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2)

정관정요집론(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一年 太宗 以周封子弟하여 八百餘年하고
정관貞觀 11년(637)에 태종이, 나라가 자제子弟를 제후로 봉하여 800여 년을 다스렸고,
秦罷諸侯하여 二世而滅하고 呂后欲危劉氏 終賴宗室獲安注+ 呂后欲危劉氏 終賴宗室獲安:呂后, 名雉, 漢高祖后, 惠帝母也. 惠帝崩, 呂后臨朝, 欲王諸呂, 諸呂擅權, 朱虛侯劉章, 因侍宴以軍法斬諸呂一人, 自是諸呂憚之, 劉氏益彊.하니
나라가 제후를 없애 2 만에 멸망하였으며, 여후呂后유씨劉氏를 몰락시키려 하였으나 마침내 종실에 힘입어 나라가 안정을 얻었으니注+여후呂后는 이름이 로, 한 고조漢 高祖의 황후이며 혜제惠帝의 모친이다. 혜제가 죽자 여후는 조정을 다스려 여씨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여 여씨들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주허후朱虛侯 유장劉章이 연회석에서 여후를 모시는 기회를 이용하여 군법으로 여씨들 중에 한 사람을 참수하였는데, 이때부터 여씨들이 그를 꺼려하였고, 유씨들이 더욱 강성해졌다.,
封建親賢 當是子孫長久之道라하여
친족이나 현명한 자를 봉해주는 것이 응당 영구히 자손들을 보전하게 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乃定制하여 以子弟荊州都督荊王元景注+ 荊州都督荊王元景:高祖第六子. 安州都督吳王恪注+ 安州都督吳王恪:太宗次子也.等二十一人하고
그래서 제도를 만들어 자제로는 형주도독荊州都督형왕荊王 이원경李元景注+이원경李元景당 고조唐 高祖의 여섯 번째 아들이다., 안주도독安州都督오왕吳王 이각李恪注+이각李恪태종太宗의 차남이다. 등 21인을 봉하였다.
又以功臣司空趙州刺史長孫無忌尙書左僕射宋州刺史房玄齡等一十四人으로 竝爲世襲刺史한대
또 공신으로는 사공司空 조주자사趙州刺史 장손무기長孫無忌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송주자사宋州刺史 방현령房玄齡 등 14인을 모두 세습자사世襲刺史로 삼았는데,
禮部侍郞注+ 侍郞:尙書之貳.李百藥注+ 李百藥:字重規, 定州人. 幼多病, 祖母趙以百藥名之. 貞觀初, 拜中書舍人, 後遷是職, 復授右庶子. 卒, 諡曰康. 奏論駮世封事曰
예부시랑禮部侍郞注+시랑侍郞상서尙書에 다음가는 벼슬이다. 이백약李百藥注+이백약李百藥중규重規로, 정주定州 사람이다. 어려서 병이 많아 조모 조씨가 백약百藥이라 이름을 지었다. 정관 초기에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되었고, 뒤에 이 관직(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직책을 옮겼고 다시 우서자右庶子에 제수되었다. 죽은 뒤에 이라는 시호를 받았다.이 다음과 같이 대를 이어 봉건을 세습하는 것에 대해 논박하는 상소를 올렸다.
臣聞經國庇民 王者之常制 尊主安上 人情之大方이니
“신이 듣건대 나라를 경륜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은 군주의 당연한 도리이며, 군주를 존중하고 편안히 모시는 것은 인정상의 도리라 하였으니,
思聞理定之規하여 以弘長代之業 萬古不易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를 듣고서 오래도록 왕업을 넓히려는 생각은 만고에 변함이 없어 모든 이의 생각이 동일하게 귀결됩니다.
이나 命曆 有賒促之殊하고 邦家 有理亂之異하니 遐觀載籍 論之詳矣
그러나 왕조의 운명은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고 나라는 다스려짐과 혼란함의 차이가 있으니, 옛 서적을 두루 살펴보면 상세하게 논의되어 있습니다.
