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五年 太宗謂侍臣曰 事猶影響하나니
정관貞觀 5년(631)에 태종太宗근신近臣들에게 말하였다. “천도天道가 선한 자에게 복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화를 내리는 것은 그 일이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법이오.
昔啓人注+① 昔啓人:本突厥啓民可汗, 避太宗諱改曰人.亡國來奔이어늘 隋文帝不恡粟帛하고 大興士衆하여 營衛安置하여 乃得存立이러니
옛날에 계민가한啓民可汗注+계인啓人은〉 본래 돌궐突厥계민가한啓民可汗인데, 태종의 인 〈‘’을〉 피하여 ‘’으로 고쳤다. 나라가 망하자 나라로 망명하였는데, 수 문제隋 文帝가 곡식과 비단을 아끼지 않고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군영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어서 존립할 수 있었소.
旣而彊富 子孫不思念報德하고 纔至하여 注+② 卽起兵圍煬帝於鴈門:鴈門, 今爲代州, 隸.이러니
그런데 부강해지고 나자 그 자손들은 나라의 은덕에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조금 뒤 시필가한始畢可汗 때에 이르러 병사를 일으켜 수 양제隋 煬帝안문鴈門에서 포위하였소.注+안문鴈門은 지금의 대주代州이니, 복리腹裏에 속한다.
及隋國亂 又恃彊深入하여 遂使昔安立其國家者 身及子孫 竝爲破亡하니 豈非背恩忘義所至也리오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또 병력의 강성함을 믿고 나라 안으로 깊숙이 쳐들어와서 마침내 과거에 자신의 나라를 안정시켜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당사자와 자손까지 모두 힐리가한頡利可汗에게 패망을 당하게 하였으니, 어찌 은혜와 의리를 저버려서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겠소.”
群臣咸曰 誠如聖旨니이다
그러자 신하들이 모두 “진실로 폐하의 말씀과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集論】愚按 三代之待夷狄也 來者不拒하고 去者不追하니 蓋不以中國之治治之也
내가 살펴보건대 삼대시대三代時代이적夷狄을 다룰 때에는 귀의하는 자들을 막지 않고, 떠나가는 자들을 쫓지 않았으니, 이는 중원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그들을 다스린 것이 아니다.
文王之伐玁狁 止於城彼朔方而已 宣王之伐淮夷 止於徐方來庭而已 曷嘗盡欲郡縣其地而臣妾其人哉
문왕文王험윤玁狁을 정벌하였을 때에는 저 북방에 성을 쌓는 데 그쳤고, 선왕宣王회이淮夷를 정벌했을 때에는 나라가 조공을 바치는 데 그쳤으니, 어찌 모두 그들의 영토에 군현郡縣을 설치하고, 그 사람들을 신첩臣妾으로 만들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後世不明華夷之辨하여 務爲懷遠之圖하니 適以自遺患而已矣
후세에는 중원과 오랑캐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아, 힘써 먼 나라를 무마하는 계획을 하였으니, 다만 절로 근심거리만 남겼을 뿐이다.
故漢宣扶立이로되 而建武多北邊之擾하고 隋文撫存啓民이로되 而煬帝有鴈門之圍하니 由不能以三代爲法故也 可不戒哉
그러므로 한 선제漢 宣帝흉노匈奴호한야呼韓邪를 도와주었으나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연간(25~26)에 북방에 소란이 많았고, 수 문제隋 文帝계민가한啓民可汗을 잘 돌봐주었지만 수 양제隋 煬帝안문鴈門에서 포위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모두 삼대三代를 본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天道福善禍淫 : 《書經》 〈商書 湯誥〉에 보인다.
역주2 (失脫)[始畢] : 저본에는 ‘失脫’로 되어 있으나, 《新譯貞觀政要》(三民書局, 2008)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舊唐書》 〈突厥傳〉에 의하면 始畢可汗은 啓民可汗의 아들이다.
역주3 卽起兵圍煬帝於鴈門 : 《隋書》 〈突厥傳〉에 “〈隋 煬帝 11년(615)에〉 始畢이 그의 부락을 인솔하여 침입하고 양제를 雁門에서 포위하자 양제는 조칙을 내려 여러 郡에 병력을 징발하여 行在所에 오게 하였다. 지원군이 이르게 되자 시필은 군대를 이끌고 떠나갔다. 이로부터 朝貢이 마침내 끊겼다.[始畢率其種落入寇 圍帝於雁門 詔諸郡發兵赴行在所 援軍方至 始畢引去 由是朝貢遂絶]”라고 하였다.
역주4 頡利 : 頡利可汗으로 始畢可汗의 아우이다. 貞觀 4년(630)에 唐나라 군대가 東突厥을 크게 격파하고 힐리가한을 사로잡았다.
역주5 腹裏 : 元나라 때 中書省에서 直轄하는 地區의 通稱이다.
역주6 呼韓 : 匈奴의 군주 呼韓邪單于(호한야선우)의 약칭이다. 漢 宣帝 때 匈奴에 내분이 생기자 呼韓邪單于가 한나라에 귀부하여 한나라의 변방을 지켰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