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初에 太宗謂侍臣曰 隋煬帝가 廣造宮室하여 以肆行幸하니
自西京
으로 至東都
히 離宮別館
이 相望道次
하여 乃至幷州涿郡
注+① 乃至幷州涿郡:今涿州路, 隷腹裏.히 無不悉然
하고
馳道皆廣數百步에 種樹以飾其傍하니 人力不堪하여 相聚爲賊이라
以此觀之
면 廣宮室
하고 好行幸
注+② 好行幸:好, 去聲.이 竟有何益
이리오
故不敢輕用人力
하고 惟令百姓安靜
注+③ 惟令百姓安靜:平聲.하여 不有怨叛而已
니라
정관貞觀 초에 태종이 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수 양제隋 煬帝는 널리 궁실을 만들고 마음대로 행차하였소.
서경西京(
장안長安)에서
동도東都(
낙양洛陽)까지
이궁離宮과
별관別館이 길가에 이어져서
병주幷州와
탁군涿郡까지
注+〈탁군涿郡은〉 지금 탁주로涿州路 복리腹裏에 속한다. 모두 그렇지 않은 곳이 없었소.
치도馳道는 모두 너비가 수백 보였고, 양쪽 옆에 나무를 심어 단장하였으니, 백성의 힘이 감당하지 못하여 서로 모여서 도적이 되었소.
수隋나라 말년에 이르러서는 한 자의 땅과 한 사람의 백성도 더 이상 자기의 소유가 아니었소.
이것으로 살펴보건대 궁실을 넓히거나 행차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注+호好(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결국 무슨 이익이 있소.
이는 모두 짐朕이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본 것이니, 깊이 스스로 훈계하고 있소.
이 때문에 감히 경솔히 인력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백성을 안정시켜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원망하고 배반하지 않게 할 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