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宗自卽位之始
로 霜旱爲災
하여 米穀踊貴
하고 하여 州縣騷然
하니 
                        		
                        		
                        		
	                     		
			                       	
			                       	
	                     		
	                     		
		                        
                        	
                        	
                        	
                        	
                        		
                        			
                        			
			                        
			                        	帝志在憂人하여 銳精爲政하며 崇尙節儉하며 大布恩德이러라
			                         
                        		
                        		
                        		
	                     		
			                       	
			                       	
	                     		
	                     		
		                        
                        	
                        	
                        	
                        	
                        		
                        			
                        			
			                        
			                        	是時
에 自京師
로 及河東
注+古冀州之域, 今河東道.河南
注+古兖州之域, 今河南等處.隴右
注+古梁州之域, 今陝西等處.히 饑饉尤甚
注+饑, 音飢. 饉, 音僅. 穀不熟曰饑, 菜不熟曰饉.하여 一匹絹
에 纔得一斗米
라 
                        		
                        		
                        		
	                     		
			                       	
			                       	
	                     		
	                     		
		                        
                        	
                        	
                        	
                        	
                        		
                        			
                        			
			                        
                        		
                        		
                        		
	                     		
			                       	
			                       	
	                     		
	                     		
		                        
                        	
                        	
                        	
                        	
                        		
                        			
                        			
			                        
			                        	至貞觀三年
하여 關中
注+漢書, 關中左殽‧函, 右隴‧蜀. 太宗分天下爲十道, 此爲關西, 唐建都之地也, 今陝西省.豐熟
하여 咸自歸鄕
하여 竟無一人逃散
하니 其得人心
이 如此
요 
                        		
                        		
                        		
	                     		
			                       	
			                       	
	                     		
	                     		
		                        
                        	
                        	
                        	
                        	
                        		
                        			
                        			
			                        
			                        	加以從諫如流
하고 雅好儒術
注+一作學. 好, 去聲.하여 孜孜求士
하여 務在擇官
하고 改革舊弊
하여 興復制度
하니 每因一事
하여 觸類爲善
이러라 
                        		
                        		
                        		
	                     		
			                       	
			                       	
	                     		
	                     		
		                        
                        	
                        	
                        	
                        	
                        		
                        			
                        			
			                        
			                        	初
에 息隱海陵之黨
注+息隱, 高祖長子也, 名建成. 初立爲皇太子. 海陵, 高祖第四子也, 名元吉. 初封齊王. 建成荒色嗜酒, 畋遊無度, 見秦王功高, 與元吉謀害秦王. 秦王知之, 遂殺二人. 旣卽帝位, 乃封建成爲息王, 謚曰隱. 元吉爲海陵王, 謚曰剌.이 同謀害太宗者
가 數百千人
이나 에 復引居左右近侍
어늘 心術豁然
하여 不有疑阻
하니 時論
이 以爲能斷決大事
하여 得帝王之體
러라 
                        		
                        		
                        		
	                     		
			                       	
			                       	
	                     		
	                     		
		                        
                        	
                        	
                        	
                        	
                        		
                        			
                        			
			                        
			                        	深惡官吏貪濁
注+惡, 烏去聲.하여 有枉法受財者
하면 必無赦免
하고 在京
에 有犯贓者
면 皆遣執奏
하여 隨其所犯
하여 置以重法
하니 
                        		
                        		
                        		
	                     		
			                       	
			                       	
	                     		
	                     		
		                        
                        	
                        	
                        	
                        	
                        		
                        			
                        			
			                        
                        		
                        		
                        		
	                     		
			                       	
			                       	
	                     		
	                     		
		                        
                        	
                        	
                        	
                        	
                        		
                        			
                        			
			                        
			                        	制馭王公妃主之家
와 大姓豪猾之伍
하니 皆畏威屏跡
注+屏, 音餅.하여 無敢侵欺細人
하고 商旅野次
호되 無復盜賊
하고 囹圄常空
注+囹, 音零. 圄, 音語. 周獄名也.하고 馬牛布野
하며 外戶不閉
요 
                        		
                        		
                        		
	                     		
			                       	
			                       	
	                     		
	                     		
		                        
                        	
                        	
                        	
                        	
                        		
                        			
                        			
			                        
                        		
                        		
                        		
	                     		
			                       	
			                       	
	                     		
	                     		
		                        
                        	
                        	
                        	
                        	
                        		
                        			
                        			
			                        
			                        	行旅自京師
로 至于嶺表
注+五嶺之外, 今二廣之地.하며 自山東
으로 至于滄海
注+山東, 古冀州之域, 今濟南等路. 滄海, 東海之名也.히 皆不賚粮
하고 取給於路
하고 入山東村落
하여 行客經過者
注+過, 平聲.는 必厚加供待
注+供, 平聲.하며 或發時有贈遺
注+去聲, 饋送也.하니 此皆古昔未有也
라 
                        		
                        		
                        		
	                     		
			                       	
			                       	
	                     		
	                     		
		                        
                        	
                        	
                        	
                        	
                        		
                        			
                        			
			                        
                        		
                        		
                        		
	                     		
			                       	
			                       	
	                     		
	                     		
		                        
                        	
                        	
                        	
                        	
                        		
                        			
                        			
			                        
                        		
                        		
                        		
	                     		
			                       	
			                       	
	                     		
	                     		
		                        
                        	
                        	
                        	
                        	
                        		
                        			
                        			
			                        
			                        	其除隋之亂은 比迹湯武요 致治之美는 庶幾成康이로다
			                         
                        		
                        		
                        		
	                     		
			                       	
			                       	
	                     		
	                     		
		                        
                        	
                        	
                        	
                        	
                        		
                        			
                        			
			                        
                        		
                        		
                        		
	                     		
			                       	
			                       	
	                     		
	                     		
		                        
                        	
                        	
                        	
                        	
                        		
                        			
                        			
			                        
			                        	至其牽於多愛하여 復立浮屠하고 好大喜功하여 勤兵於遠은 此中材庸主之所常爲라
			                         
                        		
                        		
