朕端拱無爲하여 四夷咸服하니 豈朕一人之所致리오 實賴諸公之力耳라
當思善始令終
하여 永固鴻業
하여 子子孫孫
이 遆相輔翼
하여 使豐功厚利
로 施於來葉
注+① 施於來葉:施, 平聲.하여
令數百年後
注+② 令數百年後:令, 平聲.에 讀我國史
로 鴻勳茂業
을 粲然可觀
이니
豈惟稱隆周
及建武
注+③ 建武:光武年號.永平
注+④ 永平:明帝年號.故事而已哉
아
房玄齡因進曰 陛下撝挹之志에 推功群下나 致理升平은 本關聖德하니 臣下何力之有잇가
惟願陛下有始有卒
注+⑤ 有始有卒:子聿切.하시면 則天下永賴
리이다
太宗이 又曰 朕觀古先撥亂之主가 皆年踰四十이요 惟光武年三十三이로되
但朕年十八에 便擧兵하여 年二十四에 定天下하고 年二十九에 昇爲天子하니 此則武勝於古也라
少從戎旅
注+⑥ 少從戎旅:少, 去聲.하여 不暇讀書
러니 貞觀以來
로 手不釋卷
하여 知風化之本
하며 見政理之源
하고
行之數年에 天下大理하여 而風移俗變하며 子孝臣忠하니 此又文過於古也라
昔周秦已降으로 戎狄內侵이러니 今戎狄이 稽顙하여 皆爲臣妾하니 此又懷遠勝古也라
注
【集論】愚按 詩書所載聖君賢相之所以保治於雍熙泰和之時者는 固幸功業之克成이나 未嘗以功業而自足也라
太宗謂호대 欲使豐功厚利로 施於永久하여 鴻勳盛業을 粲然可觀이니
此文武之懷遠也어늘 不知太宗之所謂懷遠又果能勝乎아
愚然後知太宗矜功伐善이 意出於中心이요 而善始愼終之語가 不過虛言也라
玄齡於此에 能獎其所已至나 而不能勉其所未至하니 惜哉라
정관貞觀 9년(635)에 태종太宗이 공경公卿들에게 말하였다.
“짐은 단정히 팔짱을 끼고 일삼는 바가 없어도 사방 오랑캐들이 모두 복종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짐 한 사람이 이룬 것이겠소. 실로 여러 공들의 힘에 힘입은 것이오.
마땅히 처음을 잘하고 끝을 좋게 할 것을 생각하여 영원히 왕업을 공고히 하여 자손 대대로 번갈아 서로 도와 보필하여 풍성한 공과 후한 이익이 후대에 베풀어지게 하여
注+시施(베풀다)는 평성平聲이다.
수백 년 후에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우리 국사를 읽는 자들에게 큰 공훈과 대업을 찬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하오.
그렇게 한다면 어찌 융성했던
주周나라와 빛났던
한漢나라와
후한後漢의
건무建武注+〈건무建武는〉 광무제光武帝의 연호이다.‧
영평永平注+〈영평永平은〉 명제明帝의 연호이다. 때의 고사만을 칭송하겠는가.”
방현령이 이어 나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겸손한 마음에 신하들에게 공을 미루어주시지만 치세를 이루고 태평하게 된 것은 본래 성덕聖德에 관련되는 것이니 신하들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원하건대 폐하께서 처음과 끝을 모두 갖추신다면
注+〈졸卒(마치다)은〉 자子와 율聿의 반절이다. 천하가 영원히 의지할 것입니다.”
태종이 또 말하였다. “짐이 살펴보건대 옛날에 난세를 다스린 군주는 모두 40이 넘은 나이였고, 오직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만이 33세였소.
다만 짐은 18세에 군대를 일으켜서, 24세에 천하를 평정하였고, 29세에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는 무공이 옛날 군주보다 나은 것이오.
젊어서는 군무에 종사하느라
注+소少(젊다)는 거성去聲이다. 독서할 여가가 없었는데,
정관貞觀 이래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보아, 풍속과 교화의 근본을 알며 정사를 다스리는 근원을 알았소.
이를 실행한 지 수년에 천하가 크게 다스려져서 풍속이 바뀌었으며, 자녀들은 효도하고 신하는 충성하니, 이것 또한 문덕文德이 옛날보다 앞선 것이오.
옛날 주周나라와 진秦나라 이후로 융적戎狄이 중원中原을 침략했었는데, 지금은 융적이 머리를 조아려서 모두 신첩臣妾이 되었으니 이는 먼 변방의 사람을 회유한 것이 옛날보다 나은 것이오.
이 세 가지를 짐이 무슨 덕으로써 감당하겠소.
이미 이 공업을 세웠으니, 어찌 처음을 좋게 하여 끝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소.”
注
내가 살펴보건대 《시경詩經》‧《서경書經》에 실려 있는 성군聖君과 현상賢相이 화평하고 태평한 때에 보존하고 다스린 것은 진실로 공업의 완성을 다행스럽게 여긴 것이지만 그 공업을 스스로 만족해한 적은 없었다.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풍성한 공과 후한 이익이 영원히 베풀어지게 하여 큰 공훈과 대업을 찬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하오.
후세 사람들이 융성했던 주周나라와 빛났던 한漢나라만 칭송하지 않도록 하시오.”라고 하였으니 뜻한 것이 높다.
그러나 빛났던 한나라는 미치기를 바랄 수 있지만 융성했던 주나라는 어찌 이 정도에 그치겠는가.
저 높은 은하수가 하늘에서 무늬가 되어, 이를 제도로 하면 예악禮樂이 되고 펼치면 법도가 되니,
이것이 문왕文王의 문文인데 태종의 이른바 문文이 과연 이를 능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비할 데 없는 공렬로 약한 나라를 위무하며 우매한 나라를 치고, 공을 이루자 방패와 창을 거두며 활과 화살을 집어넣으니,
이것이 무왕武王의 무武인데 태종의 이른바 무武가 과연 이를 능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큰 나라는 그 힘을 두려워하고 작은 나라는 그 덕을 그리워하여 중화中華와 만맥蠻貊이 순종하지 않음이 없고
이로 말미암아 이 중국을 사랑하여 사방을 편안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문왕‧무왕이 먼 변방의 사람을 회유懷柔한 것인데 태종의 이른바 먼 변방의 사람을 회유한 것이 또한 과연 이를 능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뒤에 태종이 공을 자랑하고 선행을 과시한 것이 그 의도가 마음속에서 나왔고 처음을 잘하고 끝까지 삼가야 한다는 말이 헛소리에 불과한 것을 알았다.
방현령이 여기에서 이미 이룩한 것은 장려하였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은 면려하지 못했으니, 애석하다.
뒷 장章의 위징魏徵의 대답처럼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