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二年
에 中書舍人高季輔
가 上疏曰 竊見密王元曉等
注+① 密王元曉等:密王元曉, 高祖第二十一子也.은 俱是懿親
이라 陛下友愛之懷
가 義高古昔
하사 分以車服
하고 委以藩維
하시니 須依禮儀
하여 以副瞻望
이니이다
比見
注+② 比見:比, 音鼻.帝子拜諸叔
하면 諸叔
이 亦卽答拜
하니 王爵旣同
이요 家人有禮
이니 豈合如此顛倒
注+③ 豈合如此顚倒昭穆:昭, 如字. 古者宗廟之次, 左爲昭, 右爲穆, 而子孫亦以爲序. 說見朱子中庸或問.이리잇가
伏願一垂訓誡
하사 永循彞則
하소서 太宗
이 乃詔元曉等
하여 不得答
兄弟拜
하다
注
【集論】唐氏仲友曰 詩書所載는 必起宗族하나니 家之未正이면 其如邦何리오
正帝子諸叔之昭穆
은 豈惟得敍族之禮
리오 亦以明本支
하여 見
之義
라
注
愚按 禮曰 天子之元子
는 士也
니 天下無生而貴者
라하니 入學
에는 所以尙敬也
라
矧以帝諸子
로 而受諸叔之答拜
는 殊失
니 豈禮也哉
리오 季輔之言
과 太宗之詔
는 誠爲彞則
이라
정관貞觀 2년(628)에
중서사인中書舍人 고계보高季輔가 상소하였다. “삼가 살펴보니,
밀왕密王 이원효李元曉 등은
注+밀왕密王 이원효李元曉는 고조高祖의 21번째 아들이다. 모두 가까운 종친입니다. 우애로운 폐하의 마음이
정리情理에 있어 상고시대보다 훨씬 고상하셔서 수레와 의복을 나눠주고
번국藩國을 맡기셨으니, 반드시
예의禮儀에 맞게 대우하여 뭇사람들의 소망에 부응해야 합니다.
근래에 보니
注+비比(근래, 요즘)는 음音이 비鼻이다.,
황자皇子들이
제숙諸叔에게 절을 하면
제숙諸叔도 즉시
답배答拜를 하는데, 왕의 작호가 같고 집안사람들 간에 지켜야 할 예의가 있으니, 어찌 이처럼
소昭와
목穆을 전도시켜서야 되겠습니까.
注+소昭는 본래 음의音義대로 독해한다. 옛날에 종묘宗廟의 순서는 왼쪽에 배열된 것은 소昭이고 오른쪽에 배열된 것은 목穆인데 자손子孫 역시 그에 따라 배열된다. 내용은 주자朱子의 《중용혹문中庸或問》에 보인다.
삼가 바라건대 훈계를 내리시어 영원히 그 원칙을 따르게 하소서.” 태종太宗이 이원효 등에게 조칙을 내려, 오왕吳王 이각李恪과 위왕魏王 이태李泰의 형제 등에게 답배를 하지 말도록 했다.
注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 실려 있는 것은 반드시 종족宗族으로부터 시작하니 집안이 바르지 못하면 그 나라를 어찌하겠는가.
황자皇子와 숙부 간의 소昭와 목穆을 바로잡는 것은 어찌 친족 관계의 예절을 규정하는 것일 뿐이겠는가. 또한 본말을 밝혀, ‘존귀한 자리에 두 윗사람이 없다.’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의례儀禮》 〈사관례士冠禮〉에 “천자天子의 원자元子는 사士이니,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은 없다.” 고 하였으니, 원자元子가 태학太學에 들어가서 치주齒冑하는 것은 공경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황자皇子들에게 숙부의 답배를 받게 하는 것은 친족을 친히 하는 데 차등을 두는 것에 크게 잘못된 것이니 어찌 예禮라 할 수 있겠는가. 고계보高季輔의 말과 태종太宗의 조칙은 참으로 준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