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내가 살펴보건대,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정책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이 모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고, 덕으로 인도하고 예禮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워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다.” 라고 했으니, 정사와 형벌이 덕과 예만 못함을 말한 것이다.
정책은 다스림의 도구이고 형벌은 다스림을 보좌하는 법이고 덕과 예는 다스림을 만들어내는 근본이고, 그 가운데 덕은 또 예의 근본이다.
후세에 정치를 하는 자가 덕과 예에 손색이 있고 교화를 우선하지 않아, 덕과 예가 백성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갖고 잘못을 바로잡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치와 형벌이 백성들로 하여금 모면하게만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게 하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10가지 죄악에 걸리게 하니 이를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근본을 파헤치면 좋은 풍속을 계승하고 교화를 펼치는 자(목민관牧民官)가 죄에 연좌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결국 서로가 사실을 엄폐하여 죄인을 놓치는 데에 이르게 되어 도리어 간악한 일을 조장하고 사악한 일을 용납하여 결국 10가지 죄악에 걸린 자로 하여금 하늘과 땅 사이에 몸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하게 되니 그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태종太宗이 자사刺史를 연좌시키지 않고 다만 명백히 사실을 파헤쳐 그 죄상을 바르게 적용시키도록 했으니, 그 폐해를 깊이 알고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은 자(목민관)는 덕과 예와 정치와 형벌에 대해 본말과 선후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