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元年에 太宗謂侍臣曰 自古帝王이 凡有興造에 必須貴順物情하나니
昔大禹鑿九山
注+① 昔大禹鑿九山:禹貢曰 “九山刊旅.” 蔡氏註 “九州之山也, 如冀州則梁岐之類.”하시고 通九江
注+② 通九江:禹貢曰 “九江孔殷.” 蔡氏註 “卽今之洞庭也. 今沅水‧漸水‧元水‧辰水‧敍水‧酉水‧澧水‧資水‧湘水皆合於洞庭, 故曰九江. 漢志所謂九江, 非是.”에 用人力極廣
하되 而無怨讟者
는 物情所欲
이요 而衆所共有故也
라 秦始皇營建宮室
에 而人多謗議者
는 爲徇其私欲
注+③ 爲徇其私欲:爲, 去聲.하고 不與衆共故也
라
朕今欲造一殿
하여 材木已具
하되 遠想秦皇之事
하여 遂不復作也
注+④ 遂不復作也:復, 音缶.하니
古人云 不作無益害有益
注+⑤ 不作無益害有益:周書旅獒之辭.이라하고 不見可欲
이면 使民心不亂
注+⑥ 不見可欲 使民心不亂:.이라하니 固知見可欲
이면 其心必亂矣
라
至如雕鏤
注+⑦ 至如雕鏤:鏤, 音陋.器物
과 珠玉服玩
히 若恣其驕奢
하면 則危亡之期
를 可立待也
라 自王公已下
로 第宅車服婚嫁喪葬
注+⑧ 喪葬:喪, 平聲.에 準品秩不合服用者
를 宜一切禁斷
하라하다
由是二十年間에 風俗簡樸하고 衣無錦繡하며 財帛富饒하여 無飢寒之弊하다
정관貞觀 원년(627)에 태종太宗이 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제왕들은 토목공사를 일으킬 때에는 반드시 민심을 따르는 것을 귀하게 여겼소.
옛날
우禹가
구주九州의 산을 뚫고
注+《서경書經》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구주九州의 산을 깎아 여제사旅祭祀를 지내다.”라고 하였는데, 채씨蔡氏의 주註에 “구주의 산이니, 예컨대 기주冀州에서는 양산梁山과 기산岐山의 부류이다.”라고 하였다. 구주의 강을 소통시킬 적에
注+《서경書經》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말하였다. “구강九江이 매우 바르게 흐른다.”라고 하였는데 채씨蔡氏의 주註에 “구강은 곧 지금의 동정호洞庭湖이다. 지금 원수沅水‧점수漸水‧원수元水‧진수辰水‧서수敍水‧유수酉水‧예수澧水‧자수資水‧상수湘水가 모두 동정호에서 합류하니, 그러므로 구강九江이라 한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말한 구강九江은 이것이 아니다.” 지극히 널리 사람의 힘을 사용하였지만 원망과 비방이 없었던 것은 민심이 원하는 바였고, 대중이 공유하는 바였기 때문이었소.
진 시황秦 始皇이
아방궁阿房宮을 세울 때 백성들이 대부분 비난한 것은 사욕을 따르고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대중들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짐朕은 지금 전각 하나를 지으려 하여 이미 재목을 갖추어놓았으나, 멀리 진 시황의 일을 생각하여 결국 다시 짓지 않기로 하였소.
注+복復(다시)는 음音이 부缶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무익한 일을 하여 유익한 일을 해치지 않는다.’ 하고
注+《서경書經》 〈주서周書 여오旅獒〉의 말이다., ‘욕심을 드러내지 않으면 민심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고
注+노자老子의 말이다. 하였으니, 진실로 욕심을 드러내면, 그 마음이 반드시 어지러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소.
예를 들면 아름답게 조각된
注+누鏤(새기다)는 음音이 누陋이다. 그릇과 주옥과 옷과 노리개에 이르기까지 만일 교만과 사치를 마음대로 한다면 곧 멸망의 시기를 서서 기다리는 것이오. 왕공 이하로 저택‧수레‧의복과 혼례‧장례 등에는
注+상喪(초상)은 평성平聲이다. 관품과 봉록에 준하여 쓰임이 합당치 않은 것을 일절 금하도록 하시오.”
이로 인해 20년간 풍속은 간결하고 소박해지고, 옷도 비단‧자수물이 없어졌으며, 재물과 비단이 풍부해져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폐단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