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二十一年
에 太宗在翠微宮
注+ 太宗在翠微宮:翠微宮, 在長安縣. 武德八年置, 貞觀十年廢. 是年復修方成.하여 授司農卿
注+ 授司農卿:司農卿, 唐制, 掌倉儲委積之事.李緯戶部尙書
하니
由是
로 改授洛州刺史
注+ 改授洛州刺史:洛州, 今河南府路.하다
注
【集論】愚按 太宗
이 至是
하여 已倦于勤矣
요 玄齡
이 以
矣
어늘
翠微宴息에 聞老臣有大好髭鬚之語하고 旋卽改授하니 亦可謂留心治道者也라
愚觀自古人君이 蓋有聞諫而不能改者하니 聞諫而能改者는 斯爲善矣라
太宗之用李緯
에 玄齡未嘗諫也
하고 特私有所議耳
어늘 太宗聞而遽改
하니 迨近於
者
라
정관貞觀 21년(647)에
태종太宗이
취미궁翠微宮에서
注+취미궁翠微宮은 장안현에 있다. 무덕武德 8년(625)에 설치하였으며, 정관貞觀 10년(636)에 폐지하였다. 이해에 다시 수리하여 완공하였다. 사농경司農卿注+사농경司農卿은 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고 쌓아두는 일을 관장한다. 이위李緯를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임명하였다.
방현령房玄齡이 이때에 경성京城(장안長安)에서 유수를 맡고 있었는데, 마침 장안에서 온 사람이 있어
태종太宗이 묻기를 “방현령房玄齡이 이위가 상서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이라고 하던가.” 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단지 이위의 수염이 크게 아름답다고 말했을 뿐,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위를
낙주자사洛州刺史로 바꾸어 임명하였다.
注+낙주洛州는 지금의 하남부로河南府路이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이 이때에 이르러 이미 근면성이 게을러졌고, 방현령房玄齡이 원로 준걸로 신하의 자리에 있었는데,
취미연翠微宴에서 편안히 쉴 적에 노신老臣이 “수염만 훌륭하다.” 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는 즉시 관직을 바꾸어 임명하였으니, 역시 치도治道에 마음을 두었던 군주라고 할 만하다.
내가 보건대 옛날부터 군주는 대체로 간언을 듣고도 고치지 못한 자가 있었으니, 간언을 듣고 고치는 자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
태종太宗이 이위李緯를 등용하려고 할 때에 방현령房玄齡은 간언한 적이 없고 다만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태종太宗이 듣고서는 대번에 고쳤으니, 간언하지 않아도 역시 선善에 들어가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미산眉山 소동파蘇東坡가 말하기를 “태종太宗이 간언을 따른 것이 성인에 가깝다.” 라고 하였으니, 어찌 진실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