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時에 賊寇每平에 衆人競求金寶어늘 玄齡은 獨先收人物하여 致之幕府하고 及有謀臣猛將하여는 與之潛相申結하여 各致死力이라
累授秦王府記室
하고 兼陝東道
注+今河南等處.大行臺考功郞中
注+唐制, 掌百官功過善惡之職.이라
와 은 以玄齡及杜如晦
注+詳見下章.로 爲太宗所親禮
하여 甚惡之
注+惡, 烏去聲.하여 譖之高祖
注+諱淵, 字叔德.하니 由是
로 與如晦竝遭驅斥
이라
及隱太子將有變也
하여는 太宗召玄齡如晦
하여 令衣道士服
注+令, 平聲. 衣, 去聲.하여 潛引入閤謀議
라
及事平
에 太宗入春宮
注+東宮也. 武德九年六月, 太宗初爲皇太子.하여 擢拜太子左庶子
注+唐制, 東宮左春坊左庶子, 掌侍從贊相禮儀駁正啓奏之職.라
이때 적군이 평정될 때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앞다투어 금은보화를 찾았는데, 방현령房玄齡만은 제일 먼저 인재들을 거두어 막부幕府로 보내고 계책을 잘 내는 신하나 용맹한 장수가 있으면 그들과 은밀히 의기투합하여 각자 사력死力을 다했다.
여러 차례
진왕부秦王府의
기실記室에 임명되고
섬동도陝東道의
注+〈섬동도陝東道는〉 지금의 하남河南 등지이다.대행대고공낭중大行臺考功郞中注+〈고공낭중考功郞中은〉 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백관百官의 공로와 과실, 선악을 관장하는 직책이다.을 겸임했다.
방현령은 진왕부에서 10여 년 동안 근무하면서 항상 문서를 담당하는 일을 맡았다.
은태자隱太子와
소랄왕巢剌王은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注+〈두여회杜如晦는〉 아래 장에 자세히 보인다.가태종太宗에게 신임과 예우를 받는다고 하여 그들을 몹시 미워하여
注+악惡(미워하다)는 오烏의 거성去聲이다.고조高祖에게 참소를 하니,
注+〈고조高祖는〉 휘諱가 연淵이고, 자字가 숙덕叔德이다. 이 때문에 방현령은 두여회와 함께 쫓겨났다.
은태자가 변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태종이 방현령과 두여회를 불러
도사道士의 옷을 입고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의衣(입다)는 거성去聲이다.합문閤門으로 잠입하도록 하여 일을 상의하였다.
변란이 평정된 후에 태종이 동궁으로
注+〈춘궁春宮은〉 동궁東宮이다. 무덕武德 9년(626) 6월에 태종太宗이 처음으로 황태자가 되었다. 들어가서 방현령을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注+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동궁좌춘방東宮左春坊의 좌서자左庶子는 곁에서 모시며 예의禮儀를 돕고 올바르게 바로잡아 인도하고 아뢰는 것을 관장하는 직책이다.로 발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