                        		
	                     		
			                       	
			                       	
	                     		
	                     		
		                        
                        	
                        	
                        	
                        	
                        		
                        			
                        			
			                        
                        		
                        		
                        		
	                     		
			                       	
			                       	
	                     		
	                     		
		                        
                        	
                        	
                        	
                        	
                        		
                        			
                        			
			                        
                        		
                        		
                        		
	                     		
			                       	
			                       	
	                     		
	                     		
		                        
                        	
                        	
                        	
                        	
                        		
                        			
                        			
			                        
                        		
                        		
                        		
	                     		
			                       	
			                       	
	                     		
	                     		
		                        
                        	
                        	
                        	
                        	
                        		
                        			
                        			
			                        
			                        	太宗之爲君也는 屈己從諫하여 仁心愛人하니 可謂有天下之志요
			                         
                        		
                        		
                        		
	                     		
			                       	
			                       	
	                     		
	                     		
		                        
                        	
                        	
                        	
                        	
                        		
                        			
                        			
			                        
			                        	以
任民
하고 以
任兵
하며 以職事任官
하고 以才能任職
하며 以興義任俗
하고 以尊本任衆
이라 
                        		
                        		
                        		
	                     		
			                       	
			                       	
	                     		
	                     		
		                        
                        	
                        	
                        	
                        	
                        		
                        			
                        			
			                        
			                        	賦役有定制하고 兵農有定業하며 官無虛名하고 職無廢事라
			                         
                        		
                        		
                        		
	                     		
			                       	
			                       	
	                     		
	                     		
		                        
                        	
                        	
                        	
                        	
                        		
                        			
                        			
			                        
			                        	人習於善行하고 離於末作하며 使之操於上者는 要而不煩하고 取於下者는 寡而易供이라
			                         
                        		
                        		
                        		
	                     		
			                       	
			                       	
	                     		
	                     		
		                        
                        	
                        	
                        	
                        	
                        		
                        			
                        			
			                        
			                        	民有農之實하여 而兵之備存하고 有兵之名하여 而農之利在라
			                         
                        		
                        		
                        		
	                     		
			                       	
			                       	
	                     		
	                     		
		                        
                        	
                        	
                        	
                        	
                        		
                        			
                        			
			                        
			                        	事之分有歸하여 而祿之出不浮하며 材之品不遺하여 而治之體相承이라
			                         
                        		
                        		
                        		
	                     		
			                       	
			                       	
	                     		
	                     		
		                        
                        	
                        	
                        	
                        	
                        		
                        			
                        			
			                        
                        		
                        		
                        		
	                     		
			                       	
			                       	
	                     		
	                     		
		                        
                        	
                        	
                        	
                        	
                        		
                        			
                        			
			                        
			                        	以其法修則安且治하고 廢則危且亂하니 可謂有天下之材요
			                         
                        		
                        		
                        		
	                     		
			                       	
			                       	
	                     		
	                     		
		                        
                        	
                        	
                        	
                        	
                        		
                        			
                        			
			                        
			                        	行之數歲에 粟米之賤이 斗至數錢하니 居者有餘蓄하고 行者有餘貲하여 人人自厚하여 幾於刑措하니 可謂有治天下之效를
			                         
                        		
                        		
                        		
	                     		
			                       	
			                       	
	                     		
	                     		
		                        
                        	
                        	
                        	
                        	
                        		
                        			
                        			
			                        
			                        	有是三者로대 而不得與先王竝者는 法度之行과 禮樂之具와 田疇之制와 庠序之教가 擬之先王하면 未備也일새라
			                         
                        		
                        		
                        		
	                     		
			                       	
			                       	
	                     		
	                     		
		                        
                        	
                        	
                        	
                        	
                        		
                        			
                        			
			                        
			                        	躬親行陣之間하여 戰必勝하고 攻必取하니 天下莫不以爲武나 而非先王之所尙也요 四夷萬古所未及以政者가 莫不服從하여 天下莫不以爲盛이나 而非先王之所務也라
			                         
                        		
                        		
                        		
	                     		
			                       	
			                       	
	                     		
	                     		
		                        
                        	
                        	
                        	
                        	
                        		
                        			
                        			
			                        
                        		
                        		
                        		
	                     		
			                       	
			                       	
	                     		
	                     		
		                        
                        	
                        	
                        	
                        	
                        		
                        			
                        			
			                        
                        		
                        		
                        		
	                     		
			                       	
			                       	
	                     		
	                     		
		                        
                        	
                        	
                        	
                        	
                        		
                        			
                        			
			                        
			                        	太宗이 文武之才로 高出前古하여 驅策英雄하고 網羅俊乂하며 好用善謀하고 樂聞直諫하여 拯民於水火之中하여 而措之袵席之上하고 使盜賊化爲君子하고 呻吟轉爲謳歌하며 衣食有餘하고 刑措不用하며 突厥之渠가 繫頸闕庭하고 北海之濱이 悉爲州縣하니 蓋三代以還으로 中國之盛이 未之有也라
			                         
                        		
                        		
                        		
	                     		
			                       	
			                       	
	                     		
	                     		
		                        
                        	
                        	
                        	
                        	
                        		
                        			
                        			
			                        
                        		
                        		
                        		
	                     		
			                       	
			                       	
	                     		
	                     		
		                        
                        	
                        	
                        	
                        	
                        		
                        			
                        			
			                        
			                        	太宗이 以武撥亂하고 以仁勝殘하니 其材略이 優於漢高나 而規摹不及也요 恭儉이 不若孝文이나 而功烈過之矣라
			                         
                        		
                        		
                        		
	                     		
			                       	
			                       	
	                     		
	                     		
		                        
                        	
                        	
                        	
                        	
                        		
                        			
                        			
			                        
			                        	迹其性本彊悍이나 而能畏義而好賢하고 屈己以從諫하며 刻厲矯揉하고 力於爲善하니 此所以致貞觀之治也라
			                         
                        		
                        		
