伯施. 性沈靜寡欲, 篤意學問. 與兄世基仕隋, 俱有重名, 時人方晉. 累遷至秘書郞‧起居舍人. 從至聊城, 又陷于竇建德, 黄門侍郞. 太宗後滅建德, 引爲秦府參軍. 餘見下文.은 會稽餘姚人也
注+會, 音檜. 稽, 音基. 會稽, 郡名, 今紹興路. 餘姚, 縣名, 今陞爲州, 隷浙東.라
館中號爲多士나 咸推世南爲文學之宗하니 授以記室하여 與房玄齡對掌文翰이라
嘗命寫列女傳
注+去聲.하여 以裝屛風
한대 于時無本
하여 世南暗書之
나 一無遺失
이라
우세남虞世南注+〈우세남虞世南은〉 자字가 백시伯施이다. 성품이 침착하고 욕심이 적으며, 독실한 자세로 학문에 임하였다. 형 우세기虞世基와 함께 수隋나라에 벼슬해 모두 높은 명성을 얻어 당시 사람들이 진晉나라의 이륙二陸에 견주었다. 여러 차례 승진하여 비서랑秘書郞,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우문화급宇文化及을 따라 요성聊城에 갔고, 또 두건덕竇建德에게 잡혀 황문시랑黄門侍郞에 임명되었다. 태종太宗이 뒤에 두건덕을 멸망시키고 나서 불러들여 진왕부秦王府의 참군參軍으로 삼았다. 나머지는 아래에 보인다.은회계군會稽郡 여요현餘姚縣 사람이다.
注+회會는 음이 회檜이며, 계稽는 음이 기基이다. 회계會稽는 군郡의 이름이니, 지금의 소흥로紹興路이다. 여요餘姚는 현縣의 이름으로, 지금은 승격되어 주州가 되었고, 절동浙東에 속한다.
정관貞觀 초기에 태종太宗이 데려다 상객上客으로 삼고 그로 인해 문학관文學館을 개설했다.
문학관에 선비들이 많다고 일컬어졌으나 모두 우세남을 받들어 문학의 종장宗匠으로 여기니, 태종이 기실記室로 임명하여 방현령房玄齡과 함께 문한文翰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태종이 일찍이 그에게 《
열녀전列女傳》을 써서
注+〈전傳(전기)은〉 거성去聲이다. 병풍을 만들도록 했는데, 당시에 《
열녀전列女傳》 책이 없어서 우세남이 외우고 있는 것을 떠올려 그대로 썼으나 누락되거나 틀린 부분이 한 곳도 없었다.
정관 7년(633)에 여러 차례 승진하여
비서감秘書監이 되었다.
虞世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