隋煬帝承文帝餘業
하여 海內殷阜
하니 若能常處關中
注+① 若能常處關中:處, 上聲.이면 豈有傾敗
리오
不納
注+② 不納董純崔象:皆隋之臣.等諫諍
하여 身戮國滅
하여 爲天下笑
하니
朕每思之에 若欲君臣長久하고 國無危敗인댄 君有違失에 臣須極言이니
朕聞卿等規諫하면 縱不能當時卽從이나 再三思審하여 必擇善而用之니라
정관貞觀 13년(739)에 태종太宗이 위징魏徵 등에게 말하였다.
“
수 양제隋 煬帝는
문제文帝의 남은 왕업을 이어받아 천하가 매우 부유하였으니, 만일 항상
관중關中에 거처하였다면
注+처處(살다)는 상성上聲이다. 어찌 멸망하였겠소.
마침내 백성을 돌아보지 않고 기한 없이 유람을 하였으며,
동순董純과
최상崔象注+〈동순董純과 최상崔象은〉 모두 수隋나라의 신하이다.수隋 양제煬帝가 용선龍船을 타고 강도江都로 유람하다(《제감도설帝鑑圖說》) 등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곧장
강도江都로 행차하여, 자신은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멸망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비록 또 제위帝位의 길고 짧음을 하늘에 맡긴다고 할지라도 선행에 복을 주고 악행에 재앙을 내리는 것은 또한 인사人事에 말미암는 것이오.
짐朕은 매번 그것을 생각할 적에 만약 군신 간의 관계가 오래 유지되고 나라에 위험이 없게 하려고 한다면 군주가 잘못이 있을 때 신하는 지극히 간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소.
그러니 짐朕이 경들의 간언을 들으면 비록 당시에 곧바로 따르지 않더라도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살펴서 반드시 좋은 의견을 택하여 받아들일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