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日令彦博宣勅語臣云 何不存形迹고하시니 此言은 大不是니이다
臣은 聞君臣同氣라 義均一體요 未聞不存公道하고 惟事形迹이니이다
若君臣上下가 同遵此路하면 則邦國之興喪을 或未可知니이다
臣이 以身許國하니 直道而行이요 必不敢有所欺負니이다
良臣은 使身獲美名하고 君受顯號하여 子孫傳世하여 福祿無疆이요 忠臣은 身受誅夷하고 君陷大惡하여 家國竝喪하여 獨有其名이니이다
乃賜絹二百匹
注+按, 徵又曰 “稷‧契‧皐陶, 良臣也. 龍逄‧比干, 忠臣也.”하다
忠良
은 一道也
니 未有優於忠而劣於良者
하고 亦未有偏於
而短於忠者
하니 魏公之言
은 過爲分別
이라
不若曰臣願爲稷契皐陶의 諫行言聽이요 不願如龍逄比干의 身誅國亡이니 如此라야 自足以警帝意也라
後世事君者가 柔和獻納하고 不敢强諫하되 曰吾效稷契皐陶라하고
苟有犯顔苦口하고 面折廷爭者어든 則或非之曰 爾何以桀紂事吾君하여 而欲爲忠臣乎아하면 則魏公之說이 啓之矣라
自古君明臣良이 猶腹心手足之一體하여 歡然無間而后에 朝廷之政이 無不擧니 豈拘拘形迹之末하여 以自爲疑外者리오
太宗之於魏公
에 雖曰言必聽
하고 諫必從
이나 而責之以宜存形迹
하니 則
之兆
가 已見於此
라
臣諫而君從之면 則可以爲稷契皐陶之良이요 不從이라도 則亦不失其爲龍逄比干之忠하니 則是忠之與良이 固未甚相遠也라
若乃君之聽諫從之면 則爲堯舜이요 不從之면 則爲桀紂니
其相去가 不啻霄壤이니 則太宗이 於此에 安得而不警乎리오
愚按 魏徵忠良之論이 美矣나 然考之文義하면 則有不然者하니 何也오
文武之臣이 身獲美名하고 君受顯號를 專謂之良臣이 可也나 而冏命엔 則曰咸懷忠良이라하고
商紂之臣이 身受誅夷하고 君陷大惡을 專謂之忠臣이 可也나 而武王은 則曰焚炙忠良이라하니
先儒有言하되 忠良一道也니 未有優於忠而劣於良者요 亦未有偏於良而短於忠者라하니 斯言이 不可易矣라
“엊그제 밖에서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소?”
“저번에 온언박을 시켜 칙어勅語라 하며 신에게 말하기를 ‘왜 자신의 행적을 살피지 않는가?’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신은 ‘임금과 신하는 기氣가 같아서 의리가 한 몸을 이룬다.’라는 말은 들었어도 ‘공정한 도리를 갖추지 않고 오직 행적만을 일삼는다.’라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만일 임금과 신하, 위와 아래가 함께 이러한 길을 따른다면 국가의 흥망을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깜짝 놀라 용모를 가다듬으며 말하였다.
注+확矍은 궐厥과 박縛의 반절이니, 깜짝 놀라며 깨닫는 모양이다.
“지난번에 이 말을 하고는 바로 후회했으니 실로 대단히 잘못된 것이오.
공公 또한 마침내 숨기거나 회피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오.”
“신은 몸을 국가에 맡겼으니 정직한 길을 따라 가고 반드시 감히 속이거나 저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폐하께서는 신을 양신良臣이 되게 하시고 신을 충신忠臣이 되게 하지 마소서.”
“양신은 자신도 미명美名을 얻고 임금도 훌륭한 이름을 듣게 되어 자손이 대물려 복록이 끝없이 전해지는 것이고, 충신은 자신도 죽임을 당하고 임금도 큰 악을 범하는 데에 빠져 집안과 나라가 함께 망하여 그 이름만 홀로 남는 것입니다.
나도 반드시 사직社稷을 위한 계책을 잊지 않을 것이오.”
이에 비단 200필을 하사했다.
