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間王孝恭
注+① 河間王孝恭:太祖之子也. 佐高祖, 多進圖策, 獨存方面功, 寬恕退讓, 太宗親重之, 宗室莫比.이 武德初
에 封爲趙郡王
하고 累授東南道行臺尙書左僕射
하니 孝恭旣討平蕭銑輔公祏
하고 遂領江淮及嶺南北
하여 皆統攝之
하여 專制一方
하니 威名甚著
라
累遷禮部尙書
나 孝恭性惟退讓
하여 無驕矜自伐之色
이라 時有特進江夏王道宗
이 尤以將略馳名
하고 兼好學
注+② 尤以將略馳名 兼好學:將‧好, 竝去聲.하여 敬慕賢士
하고 動修禮讓
이라
太宗竝加親待하니 諸宗室中에 惟孝恭道宗이 莫與爲比하니 一代宗英云이러라
注
【集論】愚按 自古國家之將興也엔 天必生英傑奇偉之才於其子弟族屬之間에 所以昌大其門戶하여 而光啓其運祚也라
周之興也
에 有周公康叔
하고 漢之興也
에 有
하고 降及魏晉六朝
하여도 蓋莫不然
이라
孝恭之威名이 與李靖相亞하고 道宗之將略이 與李勣齊肩이로되 又能好學習禮하고 退讓不伐하니 求之布素之士하여도 有不可多得者라
雖未可方之
나 其亦康叔朱虛之流輩歟
인저 嗚呼
라 盛哉
로다
하간왕河間王 이효공李孝恭은
注+태조太祖의 아들이다. 고조高祖를 도와서 계책을 올린 것이 많았고 홀로 한 방면에 공이 있었으며 너그러우며 용서하고 물러나며 사양하니, 태종이 그를 친애하고 중히 여기기를 종실에 비교할 자가 없었다. 武德 초년에
조군왕趙郡王에 봉해지고 여러 번
동남도행대상서좌복사東南道行臺尙書左僕射가 되었다. 이효공은
소선蕭銑과
보공석輔公祏 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나서 마침내
강회江淮와
영남북嶺南北을 점령하여 모두 통솔하여 한 방면을 마음대로 제어하니, 위엄과 명성이 매우 높았다.
여러 번
예부상서禮部尙書가 되었으나, 이효공은 성품이 겸양하여 교만하거나 스스로 자랑하는 기색이 없었다. 당시에
특진特進 강하왕江夏王 이도종李道宗이
병략兵略으로 유명하고, 또한 학문을 좋아하여
注+장將(장수)과 호好(좋아하다)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현명한 인사를 존경하고 흠모하며, 늘 예의와 겸양을 닦았다.
태종太宗은 이들을 모두 친밀하게 대우해주자 여러 종실 중에 이효공과 이도종에게 함께 비할 자가 없었으니, 한 시대의 종실의 영걸이라 하였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예부터 국가가 장차 흥성하려 할 적에는 하늘이 반드시 그 자제와 종족의 사이에서 영걸스럽고 뛰어난 인재를 태어나게 하여 그 문호를 번창하게 하여 그 길운은 밝게 열어주는 것이다.
주周나라의 흥성에는 주공周公‧강숙康叔이 있었고, 한漢나라의 흥성에는 주허朱虛‧동평東平이 있었고, 위魏‧진晉‧육조六朝에 내려가서도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당唐나라가 진양晉陽에서 일어나서 본손과 지손이 더욱 성대해졌으니,
이효공李孝恭의 위엄과 명성은 이정李靖에 버금갈 정도였고 이도종李道宗의 병략兵略은 이적李勣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나, 또 배우기를 좋아하며 예를 익히고 겸양하며 자랑하지 않으니 포의의 선비 중에 찾아보아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
비록 주공周公의 재주의 아름다움에는 견주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강숙‧주허의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아, 성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