                        		
	                     		
			                       	
			                       	
	                     		
	                     		
		                        
                        	
                        	
                        	
                        	
                        		
                        			
                        			
			                        
			                        	夫人主之所行은 其善惡是非가 在後世로되 當其時엔 不可得辨也라
			                         
                        		
                        		
                        		
	                     		
			                       	
			                       	
	                     		
	                     		
		                        
                        	
                        	
                        	
                        	
                        		
                        			
                        			
			                        
			                        	老子曰 
라하니 人君
이 擇其善者而從之
하면 足以得師
요 其不善者而戒之
하면 足以爲資矣
리라 
                        		
                        		
                        		
	                     		
			                       	
			                       	
	                     		
	                     		
		                        
                        	
                        	
                        	
                        	
                        		
                        			
                        			
			                        
                        		
                        		
                        		
	                     		
			                       	
			                       	
	                     		
	                     		
		                        
                        	
                        	
                        	
                        	
                        		
                        			
                        			
			                        
			                        	太宗擧兵五年에 定海内하여 率天下於仁壽富庶之域者하니 亦以天下之才로 爲天下之務而已라
			                         
                        		
                        		
                        		
	                     		
			                       	
			                       	
	                     		
	                     		
		                        
                        	
                        	
                        	
                        	
                        		
                        			
                        			
			                        
			                        	觀其任王珪魏徵於仇讐하고 任褚亮李百藥於降虜하고 起劉洎馬周於疎遠하고 起張玄素孫伏伽於耆舊하여 委之以政하고 責之以功하며 諫無不從하고 謀無不獲하니 且太宗之才는 固非天下之所能及이라
			                         
                        		
                        		
                        		
	                     		
			                       	
			                       	
	                     		
	                     		
		                        
                        	
                        	
                        	
                        	
                        		
                        			
                        			
			                        
			                        	然而不以此驕天下之士
하고 惴惴然常若有所不逮
하니 此其所以能爲
之基也
라 
                        		
                        		
                        		
	                     		
			                       	
			                       	
	                     		
	                     		
		                        
                        	
                        	
                        	
                        	
                        		
                        			
                        			
			                        
			                        	愚按 太宗之爲君은 可以爲賢矣요 貞觀之治는 可以爲盛矣라
			                         
                        		
                        		
                        		
	                     		
			                       	
			                       	
	                     		
	                     		
		                        
                        	
                        	
                        	
                        	
                        		
                        			
                        			
			                        
			                        	今卽其行事觀之하면 内除群雄하고 外定四夷하며 身經百戰호되 未嘗負北하니 後世人君之功이 未有高焉者也라
			                         
                        		
                        		
                        		
	                     		
			                       	
			                       	
	                     		
	                     		
		                        
                        	
                        	
                        	
                        	
                        		
                        			
                        			
			                        
			                        	其君人之大德有三하니 一曰 謙虛納諫이요 二曰 知人善任이요 三曰 恭儉愛民이니
			                         
                        		
                        		
                        		
	                     		
			                       	
			                       	
	                     		
	                     		
		                        
                        	
                        	
                        	
                        	
                        		
                        			
                        			
			                        
                        		
                        		
                        		
	                     		
			                       	
			                       	
	                     		
	                     		
		                        
                        	
                        	
                        	
                        	
                        		
                        			
                        			
			                        
			                        	定租庸調하여 以爲取民之制하고 定府兵十六衛하여 以爲養兵之制하며 任官엔 則有職爵勲階之制하고 用刑엔 則有笞杖徒流之制하니 後世制度之美가 莫能加也라
			                         
                        		
                        		
                        		
	                     		
			                       	
			                       	
	                     		
	                     		
		                        
                        	
                        	
                        	
                        	
                        		
                        			
                        			
			                        
			                        	命房杜以爲相
하고 以爲將
하며 王魏之諫爭
과 褒鄂之驍勇
과 虞褚之詞翰
으로 下至孫思邈之醫藥
과 李淳風之曆數
와 袁天綱之相法
히 莫不至精至妙
하여 度越千古
하니 後世人才之盛
이 莫能及也
라 
                        		
                        		
                        		
	                     		
			                       	
			                       	
	                     		
	                     		
		                        
                        	
                        	
                        	
                        	
                        		
                        			
                        			
			                        
			                        	夫功也德也制度也人才也가 其盛如此로되 而卒不得與於二帝三王之盛者는 何哉오
			                         
                        		
                        		
                        		
	                     		
			                       	
			                       	
	                     		
	                     		
		                        
                        	
                        	
                        	
                        	
                        		
                        			
                        			
			                        
			                        	蓋嘗觀之컨대 古先帝王이 雖其天資之美라도 未有不由學問而成者也니
			                         
                        		
                        		
                        		
	                     		
			                       	
			                       	
	                     		
	                     		
		                        
                        	
                        	
                        	
                        	
                        		
                        			
                        			
			                        
                        		
                        		
                        		
	                     		
			                       	
			                       	
	                     		
	                     		
		                        
                        	
                        	
                        	
                        	
                        		
                        			
                        			
			                        
			                        	若高宗之
과 成王之
이 泰和盛治
하여 冠冕百王
은 有以也夫
인저 
                        		
                        		
                        		
	                     		
			                       	
			                       	
	                     		
	                     		
		                        
                        	
                        	
                        	
                        	
                        		
                        			
                        			
			                        
			                        	太宗
이 外親
之賢
하고 内立
하여 未嘗不學也
나 特非二帝三王之學耳
라 
                        		
                        		
                        		
	                     		
			                       	
			                       	
	                     		
	                     		
		                        
                        	
                        	
                        	
                        	
                        		
                        			
                        			
			                        
			                        	使其能從事於二帝三王之學인댄 又豈特貞觀之治而已哉리오
			                         
                        		
                        		
                        		
	                     		
			                       	
			                       	
	                     		
	                     		
		                        
                        	
                        	
                        	
                        	
                   			
                        	
                        	
