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八年
에 隴右山崩
하고 大蛇屢見
注+① 大蛇屢見:見, 音現, 後同.하고 山東及江淮多大水
어늘
春秋時
에 梁山崩
注+② 梁山崩:梁山, 晉地.이어늘 晉侯召伯宗而問焉
注+③ 晉侯召伯宗而問焉:晉侯, 景公, 名孺. 伯宗, 晉大夫.한대
對曰 國主山川
이라 故山崩川竭
하면 君爲之不擧樂
하고 降服乘縵
注+④ 降服乘縵:乘, 平聲. 縵, 音漫. 謂乘車之無飾文者.하고 以禮焉
하나니 梁山
은 晉所主也
니이다하니
晉侯從之
라 故得無害
注+⑤ 故得無害:事見左傳成公五年.라
令
注+⑥ 令:平聲.郡國
으로 無來獻
하고 施
注+⑦ 施:平聲.惠於天下
하니 遠近歡洽
하여 亦不爲災
하고
今蛇見山澤은 蓋深山大澤에 必有龍蛇니 亦不足怪요
又山東之雨는 雖則其常이나 然陰潛過久하니 恐有冤獄이라
太宗以爲然
하여 因遣使者
注+⑧ 因遣使者:使, 去聲.하여 賑恤饑餒
하고 申理冤訟
하니 多所原宥
하다
정관貞觀 8년(634)에
농우隴右의 산이 무너지고 큰 뱀이 자주 보였고
注+견見(뵙다)은 음音이 현現이다. 뒤에도 같다.,
산동山東과
강회江淮 지방에 홍수가 잦았다.
태종太宗이 근신近臣에게 묻자, 비서감秘書監 우세남虞世南이 대답하였다.
“춘추시대에
양산梁山이 무너졌는데
注+양산梁山은 진晉나라 땅이다. 진후晉侯가
백종伯宗을 불러 묻자
注+진후晉侯는 경공景公이며, 이름은 유孺이다. 백종伯宗은 진晉나라 대부大夫이다.
대답하기를 ‘국가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므로 산이 무너지고 하천이 마르면 군주는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의복을 간소하게 입으며 수레에 장식을 하지 않고
注+승乘(수레)은 평성平聲이고, 만縵(무늬가 없다)은 음音이 만漫이니, 〈승만乘縵은〉 수레에 장식이 없는 것을 말한다., 제사 지내는
옥백玉帛으로
예禮를 올렸습니다. 양산은
진晉나라가 제사 지내는 산입니다.’라고 하니,
진후가 이를 따랐기 때문에 피해가 없게 되었습니다.
注+이 일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5년에 보인다.
한 문제漢 文帝 원년元年(B.C.179)에는 제齊와 초楚 지역에 있는 29개의 산이 같은 날에 무너지고 큰 홍수가 있었습니다.
이에
군국郡國으로 하여금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와서 공물을 바치는 일을 없애고, 천하에 은혜를 베푸니
注+〈시施(베풀다)는〉 평성平聲이다. 원근의 사람들이 즐겁게 화합하여 또한 재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후한 영제後漢 靈帝 때에는 청색 뱀이 어좌에 나타났고, 진 혜제晉 惠帝 때에는 길이가 300보步나 되는 큰 뱀이 제齊 지역에 나타나 시장을 지나서 조정으로 들어갔습니다.
살펴보건대 뱀은 초야에 있어야 하는데, 시장과 조정에 들어왔으니 괴이하게 여겼을 뿐입니다.
지금 뱀이 산택에 나타난 것은 깊은 산과 큰 못에 반드시 용과 뱀이 있는 것이니, 또한 괴이할 것이 못 됩니다.
그리고 산동의 비는 비록 일상적인 것이지만 음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니, 아마도 억울한 옥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죄수를 잘 살펴서 판결한다면 거의 혹은 하늘의 뜻에 합당할 것입니다.
게다가 요사스러움은 덕을 이길 수 없으니, 오직 덕을 닦는다면 이변이 사라질 것입니다.”
태종의 그것을 옳다고 여기고 이어서 사자를 보내
注+사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굶주린 자를 구제하고, 억울한 사람의 송사를 심리하게 하니, 사면을 받은 자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