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六年
에 太宗謂諫議大夫褚遂良曰 卿知起居
하니 比來
注+① 比來:比, 音鼻.記我行事善惡
가
遂良曰 史官之設은 君擧必書하나니 善旣必書하고 過亦無隱이니이다
一則鑑前代成敗事
하여 以爲
하고 二則進用善人
하여 共成政道
하고 三則斥棄群小
하여 不聽讒言
하노니 吾能守之
하여 終不轉也
하노라
注
【集論】唐氏仲友曰 太宗所言은 皆君道라 然謂守而不失하고 亦望史官不書吾惡하니 則有護過之意矣라
伐遼之監不遠而窮兵
하고 用魏徵而仆碑於身後
하고 하니 謂守而不失
은 未免自矜也
라
注
愚按 善惡直書하여 而義自見은 此史臣之職也요 揜其不善하여 而著其善은 此人情之常也라
爲人上者는 其於言行之際에 知善而力行之하고 知惡而力改之는 在我而已라 史臣直筆은 吾不知也라
太宗嘗欲觀史矣한대 而復問起居所記之行事하니 是欲史臣每有以彰其善하고 而有不善者어든 則削而不書也라
所行果出於善하여 始終如一하면 史臣豈得而揜其善乎아
勤行三事之言은 雖爲君道之善이나 而表襮於起居注之臣하니 則似有矜善之意矣라
정관貞觀 16년(642)에
태종太宗이
간의대부諫議大夫 저수량褚遂良에게 말하였다. “
경卿이
기거起居의 직무(황제의 언행을 기록하는 직무)를 담당하는데 근래에
注+비比(근래)는 음音이 비鼻이다. 내가 일을 행한 기록이 좋은가 나쁜가.”
저수량이 대답하였다. “사관史官의 설치는 군주의 거동을 반드시 기록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반드시 기록되고 과실 또한 숨김이 없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짐이 지금 세 가지 일을 부지런히 행하고 있는 것은 또한 〈내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아서〉 사관이 나의 악행을 기록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오.
첫째는 전대의 성공과 실패한 일을 거울삼아 이로써 훌륭한 본보기로 삼으며, 둘째는 선한 사람을 등용하여 함께 정치의 도를 이루는 것이고, 셋째는 소인들을 물리쳐서 참언을 듣지 않게 하는 것이오. 나는 능히 이것을 지켜서 끝까지 바꾸지 않고자 하오.”
注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태종太宗이 말한 것은 모두 임금의 도이다. 그러나 지켜서 잃지 않겠다고 말하고 또 사관이 자신의 악행을 기록할 일이 없기를 바라니 잘못을 옹호하려는 뜻이 있다.
요동遼東을 정벌하였던 경계가 멀지 않은데 전쟁을 끝까지 추구하고, 위징魏徵을 등용하였다가 위징이 죽은 뒤에는 비석을 뒤엎어버리고, 우문사급宇文士及이 아첨하는 줄을 알았지만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해명하였으니, 지켜서 잃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자랑함을 면하지 못한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선악을 곧바로 기록하여 의리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은 사관의 직책이고, 불선을 가려서 선을 드러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윗사람이 된 자는 말과 행동을 할 때에 선을 알아 힘써 그것을 행하고 악을 알아 힘써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은 나에게 있을 뿐이니, 사관史官의 직필直筆은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태종太宗이 일찍이 사초史草를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또 기거起居(사관)가 기록한 일의 행적을 물었으니, 이는 사관에게 매양 자기의 선을 드러내게 하고, 불선이 있거든 삭제하여 기록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행한 것이 과연 선에서 나와서 처음과 끝이 똑같다면 사관이 어찌 그의 선을 가릴 수 있겠는가.
부지런히 세 가지 일을 행한다는 말은 비록 임금의 도이지만 《기거주起居注》(황제의 언행록)를 담당하는 신하에게 드러내었으니, 선을 자랑하는 뜻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