注+살펴보건대 《자치통감資治通鑑》 정관貞觀 원년元年에 의하면, 위징魏徵이 또 말하기를 “직稷‧설契‧고요皐陶는 양신良臣이고, 용방龍逄‧비간比干은 충신忠臣이다.”라고 했다.
“충신忠臣과 양신良臣은 같은 길이어서 충忠에는 우월하고 양良에는 열등한 경우는 없으며, 양良에는 치우치고 충忠에는 부족한 경우도 없으니, 위공魏公(魏徵)의 말은 지나치게 구분한 것이다.
차라리 ‘신臣은 후직后稷‧설契‧고요皐陶처럼 간언이 실행되며 건의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를 원하고, 용방龍逄‧비간比干처럼 몸이 죽임을 당하며 나라도 망한 경우를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나으니, 이렇게 해야만 임금의 마음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후직‧설과 비간은 이른바 ‘처지를 바꾸면 모두 그러하였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후세에 임금을 섬기는 자들이 부드러우며 온화하게 건의를 드리고 감히 강하게 간언하지 못하면서도 ‘나는 후직‧설‧고요를 본받는다.’라 하고,
면전에서 대들며 쓴소리를 하고 면전에서 군주의 뜻을 꺾고 조정에서 간쟁하는 자가 있을 때는 비난하기를 ‘네가 어떻게 우리 임금을 걸桀‧주紂처럼 받들면서 충신이 되려 하는가.’라고 하는 것은 위공魏公의 말이 계도啓導한 것이다.”
“예로부터 임금은 현명하고 신하는 현량한 것이 마치 복부와 심장, 손과 발이 한 몸에 있는 것과 같이 빈틈없이 잘 어울린 뒤에야 조정의 정사政事가 모두 거행될 수 있으니, 어찌 겉으로 드러난 지엽적인 행적에만 얽매여 스스로 의심하고 도외시할 것이 있겠는가.
태종太宗이 위공魏公에 대해 비록 말을 반드시 듣고 간언을 반드시 따르기는 했지만 의당 겉으로 드러난 행적을 잘 살펴야 한다고 꾸짖었으니, 비석을 쓰러뜨릴 조짐이 이미 여기에서 드러난 것이다.”
“위공魏公의 대답은 참으로 태종太宗의 마음을 놀라서 움직이게 할 만했으니, 어째서인가.
신하가 간언을 하고 임금이 따르면 후직后稷‧설契‧고요皐陶 같은 양신良臣이 될 수 있고,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용방龍逄‧비간比干 같은 충신忠臣이 됨을 잃지 않으니, 충신이 양신과 본디 그다지 간격이 멀지 않은 것이다.
임금이 간언을 듣고 따르면 요堯임금‧순舜임금이 되고, 따르지 않으면 걸왕桀王‧주왕紂王이 된다.
그 거리가 천양지차일 뿐만이 아니니, 태종이 이에 대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살펴보건대 위징魏徵의 충신忠臣과 양신良臣에 대한 논평이 훌륭하기는 하나, 문장의 본의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점이 있으니 어째서인가.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신하들이 미명美名을 획득하고 임금도 훌륭하다는 이름을 듣게 한 것을 오로지 양신良臣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겠지만 《서경書經》 〈주서周書 경명冏命〉에는 “모두 충량忠良을 생각한다.”라고 했고,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신하들이 자신은 죽임을 당하고 임금은 큰 악惡을 범하는 데 빠지게 된 것을 오로지 충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겠지만 무왕武王은 “주紂가 충량忠良한 사람을 태워 죽였다.”라고 했으니,
이는 충신忠臣과 양신良臣을 뒤섞어서 말한 것이다.
자문子文이 벼슬에 나아가 영윤令尹이 되어 일생을 잘 마쳤으니 양신이라고 할 만하지만 공자孔子는 충忠이라고 일컬었고, 엄식奄息이 자기 몸을 희생하여 순장殉葬해서 그 임금을 따랐으니 충신忠臣이라고 할 만하지만 시인詩人은 양良이라고 일컬었다.
그렇다면 위징의 말을 어찌 정론定論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충신과 양신은 같은 길이어서 충忠에는 우월하고 양良에는 열등한 경우는 없으며, 양良에는 치우치고 충忠에는 부족한 경우도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바꿀 수 없는 정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