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貞觀 12년(638)에 태종太宗이 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제후諸侯가 조회하러 들어오면 탕목읍湯沐邑이 있어注+옛날에 제후諸侯들이 경사京師에는 조회할 때 숙박하는[조숙朝宿] 읍邑이 있고 태산泰山에는 탕목읍湯沐邑이 있었으니 조숙읍朝宿邑을 탕목읍湯沐邑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후諸侯가 경사京師에 오는 것은 왕에게 조회하는 것이 위주였으므로 조숙朝宿이라 명명한 것이고, 왕의 순수巡狩를 따르는 것은 제사를 보조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데 제사 지낼 땐 반드시 목욕하므로 탕욕湯浴이라 명명한 것이니, 내용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한 것이다. 100수레의 꼴과 볏짚을 주며注+추芻는 꼴이고 화禾는 볏단이니, 〈추화芻禾는〉 군마軍馬에게 공급하는 것이다.빈객賓客을 대우하는 예禮로 대접했고 낮에는 정전正殿에 앉고 밤에는 마당에 횃불을 설치해서注+〈요燎(횃불)는〉 음音이 요療이며 횃불이다. 제후諸侯가 조회 오면 사훤司烜이 100개의 횃불을 함께 묶어 문 안에 설치한다., 그들을 만나 그 노고를 묻는 것을 생각하였소.
또 한漢나라 때도 경성京城에 여러 군郡들을 위해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저사邸舍(경사京師에 있는 제후국諸侯國이나 군郡 소속의 객관客館)를 세웠었소.
요사이 들으니, 경사京師에 오는 고사考使가注+〈사使(사신)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고사考使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