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二年에 太宗謂侍臣曰 人言 作天子면 則得自尊崇하여 無所畏懼라하되 朕則以爲正合自守謙恭하여 常懷畏懼라
昔舜誡禹曰 汝惟不矜
하나 天下莫與汝爭能
이요 汝惟不伐
하나 天下莫與汝爭功
注+① 汝惟不矜……天下莫與汝爭功:虞書大禹謨之辭.이라하시고
又易曰 人道惡盈而好謙
注+② 人道惡盈而好謙:惡‧好, 竝去聲. 易謙卦彖辭.이라하니
凡爲天子가 若惟自尊崇하고 不守謙恭者라 在身儻有不是之事면 誰肯犯顔諫奏리오
朕每思出一言하며 行一事에 必上畏皇天하며 下懼群臣하노라
하니 何得不畏
리오 群公卿士
가 皆見瞻仰
하니 何得不懼
리오
以此思之
하여 但知常謙常懼
호대 猶恐不稱天心及百姓意也
注+③ 猶恐不稱天心及百姓意也:稱, 去聲.하노라
魏徵曰 古人云 靡不有初
나 鮮克有終
注+④ 靡不有初 鮮克有終:鮮, 上聲. 詩大雅蕩篇之辭.이라하니
願陛下守此常謙常懼之道
하여 하면 則宗社永固
하여 無傾覆矣
리니
注
【集論】呂氏祖謙曰 無逸之書
에 稱商
之享國
하고 而周公蔽之以一言
하여 曰畏而已
라하다
蓋惟天子之尊으로 苟以無所畏之心而自恃하면 則治易忘亂하고 安易忘危하여 危亂而不自知矣라
惟能以有畏爲心하면 則上焉天心享之하고 下焉臣民歸之하니 如是而不安者는 未之有也라
太宗貞觀之治가 所以致之者는 固有其道호대 而大要莫先於此라하다
注
夫堯舜은 五帝之盛帝也라 聖德輝光이 在謙讓而已라
易之謙曰
이라하니 天道而非下濟
하면 則亢矣
라 何自而見其光明哉
리오
太宗謂天子不當自尊崇하고 正合謙恭이라하니 此帝王之盛德也라
魏徵於此時
에 不
하고 而擧詩之靡不有初
나 鮮克有終
하고 望其君謂常謙常懼
하여 日愼一日
이니
唐虞所以太平이 寔用此法이라하니 是固有以知太宗之心矣라
蓋以堯舜之所以謙讓終始如一은 非一時之言也니 後之人君이 志於帝王之道者는 勉之哉인저
정관貞觀 2년(628)에 태종太宗이 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의 말에 천자가 되면 자기를 높일 수 있어서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지만, 짐은 천자가 스스로 겸손과 공경을 지켜서 항상 두려운 마음을 지니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오.
옛날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훈계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능력을 자랑하지 않으나 천하에 그대와 더불어 능력을 다툴 자가 없고, 그대가 공을 자랑하지 않으나 천하에 그대와 더불어 공을 다툴 자가 없다.’고 하였고
注+《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의 말이다.,
또 《
주역周易》
겸괘謙卦 〈
단전彖傳〉에 말하기를 ‘사람의 도는 가득함을 미워하고 겸손함을 좋아한다.’고 하였소.
注+악惡(싫어하다)와 호好(좋아하다)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주역周易》 겸괘謙卦 〈단전彖傳〉의 말이다.
무릇 천자가 만일 스스로를 높이고 겸손과 공경을 지키지 않는 자여서, 그 몸에 혹시 옳지 않은 일이 있게 되면 누가 안색을 범하면서 간쟁하려 하겠소.
짐은 항상 한 마디 말을 내거나 한 가지 일을 행할 때마다 반드시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여러 신하들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하늘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말을 다 들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 공경과 선비들이 모두가 우러러 보고 있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를 생각하면 다만 항상 겸손하고 항상 두려워해야 함을 알지만, 그래도 하늘의 뜻과 백성의 뜻에 부합되지 않을까 두렵소.”
注+칭稱(걸맞다)은 거성去聲이다.
위징魏徵이 말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처음을 잘하지 않는 경우는 없으나 끝을 잘 맺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였습니다.
注+선鮮(드물다)은 상성上聲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蕩〉편篇의 말이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도 이와 같이 항상 겸손하고 항상 두려워하는 도를 지키면서 날마다 더욱 삼가신다면 종묘사직은 영원히 굳건하여 기울거나 전복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당우唐虞의 시대에 태평하였던 것은 실로 이 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注
여조겸呂祖謙이 말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일無逸〉의 글에 상商나라 삼종三宗이 나라를 향유한 것을 말하고서 주공周公이 한마디 말로 총괄하여 말하기를 ‘〈삼종이〉 두려워하였다.’라고 하였다.
오직 천자의 존귀함으로도 진실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자신만을 믿으면, 다스려질 때 어지러움을 잊기가 쉽고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기가 쉬워서, 어지럽고 위태로워지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한다.
두려워하는 것으로 마음가짐을 삼을 수 있다면 위로는 천심天心을 누리고 아래로는 신민臣民이 귀부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하고 편안하지 않은 이는 아직 없었다.
태종太宗의 정관지치貞觀之治가 이루어진 까닭은 진실로 방도가 있었는데 큰 요점은 이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옛날에 사신史臣이 요堯임금을 찬미하여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하시어 광채가 사방에 퍼졌다.” 라고 하고, 순舜임금을 찬미하기를 “깊고 명철하고 문채나고 밝으시며 온화하고 공손하고 성실하고 독실하시다.” 라고 하였다.
요순은 오제五帝의 시대에 성대한 임금이라, 성스러운 덕과 밝은 빛이 겸양에서 나올 뿐이었다.
《주역周易》 겸괘謙卦 〈단전彖傳〉에 말하기를 “천도天道는 아래로 교제交際하여 광명光明하다.” 라고 하였는데, 천도天道가 아래로 교제하지 않으면 너무 높이 올라갈 것이니, 어찌 스스로 광명光明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태종太宗이 ‘천자는 스스로 높이는 것이 마땅하지 않고 마땅히 겸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제왕의 성대한 덕이다.
위징魏徵이 이때에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들어 따르지 않고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蕩〉편의 “처음을 잘하지 않는 경우는 없으나 끝을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를 거론하고, 임금에게 기대하여 말하기를 “항상 겸손하고 항상 두려워하여 날마다 더욱 삼가소서.
당우시대唐虞時代에 태평하였던 것은 실로 이 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니, 이는 진실로 태종의 마음을 안 것이다.
요순이 시종일관 겸양했던 것은 한때의 말이 아니니, 후대의 임금 중에 제왕의 도에 뜻을 두는 이들은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