                        	
                        	
	                       	
	                       	
	                       	
	                       	
							                       	
	                        
	                        
	                        	
	                        
	                        	
	                        		
	                        	
	                        
	                        	
	                        
	                        	
	                        		
	                        	
	                        
	                        	
	                        
	                        	
	                        		
	                        	
	                        
	                        	
	                        
	                        	
	                        		
	                        	
	                        
	                        	
	                        
	                        	
	                        		
	                        	
	                        
	                        	
	                        
	                        	
	                        		
	                        	
	                        
	                        	
	                        
	                        	
	                        		
	                        	
	                        
	                        	
	                        
	                        	
	                        		
	                        	
	                        
	                        	
	                        
	                        	
	                        		
	                        	
	                        
	                        	
	                        
	                        	
	                        		
	                        	
	                        
	                        	
	                        
	                        	
	                        		
	                        	
	                        
	                        	
	                        
	                        	
	                        		
	                        	
	                        
	                        	
	                        
	                        	
	                        
	                        	
	                        
	                        	
	                        
	                        	
	                        
	                        	
	                        
	                        	
	                        
	                        	
	                        
	                        	
	                        
	                        	
	                        
	                        	
	                        
	                        	
	                        
	                        	
	                        
	                        	
	                        
	                        	
	                        
	                        	
	                        
	                        	
	                        
	                        	
	                        
	                        	
	                        
	                        	
	                        
	                        	
	                        
	                        	
	                        
	                        	
	                        
	                        	
	                        
	                        	
	                        
	                        	
	                        
	                        	
	                        
	                        	
	                        
	                        	
	                        
	                        	
	                        
	                        	
	                        
	                        	
	                        
	                        	
	                        
	                        	
	                        
	                        	
	                        
	                        	
	                        
	                        	
	                        
	                        	
	                        
	                        	
	                        
	                        	
	                        
	                        	
	                        
	                        	
	                        
	                        	
	                        
	                        	
	                        
	                        	
	                        
	                        	
	                        
	                        	
	                        
	                        	
	                        
	                        	
	                        
	                        	
	                        
	                        	
	                        
	                        	
	                        
	                        	
	                        
	                        	
	                        
	                        	
	                        
	                        	
	                        
	                        	
	                        
	                        	
	                        
	                        	
	                        
	                        	
	                        
	                        	
	                        
	                        	
	                        
	                        	
	                        
	                        	
	                        
	                        	
	                        
	                        	
	                        
	                        	
	                        
	                        	
	                        
	                        	
	                        
	                        	
	                        
	                        	
	                        
	                        	
	                        
	                        	
	                        
	                        	
	                        
	                        	
	                        
	                        	
	                        
	                        	
	                        
	                        	
	                        
	                        	
	                        
	                        	
	                        
	                        	
	                        
	                        	
	                        
	                        	
	                        
	                        	
	                        
	                        	
	                        
	                        	
	                        
	                        
	                        
                        	
		                        
		                        
		                        
		                        
                        		
                        	
		                        
		                        
		                        
		                        	
		                        	
		                        
		                        
                        		
                        		
                        			
			                        
			                        	태종太宗이 즉위한 초기부터 서리와 가뭄의 재앙이 있어 곡식 값이 뛰고 돌궐突厥이 침략하여 주현이 소란하였다.
			                              
                        			
                        		
                        		
	                     		
			                       	
			                       	
	                     		
		                        
                        	
		                        
		                        
		                        
		                        
                        		
                        	
		                        
		                        
		                        
		                        	
		                        	
		                        
		                        
                        		
                        		
                        			
			                        
			                        	태종은 마음이 백성들을 걱정하는 데 있어서 정신을 가다듬어 정치를 하며, 근검절약을 숭상하고 크게 은덕을 폈다.
			                              
                        			
                        		
                        		
	                     		
			                       	
			                       	
	                     		
		                        
                        	
		                        
		                        
		                        
		                        
                        		
                        	
		                        
		                        
		                        
		                        	
		                        	
		                        
		                        
                        		
                        		
                        			
			                        
			                        	이때에 장안으로부터 
하동河東注+하동河東은 옛 기주冀州의 지역이니, 지금 하동도河東道이다.‧
하남河南注+하남河南은 옛 연주兖州의 지역이니, 지금 하남河南 등의 지역이다.‧
농우隴右注+농우隴右는 옛 양주梁州의 지역이니, 지금 섬서陝西 등의 지역이다.에 이르기까지 기근이 더욱 심해
注+기饑는 음이 기飢이고, 근饉은 음이 근僅이다. 곡식이 익지 않은 것을 기饑라 하고, 채소가 익지 않은 것을 근饉이라고 한다. 비단 한 필에 겨우 쌀 한 말을 얻을 수 있었다.
      
                        			
                        		
                        		
	                     		
			                       	
			                       	
	                     		
		                        
                        	
		                        
		                        
		                        
		                        
                        		
                        	
		                        
		                        
		                        
		                        	
		                        	
		                        
		                        
                        		
                        		
                        			
			                        
			                        	백성들이 비록 동서로 먹을 것을 찾아다녔지만 조금도 원망하거나 한탄한 적이 없어 스스로 평안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정관貞觀 3년(629)이 되자 
관중關中注+《한서漢書》 권40 〈장진왕주열전張陳王周列傳〉에 “관중의 왼쪽이 효산殽山과 함곡관函谷關이고 오른쪽이 농隴과 촉蜀이다.”라고 하였다. 태종太宗이 천하를 나누어 10도道로 만들었는데, 여기는 관서關西이다. 당唐나라가 도읍을 세운 곳이니 지금의 섬서성陝西省이다. 지역이 풍년이 들어 모두 스스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마침내 한 사람도 도주해 흩어진 자가 없었으니, 태종이 인심을 얻은 것이 이와 같았다.
 