咸云周過其數注+ 咸云周過其數:昔成王定鼎, 卜世三十, 卜年七百. 後曆三十七主, 八百六十七年, 過其數也.하고 秦不及期注+ 秦不及期:初秦皇謂 “二世三世至于萬世.” 後二世被弑, 子嬰降漢, 不及期也.하니 存亡之理 在於郡國이라
모두 이르기를 ‘나라는 누릴 연수年數를 넘겼으며注+옛날에 성왕成王이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고서 30 700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 점을 쳤다. 뒤에 37명의 왕과 867년을 거쳤으니, 그 를 넘은 것이다., 나라는 기한을 채우지 못하였으니注+처음에 진 시황秦 始皇이 “2, 3만세萬世에 이를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뒤에 2세 황제가 시해되고 2세의 아들 자영子嬰나라에 항복하였으니, 기한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존속과 멸망의 이치는 군국郡國에 달려 있다.
周氏 以鑑夏殷之長久하고 遵皇王之竝建하여 磐石하여
주나라는 나라와 나라의 장구함을 거울 삼고 옛 천자들이 모두 제후를 세운 것에 따라 반석磐石 같은 태자를 세워 뿌리를 깊고 견고하게 하였으니,
雖王綱弛廢라도 而枝幹相持
비록 왕실의 기강이 해이해지더라도 가지와 줄기처럼 서로 유지하였다.
故使逆節不生하고 宗祀不絶이어늘
그러므로 반역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秦氏 背師古之訓注+ 背師古之訓:背, 音倍. 商書傅說告高宗曰 “事不師古, 匪說攸聞.”하고 棄先王之道하여 剪華恃險하고 罷侯置守하니
그런데 나라는 모범이 되는 옛 교훈을 따르지 않고注+(배반하다)는 음이 이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命 〉에 부열傅說고종高宗에게 아뢰기를 “고인古人의 교훈을 모범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선왕先王의 도를 버려 화산華山을 깎아 축성築城하여 지형의 험난함을 믿고서 제후를 없애고 군수郡守를 두니,
子弟無尺土之邑하고 兆庶罕共理之憂
자제들은 좁은 영지領地조차 없었고, 백성들 중에는 나라를 위해 근심하는 자가 드물었다.
而七廟隳祀注+ 故一夫號呼 而七廟隳祀:號, 平聲. 禮, 天子七廟. 賈誼曰 “斬華爲城, 因河爲津, 自以關中之固, 金城千里, 子孫萬世之業也. 秦皇沒, 山東豪傑竝起而亡秦. 一夫作難而七廟隳, 身死人手, 爲天下笑.”라하니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모반을 일으키자 칠묘七廟(천자天子의 나라)가 무너졌다.’라고 하였습니다.”注+(외치다)는 평성平聲이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천자天子칠묘七廟라고 하였다. 가의賈誼가 〈과진론過秦論〉에서 말하기를 “화산華山을 깎아 성을 만들고, 황하黃河를 이용하여 나루를 만들었으며, 관중關中의 견고함으로 천리의 견고한 성을 쌓아 자손만대의 사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진 시황이 죽자 산동의 호걸들이 아울러 일어나 진나라가 망하였다. 필부가 한번 난리를 일으키자 황제의 나라가 멸망하고 자신은 남의 손에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百慮同歸 : 《周易》 〈繫辭 下〉 5장의 “天下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천하가 돌아감은 같으나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겠는가.[天下何思何慮 天下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 天下何思何慮]”에서 발췌한 것이다.
역주2 維城 : 皇子를 말한다. 《詩經》 〈大雅 板〉의 “종자는 나라의 성이다.[宗子維城]”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주3 深根固本……枝幹相持 : 《文選》 권52 〈六代論〉의 “枝榦相持……深根固蔕”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주4 一夫號呼 : 陳勝이 최초로 秦나라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을 말한다.

정관정요집론(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