侍中
注+唐制, 門下省侍中, 掌出納帝命, 相國儀. 凡國家之務, 與中書令參總而顓判國事, 宰相職也.魏徵對曰
任賢能
하고 受諫諍
하면 即可
注+即, 一作則.어늘 何謂爲難
가
觀自古帝王컨대 在於憂危之間하면 則任賢受諫이로되
及至安樂
注+音洛.하여는 必懷寬怠
하여 言事者惟令兢懼
注+令, 平聲.하여 日陵月替
하여 以至危亡
하니 聖人所以居安思危
는 正爲此也
注+爲, 去聲.니이다
【集論】愚按 太宗以間世之才로 内芟群雄하고 外淸四夷하여 其視取天下有不足爲者어늘 況於守天下乎아
故魏徵因其問하여 而對以甚難하니 魏徵豈欲難人之所易哉아
蓋自古로 人主在憂危하면 則思敬畏하고 思敬畏하면 則亂者治矣요
居安樂하면 則懐寛怠하고 懐寛怠하면 則治者亂矣라
정관貞觀 15년(641)에 태종太宗이 근신에게 말하였다.
“
천하天下를 지키는 것이 어렵소, 쉽소?”
注+〈이易(쉽다)는〉 이以와 시豉의 반절이다.
시중侍中注+당唐나라 제도에 의하면, 문하성門下省 시중侍中은 황제의 명령을 출납하고 국가의 예의를 돕는 것을 관장한다. 모든 국가적 사무를 중서령中書令과 함께 참여하고 총괄하여 국사國事를 오로지 결단하니 재상宰相의 직책이다. 위징이 대답하였다.
“현능한 이를 임용하고 간쟁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注+즉即은 어떤 본에는 즉則으로 되어 있다. 어째서 어렵다고 하는 것이오?”
“옛날의 제왕들을 살펴보건대 근심스럽고 위험한 때에는 현인을 임용하고 간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안락할 때에는
注+〈락樂(즐겁다)은〉 음이 낙洛이다. 반드시 느슨하고 게으른 생각을 품어 일을 말하는 신하들을 두렵게 만들어 〈현인의 임용과 간언이〉
注+영令(하여금)은 평성平聲이다. 나날이 폐기되어 위태롭고 망하는 데 이르렀으니,
성인聖人이 편안함에 거처하면서도 위태로울까 염려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편안하면서 두려워할 수 있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습니까.”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은 세상에 드문 인재로서 안으로는 여러 영웅들을 제거하고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들을 숙청하여 천하를 차지하는 것을 손쉬운 일로 보았는데, 하물며 천하를 지키는 것쯤이겠는가.
그러므로 위징魏徵이 그 질문에 계기로 매우 어렵다고 대답하였으니, 위징이 어찌 사람이 하기 쉬운 것을 어렵게 하려고 하였겠는가.
예로부터 임금이 근심스럽고 위태로운 지경에 있으면 생각이 경건하고 조심스러워지며, 생각이 경건하고 조심스러우면 어지러운 것이 다스려진다.
놓인 상황이 편안하고 즐거우면 품은 의지가 느슨하고 게을러지며, 품은 의지가 느슨하고 게을러지면 다스려진 것이 어지러워진다.
주周나라 선왕宣王은 북쪽을 정벌하는 날에는 근후하였으나 뜰의 횃불이 새벽을 향할 때에는 근후하지 않았고, 진晉나라 무제武帝는 오吳나라를 평정하기 이전에는 근후할 줄 알았으나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는 근후하지 않았고, 당唐나라 명황明皇(玄宗)은 애초에 위후韋后 등을 주벌하였으나 안락하게 되자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고, 당唐나라 헌종憲宗은 회채淮蔡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나 전쟁이 그치자 진홍지陳弘志에게 시해당하는 화가 일어났다.
성대한 치적을 남긴 요순堯舜시대에도 매일 처리하는 번다한 정사를 신중히 처리한 것이 어찌 공연히 그런 것이겠는가.
옛날 노魯나라 정공定公이 나라를 흥기시킬 한 마디 말을 묻자, 공자孔子가 임금 노릇 하기 어렵다는 말로 대답하였으니, 그렇다면 위징의 말은 아마도 나라를 흥기시킬 한 마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