			                              
                        			
                        		
                        		
	                     		
			                       	
			                       	
	                     		
		                        
                        	
		                        
		                        
		                        
		                        
                        		
                        	
		                        
		                        
		                        
		                        	
		                        	
		                        
		                        
                        		
                        		
                        			
			                        
			                        	게다가 마치 물이 흐르듯이 간언을 잘 따르고 평소 
유술儒術을 좋아하여
注+〈술術은〉 어떤 본에는 학學으로 되어 있다. 호好(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부지런히 선비를 찾아서 관원을 발탁하는 데 힘썼으며 과거의 폐단을 개혁하여 제도를 부흥시키니, 매번 한 가지 일로 인해 유사한 일을 만날 때마다 잘 처리하였다.
      
                        			
                        		
                        		
	                     		
			                       	
			                       	
	                     		
		                        
                        	
		                        
		                        
		                        
		                        
                        		
                        	
		                        
		                        
		                        
		                        	
		                        	
		                        
		                        
                        		
                        		
                        			
			                        
			                        	애초에 
고조高祖의 장자인 
식은왕息隱王(이건성)과 넷째 아들인 
해릉왕海陵王(이원길)의 무리로서
注+식은息隱은 고조高祖의 장자이니, 이름은 건성建成이다. 처음에 황태자로 세워졌다. 해릉海陵은 고조高祖의 넷째 아들이니, 이름은 원길元吉이다. 처음에 제왕齊王에 봉해졌다. 이건성李建成이 여색에 빠지고 술을 즐기며 사냥을 나가는 것이 한도가 없었다. 진왕秦王(太宗)의 공이 높은 것을 보고 이원길李元吉과 도모하여 진왕을 해치려고 하였는데, 진왕이 이를 알아차리고 마침내 두 사람을 죽였다. 황제에 즉위하고 나서 이건성을 봉하여 식왕息王으로 삼고 시호를 은隱이라고 하였다. 이원길은 해릉왕海陵王으로 삼고 시호를 날剌이라고 하였다.태종太宗을 해치려고 함께 모의한 자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렀지만 일이 평정되자 다시 데려다 측근에 두고 가까이에서 모시게 하였는데, 태종은 마음이 트여서 의심하거나 멀리하지 않으니, 당시 여론이 그가 
대사大事를 잘 결단하여 제왕으로서의 체통을 얻었다고 하였다.
      
                        			
                        		
                        		
	                     		
			                       	
			                       	
	                     		
		                        
                        	
		                        
		                        
		                        
		                        
                        		
                        	
		                        
		                        
		                        
		                        	
		                        	
		                        
		                        
                        		
                        		
                        			
			                        
			                        	탐관오리貪官汚吏를 매우 싫어하여
注+악惡(미워하다)는 오烏의 거성去聲이다. 법을 악용해 재물을 받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사면하지 않았고, 서울에 있는 
유외관流外官 중에 뇌물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모두 아뢰게 하여 침해한 정도에 따라 엄중한 법을 시행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관리들이 대부분 저절로 청렴하고 근신해졌다.
			                              
                        			
                        		
                        		
	                     		
			                       	
			                       	
	                     		
		                        
                        	
		                        
		                        
		                        
		                        
                        		
                        	
		                        
		                        
		                        
		                        	
		                        	
		                        
		                        
                        		
                        		
                        			
			                        
			                        	태종이 왕공‧후비‧공주의 집안과 
세가世家와 매우 교활한 무리를 통제하니, 모두 위엄을 두려워하여 자취를 감춰
注+병屛(가리다)은 음이 병餠이다. 감히 백성들을 침탈하거나 속이는 경우가 없었고, 상인과 나그네가 들에서 머물더라도 다시 도적이 없었으며, 감옥은 늘 텅 비었고,
注+영囹은 음이 영零이고, 어圄는 음이 어語이다. 〈영어囹圄는〉周나라의 감옥 이름이다. 말과 소는 산과 들에 널려 있었고, 바깥문은 닫지 않았다.
      
                        			
                        		
                        		
	                     		
			                       	
			                       	
	                     		
		                        
                        	
		                        
		                        
		                        
		                        
                        		
                        	
		                        
		                        
		                        
		                        	
		                        	
		                        
		                        
                        		
                        		
                        			
			                        
			                        	또 자주 풍년이 들어서 쌀 한 말이 3, 4전에 불과하였다.
			                              
                        			
                        		
                        		
	                     		
			                       	
			                       	
	                     		
		                        
                        	
		                        
		                        
		                        
		                        
                        		
                        	
		                        
		                        
		                        
		                        	
		                        	
		                        
		                        
                        		
                        		
                        			
			                        
			                        	나그네는 장안에서 
영표嶺表,
注+〈영표嶺表는〉五嶺의 밖이니, 지금 이광二廣(廣東과 광서廣西)의 땅이다. 산동에서 동해에 이르기까지
注+산동山東은 옛 기주冀州의 지역이니, 지금 제남로濟南路 등이다. 창해滄海는 동해東海의 이름이다. 모두 양식을 싸가지고 다닐 필요 없이 길에서 조달할 수 있었고 산동의 촌락에 들어가면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注+과過(지나다)는 평성平聲이다.반드시 후하게 대접해주었으며
注+공供(제공하다)은 평성平聲이다. 혹 나그네가 떠날 때는 음식을 주어서 보내니,
注+〈유遺는〉去聲이니, 음식을 주어서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모두 옛날에 없던 일이다.
      
                        			
                        		
                        		
	                     		
			                       	
			                       	
	                     		
		                        
                        	
		                        
		                        
		                        
		                        
                        		
                        	
		                        
		                        
		                        
		                        	
		                        	
		                        		
		                        		
		                        	
		                        
		                        
                        		
                        		
                        			
			                             
                        			
                        		
                        		
	                     		
			                       	
			                       	
	                     		
		                        
                        	
		                        
		                        
		                        
		                        
                        		
                        	
		                        
		                        
		                        
		                        	
		                        	
		                        		
		                        		
		                        	
		                        
		                        
                        		
                        		
                        			
			                             
                        			
                        		
                        		
	                     		
			                       	
			                       	
	                     		
		                        
                        	
		                        
		                        
		                        
		                        
                        		
                        	
		                        
		                        
		                        
		                        	
		                        	
		                        		
		                        		
		                        	
		                        
		                        
                        		
                        		
                        			
			                        
			                        	수隋나라의 혼란을 제거한 일은 자취가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에 견줄 수 있고, 치적을 이룩한 아름다움은 거의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에 가깝다.
			                              
