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四年
에 李靖
이 擊突厥頡利
하여 敗之
하니 其部落多來歸降者
注+① 其部落多來歸降者:降, 下江切, 後同.어늘
請於河南處之
注+② 請於河南處之:處, 上聲, 後同.하노니
準漢建武時
하여 置降
於五原塞下
注+③ 置降匈奴於五原塞下:塞, 音賽, 後同. 五原塞, 今爲豐州, 隷河東하여 全其部落
하여 得爲捍蔽
하고
又不離其土俗하여 因而撫之면 一則實空虛之地오 二則示無猜之心이니 是含育之道也니이다
秘書監魏徵曰 匈奴自古至今
에 未有如斯之破敗
하니 此是
이요 宗廟神武
니이다
陛下以其爲降
으로 不能誅滅
인댄 卽宜遣發河北
注+④ 卽宜遣發河北:河北, 今山東道.하여 居其舊土
니
强必寇盜하고 弱則卑伏하여 不顧恩義가 其天性也니
秦漢患之者
가 若是
라 故時發猛將以擊之
注+⑤ 故時發猛將以擊之:將, 去聲.하여 收其河南以爲郡縣
하니이다
居我
하여 用邇
면 心腹之疾
이 將爲後患
이니 尤不可處以河南也
니이다
정관貞觀 4년(630)에
이정李靖이
돌궐突厥의
힐리가한頡利可汗을 쳐서 패배시키니 그 부락에서 귀순한 자가 많았다.
注+강降(항복하다)은 하下와 강江의 반절이다. 뒤에도 같다.
태종太宗이 조서를 내려 ‘변방을 안정시키는 계책’을 논의하라고 하자 중서령中書令 온언박溫彦博이 말하였다.
“귀순자들을
하남河南(
하수河水의 남쪽 지역)에 머무르게 하기를 청합니다.
注+처處(살다)는 상성上聲이다. 뒤에도 같다.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연간(25~55)의 고사를 본받아 투항한
흉노匈奴(돌궐)를
오원새五原塞에 안치시켜서
注+새塞(변방)는 음音이 새賽이다. 뒤에도 같다. 오원새五原塞는 지금의 풍주豐州이니 하동河東에 속한다. 돌궐의 부락을 온전히 하여 변방을 지키는 울타리로 삼으시고
또 그들의 풍토와 습속을 버리지 않게 해서, 그대로 그들을 위무慰撫한다면 첫째는 텅 빈 땅을 이들로 채울 수 있고, 둘째는 의심하지 않는 마음을 보일 수 있으니, 이는 포용하여 화육하는 방법입니다.”
비서감秘書監 위징魏徵이 말하였다. “흉노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처럼 패배한 적이 없으니, 이는 하늘이 〈흉노를〉 끊으려고 한 것이며 우리 종묘사직의 신명神明과 위무威武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흉노가 대대로 중국을 침범하여, 백성들의 원수이지만
폐하께서는 그들이 항복하여 죽일 수 없다고 여기신다면 즉시
하북河北(
하수河水 북쪽 지역)으로 보내어
注+하북河北은 지금 산동도山東道이다. 그들의 옛 토지에서 살게 해야 할 것입니다.
흉노는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와 동족이 아닙니다.
강하면 반드시 침범하여 노략질을 하고, 약하면 비굴하게 복종하여, 은혜와 의리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그들의 천성입니다.
진한시대秦漢時代에 근심했던 것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수시로 용맹한 장수를 보내어 격파하여
注+장將(장수)은 거성去聲이다., 하남을 빼앗아
군현郡縣으로 삼았습니다.
폐하께서 그들을 내지內地에 살게 하시니, 지금 항복한 자가 거의 1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수년 후에는 인구가 불어나 두 배도 넘을 것인데,
그들을 우리의 지척에 살게 하여 왕기王畿에 가까이 있게 한다면, 가슴에 병이 생겨 후환이 될 것이니 더욱더 하남에 살게 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