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人云
注+焉, 於虔切. 相, 去聲. 見君道篇註.이리오하니 君臣之義
에 得不盡忠匡救乎
아
朕嘗讀書
라가 見桀殺關龍逄
注+音旁. 桀, 夏桀, 見君道篇註. 關龍逄, 夏之賢大夫, 諫桀被殺.하고 漢誅鼂錯
注+上, 音潮. 下, 音措. 鼂錯, 潁川人. 漢景帝時爲御史大夫, 請諸侯之罪過削其地, , 袁盎請帝斬錯, 遂斬於東市.하고 未嘗不廢書歎息
하니 公等
은 但能正詞直諫
하여 裨益政教
하라
終不以犯顏忤旨
注+忤, 音午, 逆也.로 妄有誅責
하리라
朕
이 比來
注+比, 音鼻.에 臨朝斷決
할새 亦有乖於律令者
로대 公等以爲小事
라하여 遂不執言
이나 凡大事
는 皆起於小事
라
小事不論하면 大事又將不可救니 社稷傾危가 莫不由此라
호대 率土蒼生
이 罕聞嗟痛
하니 公等爲朕
하여 思隋氏滅亡之事
注+爲, 去聲, 後同.하고
朕爲公等하여 思龍逄鼂錯之誅하여 君臣保全하면 豈不美哉아
君臣之間에 其安危禍福之所在에 未嘗不相與共之也라
夏桀이 爲一己之欲이라 故不恤關龍逄之死라가 龍逄旣誅에 而桀亦不免於亡이요 虞世基가 爲一己之計라 故不諫煬帝過라가 煬帝旣亡에 而世基亦不免於禍라
夫夏桀之殺龍逄과 世基之媚煬帝는 豈不以在己之意爲自得哉아
及其危禍之至하여는 而俱以不免하니 此太宗所以戒其臣하여 使之爲己思煬帝之亡也요 亦爲之念龍逄之死也라
由是言之하면 君之納諫과 臣之進諫이 豈非相爲謀而後에 能相保乎아
愚按 君臣一心
이면 則君體其臣
하고 臣體其君
하여 요
君臣二心
이면 則君不恤其臣
하고 臣不恤其君
하여 라
太宗이 欲爲群臣思龍逄鼂錯之誅하니 是君能以臣之心爲心也요 又使群臣爲己思隋氏滅亡之事하니 是臣能以君之心爲心也라
君이 以臣之心爲心하고 臣이 以君之心爲心하면 其上下之交가 泰乎인저
정관 6년(632)에 태종太宗이 근신에게 말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위태로운데도 붙잡아주지 않고 넘어지는데도 부축해주지 않는다면 저
상相(보조자)을 어디에다 쓰겠는가.’라고 하였으니,
注+언焉(어찌)은 어於와 䖍의 반절이다. 상相(보조자)은 거성去聲이다. 본서 제1편 〈논군도論君道〉의 주註에 보인다. 임금과 신하의 의리에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하고 〈임금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로잡아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소.
짐이 일찍이 책을 읽다가
하夏나라
걸왕桀王이
관룡방關龍逄을 죽이고
注+〈방逄은〉 음이 방旁이다. 걸桀은 하夏나라 걸왕桀王이니, 본서 제1편 〈논군도論君道〉의 주註에 보인다. 관룡방關龍逄은 하夏나라의 어진 대부인데 걸왕桀王에게 간언하다 죽임을 당하였다.한漢나라
경제景帝가
조조鼂錯를 죽인 것을 보고
注+위의 조鼂는 음이 조潮이고, 아래의 착錯는 음이 조措이다. 조조鼂錯는 영천潁川 사람이다.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에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어서 죄과罪過가 있는 제후들의 땅을 삭감할 것을 청하였다. 오吳‧초楚 7국이 마침내 반란하자 원앙袁盎이 황제에게 조조를 참수하기를 청하니, 마침내 동시東市에서 참수되었다. 책을 덮고서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공들은 다만 바른말로 직간하여 정치 교화에 도움을 주도록 하시오.
결코 면전에서 정색하며 간언하다가 내 뜻을 거슬렀다고 해서
注+오忤는 음이 오午이니, 어긴다는 뜻이다. 함부로 주륙하거나 질책하지 않을 것이오.
짐이 근래에
注+비比(근래)는 음이 비鼻이다. 조정에 나와서 결정을 할 때 또한 율령에 어긋난 것이 있었는데, 공들이 작은 일이라 하여 마침내 의견을 말하지 않았으나 무릇 큰일은 모두 작은 일에서 생기기 마련이오.
작은 일을 논의하지 않으면 큰일을 또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니, 사직이 기울고 위태로워지는 것이 이로 말미암지 않는 경우가 없소.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잔인하고 포악한 짓을 하여 필부의 손에 죽었지만 천하의 백성들이 탄식하며 비통해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공들은 짐을 위해
수隋나라가 멸망한 일을 생각하시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짐은 공들을 위해 관용방과 조조가 주살당한 것을 생각하여 임금과 신하가 온전하게 보존되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소.”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편안함‧위태로움‧재앙‧복록이 있는 곳에 서로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夏나라 걸왕桀王은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한 욕심 때문에 관룡방關龍逄의 죽음을 근심하지 않다가 관용방이 죽고 나자 걸왕도 망함을 면하지 못하였고, 우세기虞世基는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한 계책 때문에 양제煬帝의 과실을 간언하지 않다가 양제가 망하고 나자 우세기도 재앙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夏 걸왕桀王이 관용방을 죽인 것과 우세기가 양제에게 아첨한 것은 어찌 자기의 뜻을 스스로 얻었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 위태로움과 재앙이 이르게 되자 모두 재앙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태종太宗이 이 때문에 신하를 경계시켜서 그들에게 태종 자신을 위하여 양제가 망한 것을 생각하게 하고, 태종 또한 그들을 위하여 관용방의 죽음을 생각하게 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말하면 임금이 간언을 받아들이는 것과 신하가 간언을 올리는 것이 어찌 서로 도모한 뒤에 서로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살펴보건대, 임금과 신하가 한 마음이면 임금은 신하를 자기 몸처럼 여기고 신하는 임금을 자기 몸처럼 여겨 위와 아래가 서로 교감하니, 통하는 때이다.
임금과 신하가 두 마음이면 임금은 신하를 친애하지 않고 신하는 임금을 친애하지 않아 위와 아래가 교감하지 못하니, 막히는 때이다.
태종太宗이 여러 신하들을 위하여 관룡방關龍逄과 조조鼂錯의 주륙을 생각하고자 하였으니, 이는 임금이 신하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은 것이고, 또 여러 신하들에게 태종 자신을 위하여 수隋나라가 멸망한 일을 생각하게 하였으니, 이는 신하가 임금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은 것이다.
임금이 신하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고 신하가 임금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으면 위와 아래의 교감이 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