                        			
                        		
                        		
	                     		
			                       	
			                       	
	                     		
		                        
                        	
		                        
		                        
		                        
		                        
                        		
                        	
		                        
		                        
		                        
		                        	
		                        	
		                        		
		                        		
		                        	
		                        
		                        
                        		
                        		
                        			
			                        
			                        	예로부터 공과 덕이 겸하여 높은 것은 한漢나라 이래로 아직 없었다.
			                              
                        			
                        		
                        		
	                     		
			                       	
			                       	
	                     		
		                        
                        	
		                        
		                        
		                        
		                        
                        		
                        	
		                        
		                        
		                        
		                        	
		                        	
		                        		
		                        		
		                        	
		                        
		                        
                        		
                        		
                        			
			                        
			                        	태종에 이르러서는 후비后妃를 사랑하는 데 끌리고 또 불교를 일으켰으며, 큰일을 벌이기 좋아하고 큰 공적을 세우기 좋아하여 먼 곳에 용병用兵하여 전쟁을 하였으니, 이는 중간 재질의 어리석은 임금이 항상 하는 짓이다.
			                              
                        			
                        		
                        		
	                     		
			                       	
			                       	
	                     		
		                        
                        	
		                        
		                        
		                        
		                        
                        		
                        	
		                        
		                        
		                        
		                        	
		                        	
		                        		
		                        		
		                        	
		                        
		                        
                        		
                        		
                        			
			                        
			                        	그러나 춘추春秋의 필법은 어진 이에게 모든 선善이 갖춰지기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려는 후세의 군자들이 이 점에 대해 탄식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태종太宗이 임금 노릇을 한 것은 자기를 굽히고 간언을 따라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였으니, 천하를 다스리는 뜻이라 할 만하다.
			                              
                        			
                        		
                        		
	                     		
			                       	
			                       	
	                     		
		                        
                        	
		                        
		                        
		                        
		                        
                        		
                        	
		                        
		                        
		                        
		                        	
		                        	
		                        		
		                        		
		                        	
		                        
		                        
                        		
                        		
                        			
			                        
			                        	조용租庸을 백성에게 맡기고 부위府衛를 군대에 맡기며, 직분의 일을 관원에게 맡기고 재능 있는 사람에게 직책을 맡기며, 의리를 일으키는 일을 풍속에 맡기고 농업을 존중함을 대중에게 맡겼다.
			                              
                        			
                        		
                        		
	                     		
			                       	
			                       	
	                     		
		                        
                        	
		                        
		                        
		                        
		                        
                        		
                        	
		                        
		                        
		                        
		                        	
		                        	
		                        		
		                        		
		                        	
		                        
		                        
                        		
                        		
                        			
			                        
			                        	조세와 부역에는 정해진 제도가 있고 병사兵事와 농사農事에는 정해진 일이 있으며, 관원은 헛된 명칭이 없고 직책은 폐기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행을 익히고 상공업을 멀리하였으며, 위에서 잡고 있는 것은 요약하여 번거롭지 않게 하고 아래에서 취한 것은 적어서 공급하기 쉽게 하였다.
			                              
                        			
                        		
                        		
	                     		
			                       	
			                       	
	                     		
		                        
                        	
		                        
		                        
		                        
		                        
                        		
                        	
		                        
		                        
		                        
		                        	
		                        	
		                        		
		                        		
		                        	
		                        
		                        
                        		
                        		
                        			
			                        
			                        	백성에게 농사의 실적이 있어 병사의 대비가 있게 되었고, 병사에 명분이 있어 농사의 이로움이 있게 되었다.
			                              
                        			
                        		
                        		
	                     		
			                       	
			                       	
	                     		
		                        
                        	
		                        
		                        
		                        
		                        
                        		
                        	
		                        
		                        
		                        
		                        	
		                        	
		                        		
		                        		
		                        	
		                        
		                        
                        		
                        		
                        			
			                        
			                        	일의 분장은 귀속함이 있어 녹봉의 지출은 낭비됨이 없었으며, 인재의 품등은 버릴 것이 없어 정치의 체제는 서로 이어졌다.
			                              
                        			
                        		
                        		
	                     		
			                       	
			                       	
	                     		
		                        
                        	
		                        
		                        
		                        
		                        
                        		
                        	
		                        
		                        
		                        
		                        	
		                        	
		                        		
		                        		
		                        	
		                        
		                        
                        		
                        		
                        			
			                        
			                        	예의와 염치가 날로 돈독해졌고 전야田野가 날로 개척되었다.
			                              
                        			
                        		
                        		
	                     		
			                       	
			                       	
	                     		
		                        
                        	
		                        
		                        
		                        
		                        
                        		
                        	
		                        
		                        
		                        
		                        	
		                        	
		                        		
		                        		
		                        	
		                        
		                        
                        		
                        		
                        			
			                        
			                        	이 때문에 그 법이 닦이면 편안하고 또 다스려지며, 폐기되면 위태롭고 또 혼란하게 되었으니, 태종은 천하를 다스릴 재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몇 년 동안 행하자 곡식 값이 싸져서 한 말에 몇 전에 불과하였으며, 거류하는 자는 넉넉한 저축이 있었고 길을 가는 자는 넉넉한 재물이 있어서 사람들이 저절로 온후해져 거의 형벌을 쓰지 않게 되었으니, 천하를 다스리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할 만하다.
			                              
