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三年
에 魏徵恐太宗不能克終儉約
하고 近歲頗好奢縱
注+① 近歲頗好奢縱:好, 去聲, 後同.하여
其語道也엔 必先淳朴而抑浮華하고 其論人也엔 必貴忠良而鄙邪佞하고
言制度也엔 則絶奢靡而崇儉約하고 談物産也엔 則重穀帛而賤珍奇나
然受命之初엔 皆遵之以成治하고 稍安之後엔 多反之而敗俗하니 其故何哉오
豈不以居萬乘之尊
하며 有四海之富
하여 하고 所爲而人必從
이라
語曰
이요 非行之難
이라 終之斯難
이라하니 所言信矣
니이다
정관貞觀 13년(639)에
위징魏徵은
태종太宗이 검약을 끝까지 잘하지 못하고 근래에 사치와 방종을 매우 좋아함을
注+호好(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염려하여
상소를 올려 간언하였다. “신이 살펴보건대 예로부터 제왕이 천명을 받아 나라를 세울 적에 모두 만대까지 전하려 하여 자손에게 계책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조정에서 편안히 팔짱을 끼고 일삼는 바 없이 천하에 정치를 펼쳤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말할 때는 반드시 순박함을 우선하고 화려한 것을 억눌렀으며, 사람됨을 논할 때는 반드시 충성스럽고 선량함을 귀하게 여기고 간사하고 아첨함을 비루하게 여겼으며,
제도를 말할 때는 사치와 낭비를 끊고 검약을 숭상하였으며, 생산물을 말할 때는 곡물과 비단을 소중히 여기고 진기한 물건을 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천명을 받은 처음에는 모두 이를 따라서 치세를 이룩하였고, 차츰 안정된 후에는 대부분 이와 반대로 하여 풍속을 무너뜨렸으니,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어찌 만승萬乘의 높음에 있고 사해의 부유함을 소유하여서 말하는 것에 거역하는 자가 없고 행하는 것에 사람들이 반드시 따르므로,
공평한 도리는 사사로운 정에 빠지고 예절은 기호와 욕망에 훼손되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속담에 이르기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어렵고, 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끝맺음을 하기가 어렵다.’라고 하였으니, 말이 믿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