                        			
                        		
                        		
	                     		
			                       	
			                       	
	                     		
		                        
                        	
		                        
		                        
		                        
		                        
                        		
                        	
		                        
		                        
		                        
		                        	
		                        	
		                        		
		                        		
		                        	
		                        
		                        
                        		
                        		
                        			
			                        
			                        	이 세 가지가 있었으나 선왕들과 나란히 견줄 수 없는 것은 법도를 행하는 것과 예악을 갖추는 것, 토지의 제도와 학교의 가르침을 선왕들과 비교하면 아직 갖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소 친히 행군하는 동안 전쟁하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하니, 천하에서 무용이 있다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선왕이 숭상한 것은 아니고, 사이四夷에 옛날부터 정사가 미치지 못했던 곳까지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 경우가 없어서 천하에서 성대하다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선왕이 일삼은 것은 아니다.
			                              
                        			
                        		
                        		
	                     		
			                       	
			                       	
	                     		
		                        
                        	
		                        
		                        
		                        
		                        
                        		
                        	
		                        
		                        
		                        
		                        	
		                        	
		                        		
		                        		
		                        	
		                        
		                        
                        		
                        		
                        			
			                        
			                        	태종이 천하에 정사를 한 것이 이와 같았으니, 그 득실을 알 수 있다.”
			                              
                        			
                        		
                        		
	                     		
			                       	
			                       	
	                     		
		                        
                        	
		                        
		                        
		                        
		                        
                        		
                        	
		                        
		                        
		                        
		                        	
		                        	
		                        		
		                        		
		                        	
		                        
		                        
                        		
                        		
                        			
			                             
                        			
                        		
                        		
	                     		
			                       	
			                       	
	                     		
		                        
                        	
		                        
		                        
		                        
		                        
                        		
                        	
		                        
		                        
		                        
		                        	
		                        	
		                        		
		                        		
		                        	
		                        
		                        
                        		
                        		
                        			
			                        
			                        	“태종太宗이 학문과 무예의 재주로 전고前古에 높이 빼어나 영웅들을 부리고 준걸들을 망라하며, 좋은 계책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직간을 듣는 것을 즐겨서, 백성들을 물과 불 같은 고난 속에서 건져서 이부자리 위에다 두고, 도적을 변화시켜서 군자가 되게 하고 신음을 바꾸어 노래하게 하며, 옷과 밥은 넉넉함이 있고 형벌은 버려 사용하지 않으며, 돌궐突厥의 우두머리가 대궐 뜰에서 목에 줄을 묶어 항복하고, 북해北海의 물가가 다 주州와 현縣이 되었으니, 삼대三代 이후로 없던 중국中國의 성대함이다.”
			                              
                        			
                        		
                        		
	                     		
			                       	
			                       	
	                     		
		                        
                        	
		                        
		                        
		                        
		                        
                        		
                        	
		                        
		                        
		                        
		                        	
		                        	
		                        		
		                        		
		                        	
		                        
		                        
                        		
                        		
                        			
			                             
                        			
                        		
                        		
	                     		
			                       	
			                       	
	                     		
		                        
                        	
		                        
		                        
		                        
		                        
                        		
                        	
		                        
		                        
		                        
		                        	
		                        	
		                        		
		                        		
		                        	
		                        
		                        
                        		
                        		
                        			
			                        
			                        	“태종太宗이 무력으로 혼란을 평정하고 인仁으로 잔악한 자를 이겼으니, 그 재주와 책략은 한漢나라 고조高祖보다 우수하였지만 규모는 미치지 못하였고, 공손하고 검소함은 효문제孝文帝만 못하였지만 공열은 그보다 뛰어났다.
			                              
                        			
                        		
                        		
	                     		
			                       	
			                       	
	                     		
		                        
                        	
		                        
		                        
		                        
		                        
                        		
                        	
		                        
		                        
		                        
		                        	
		                        	
		                        		
		                        		
		                        	
		                        
		                        
                        		
                        		
                        			
			                        
			                        	그 성품을 살펴보면 본래 강하고 굳세지만 의義에 저촉할까 두려워하고 어진 이를 좋아하였으며, 자기를 굽혀 간언을 따르고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을 바로잡았으며 선을 행하는 데에 힘썼으니, 이것이 정관貞觀의 치적을 이루게 된 까닭이다.
			                              
                        			
                        		
                        		
	                     		
			                       	
			                       	
	                     		
		                        
                        	
		                        
		                        
		                        
		                        
                        		
                        	
		                        
		                        
		                        
		                        	
		                        	
		                        		
		                        		
		                        	
		                        
		                        
                        		
                        		
                        			
			                        
			                        	임금이 행하는 것은 선악과 시비가 후세에 남지만, 그 당시에는 분별을 하지 못한다.
			                              
                        			
                        		
                        		
	                     		
			                       	
			                       	
	                     		
		                        
                        	
		                        
		                        
		                        
		                        
                        		
                        	
		                        
		                        
		                        
		                        	
		                        	
		                        		
		                        		
		                        	
		                        
		                        
                        		
                        		
                        			
			                        
			                        	노자老子가 ‘선인은 불선한 사람의 스승이며, 불선한 사람은 선인의 바탕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임금이 선한 자를 택하여 따르면 스승으로 삼기에 충분하고, 불선한 자를 경계하면 바탕으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
			                              
                        			
                        		
                        		
	                     		
			                       	
			                       	
	                     		
		                        
                        	
		                        
		                        
		                        
		                        
                        		
                        	
		                        
		                        
		                        
		                        	
		                        	
		                        		
		                        		
		                        	
		                        
		                        
                        		
                        		
                        			
			                             
                        			
                        		
                        		
	                     		
			                       	
			                       	
	                     		
		                        
                        	
		                        
		                        
		                        
		                        
                        		
                        	
		                        
		                        
		                        
		                        	
		                        	
		                        		
		                        		
		                        	
		                        
		                        
                        		
                        		
                        			
			                        
			                        	“태종太宗이 전쟁을 한 지 5년 만에 해내海內를 평정하여 천하 사람들을 인仁하여 천수天壽를 누리며 부유하고 무리지어 사는 경지로 이끌어갔으니, 또한 천하의 재주로 천하의 일을 했을 뿐이다.
			                              
                        			
                        		
                        		
	                     		
			                       	
			                       	
	                     		
		                        
                        	
		                        
		                        
		                        
		                        
                        		
                        	
		                        
		                        
		                        
		                        	
		                        	
		                        		
		                        		
		                        	
		                        
		                        
                        		
                        		
                        			
			                        
			                        	살펴보면 태종은 왕규王珪와 위징魏徵을 원수 중에서 임용하고, 저량褚亮과 이백약李百藥을 항복한 오랑캐 중에서 임용하고, 유계劉洎와 마주馬周를 소원한 사람들 중에서 기용하고, 장현소張玄素와 손복가孫伏伽를 원로 중에서 기용하여, 정사를 그들에게 맡기고 공을 그들에게 구하였으며, 간언은 따르지 않은 것이 없고 계책은 얻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또 태종의 재주는 참으로 세상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로로 천하의 선비들에게 교만하지 않고 두려워하여 항상 부족한 점이 있는 것처럼 하였으니, 이것이 300년의 기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이 임금 노릇 한 것은 현명하다고 할 만하고, 정관貞觀의 치적은 성대하다고 할 만하다.
			                              
                        			
                        		
                        		
	                     		
			                       	
			                       	
	                     		
		                        
                        	
		                        
		                        
		                        
		                        
                        		
                        	
		                        
		                        
		                        
		                        	
		                        	
		                        		
		                        		
		                        	
		                        
		                        
                        		
                        		
                        			
			                        
			                        	지금 그가 행한 일을 보면, 안으로는 여러 영웅들을 제거하고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를 평정하였으며 친히 모든 전쟁을 경략하되 패배한 적이 없었으니, 후세 임금으로 공이 이보다 높은 자는 아직까지 없었다.
			                              
                        			
                        		
                        		
	                     		
			                       	
			                       	
	                     		
		                        
                        	
		                        
		                        
		                        
		                        
                        		
                        	
		                        
		                        
		                        
		                        	
		                        	
		                        		
		                        		
		                        	
		                        
		                        
                        		
                        		
                        			
			                        
			                        	그가 임금으로서 위대한 덕이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겸허하게 간언을 받아들인 점, 둘째는 사람을 알아보고 잘 맡긴 점, 셋째는 공손하고 검소하며 백성을 사랑한 점이다.
			                              
                        			
                        		
                        		
	                     		
			                       	
			                       	
	                     		
		                        
                        	
		                        
		                        
		                        
		                        
                        		
                        	
		                        
		                        
		                        
		                        	
		                        	
		                        		
		                        		
		                        	
		                        
		                        
                        		
                        		
                        			
			                        
			                        	후세 임금으로 덕이 이보다 뛰어난 자는 아직까지 없었다.
			                              
                        			
                        		
                        		
	                     		
			                       	
			                       	
	                     		
		                        
                        	
		                        
		                        
		                        
		                        
                        		
                        	
		                        
		                        
		                        
		                        	
		                        	
		                        		
		                        		
		                        	
		                        
		                        
                        		
                        		
                        			
			                        
			                        	조용조租庸調를 정하여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를 만들고, 부병府兵 16위衛를 정하여 병사를 양성하는 제도를 만들며, 관리를 임명할 때는 직책‧작위‧공훈‧계급의 제도를 두었고, 형벌을 사용할 때는 태장笞杖‧도형徒刑‧유형流刑의 제도를 두었으니, 후세 제도의 아름다움이 능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를 임명하여 재상으로 삼았고, 영공英公(李勣)과 위국공衛國公(李靖)을 장군으로 삼았으며, 왕규王珪와 위징의 간쟁, 포공褒公(段志玄)과 악공鄂公(尉遲敬德)의 용맹, 우세남虞世南과 저량褚亮의 문장, 그리고 아래로 손사막孫思邈의 의약醫藥, 이순풍李淳風의 역수曆數, 원천강袁天綱의 상법相法까지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천고에 탁월하였으니, 인재가 성대한 후세라 하더라도 미칠 수가 없었다.
			                              
                        			
                        		
                        		
	                     		
			                       	
			                       	
	                     		
		                        
                        	
		                        
		                        
		                        
		                        
                        		
                        	
		                        
		                        
		                        
		                        	
		                        	
		                        		
		                        		
		                        	
		                        
		                        
                        		
                        		
                        			
			                        
			                        	공功‧덕德‧제도制度‧인재人才의 성대함이 이와 같았으나 마침내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의 성대함에 참여할 수 없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찍이 살펴보건대 옛날 제왕帝王이 비록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이 있더라도 학문을 말미암지 않고 이룬 자는 없었다.
			                              
                        			
                        		
                        		
	                     		
			                       	
			                       	
	                     		
		                        
                        	
		                        
		                        
		                        
		                        
                        		
                        	
		                        
		                        
		                        
		                        	
		                        	
		                        		
		                        		
		                        	
		                        
		                        
                        		
                        		
                        			
			                        
			                        	이제와 삼왕의 일은 오래되었으나 그들이 종사하여 배운 것은 오히려 뚜렷하여 상고할 수 있다.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옛 훈계를 배워서 얻음이 있는 것과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학문을 이어서 빛내 광명한 것이 크게 화합하여 성대하게 다스려서 백왕 중에 으뜸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태종이 밖으로 영주瀛洲의 현인들과 친하고 안으로 홍문관弘文館을 세워서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다만 이제와 삼왕의 학문이 아니었을 뿐이다.
			                              
                        			
                        		
                        		
	                     		
			                       	
			                       	
	                     		
		                        
                        	
		                        
		                        
		                        
		                        
                        		
                        	
		                        
		                        
		                        
		                        	
		                        	
		                        		
		                        		
		                        	
		                        
		                        
                        		
                        		
                        			
			                        
			                        	만일 태종이 이제와 삼왕의 학문에 종사하였다면, 또 어찌 다만 정관貞觀의 치적에 그칠 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