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堯舜率天下以仁而人從之
하고 桀紂率天下以暴而人從之
하니 下之所行
은 皆
注+① 皆從上之所好:去聲, 後同.라
至如梁武帝父子는 志尙浮華하여 惟好釋氏老氏之敎러니
武帝末年에 頻幸同泰寺하여 親講佛經하니 百寮皆大冠高履로 乘車扈從하여
終日
注+② 乘車扈從 終日:乘, 平聲, 後同. 從, 去聲.談論苦空
注+③ 談論苦空:佛敎也.하고 未嘗以軍國典章爲意
러니
及
率兵向闕
注+④ 及侯景率兵向闕:見君道篇.하얀 尙書郞以下
가 多不解乘馬
注+⑤ 多不解乘馬:解, 音懈.하여 狼狽步走
注+⑥ 狼狽步走:狼, 似犬, 銳首白頰, 高前廣後. 狽, 狼屬, 生子或欠一足, 二足相附而行, 離則蹭, 故猝遽謂之狼狽.하여 死者相繼於道路
하고 武帝及簡文
注+⑦ 武帝及簡文:簡文, 名綱, 武帝第三子, 侯景廢之.은 卒被侯景幽逼而死
注+⑧ 卒被侯景幽逼而死:被聿切.하고
孝元帝
注+⑨ 孝元帝:名繹, 武帝第七子, 起兵討侯景, 卽帝位.는 在于江陵
注+⑩ 在于江陵:郡名, 今中興路, 隷荊湖.에 爲萬紐于謹所圍
注+⑪ 爲萬紐于謹所圍:梁承聖三年, 遣萬紐于謹, 將兵五萬, 入寇攻江陵.호대 帝猶講老子不輟
注+⑫ 帝猶講老子不輟:元帝好玄談, 嘗於龍光殿講老子, 聞魏師至, 停講. 聞報帖, 然復開講.하고 百寮皆戎服以聽
이러니 俄而城陷
하여 君臣俱被囚縶
注+⑬ 君臣俱被囚縶:音蟄.하니라
注+⑭ 庾信:爲梁將軍, 留於西魏.亦歎其如此
하여 及作哀江南賦
에 乃云
이라하니 此事亦足爲鑑戒
라
朕今所好者는 惟在堯舜之道와 周孔之敎니 以爲如鳥有翼하며 如魚依水하여 失之必死라 不可暫無耳로라
注
【集論】胡氏寅曰 太宗不好釋氏하고 而好堯舜周孔之道하니 可謂知所去取矣라
而以爲如魚有水鳥有翼하여 失之必死니 不可暫無者는 則未知其誠能然乎인저 抑徒意之云爾也라
夫
者
는 堯舜之盛也而始於道心
하고 者
는 孔子之盛也而
하니 志者
는 非讀書記誦之謂
라
道心之微는 又與老釋玄妙之言으로 何以別乎아 自此而入이면 庶乎其知道矣리라
라하니 知之如是
면 則能好之矣
라 未嘗知之
로되 而以爲我好堯舜周孔之道云者
는 妄也
라
百姓日用而不能離하여 亦猶鳥之有翼하고 魚之依水어늘 顧不自知耳라
注
眞氏德秀曰 太宗之言
은 可謂知所擇矣
라 然終身所行
이 는 以其嗜學 雖篤
이나 所講者
가 不過前代之得失
하고 而於三聖授受之微旨
와 六經致治之成法
엔 未之有聞
이요
其所親者
는 雖或一時名儒
나 而姦諛小人
도 亦厠其列
하니 安得有
之益
이리오 故名爲希慕前聖
이나 而於道實無得焉
하니 其亦可憾也夫
인저
注
愚按 太宗知老釋之虛無空寂은 不適於用하고 知堯舜之道와 周孔之敎가 不可暫無하니 斯言也는 三代而下로 君人者所罕聞也라
聖人以此道로 垂訓於天下後世하니 則謂之敎라 堯舜之道는 此道也요 周公孔子之敎는 以堯舜之道爲敎也라
又曰
라하니 不可暫無
하면 其不可須臾離者乎
인저 太宗未足以進此也
나 而言則然也
라
정관貞觀 2년(628)에 태종太宗이 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군주는 그릇과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고 하였소.
모난 것과 둥근 것은 그릇에 달려 있는 것이지, 물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오.
그러므로
요순堯舜이 천하를
인仁으로 통솔하자 백성들이 따랐고,
걸주桀紂가 천하를 포악으로 통솔하자 백성들이 따랐소. 아랫사람의 행동은 모두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오.
注+〈호好(좋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뒤에도 같다.
양 무제梁 武帝 부자는 뜻이 화려함을 숭상하여 오직 불교佛敎와 노자老子의 가르침을 좋아하였소.
무제武帝는 말년에 자주 동태사同泰寺에 행차하여 친히 불경佛經을 강론하니, 백관들이 모두 큰 관과 높은 신을 신고 수레를 타고 무제를 따랐소.
하루 종일
注+승乘(수레)은 평성平聲이다. 뒤에도 같다. 종從(수행원)은 거성去聲이다. 고공苦空(
불교佛敎)의 설을 담론하고
注+〈고공苦空은〉 불교佛敎이다. 군사와 국정과 제도에 대한 것은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후경侯景이 군대를 이끌고 궁궐로 향하게 되어서는
注+〈군도편君道篇〉에 보인다. 상서랑尙書郞 이하의 신하들은 대부분 말을 탈 줄 몰라
注+해解(알다)는 음音이 해懈이다. 허겁지겁 맨발로 도망치다가
注+낭狼은 개와 비슷하고 머리가 날카롭고 뺨이 흰색이며 앞이 높고 뒤는 넓다. 패狽는 낭狼의 종류인데 새끼를 낳으면 혹 다리 하나가 없어서 두 마리가 두 다리로 서로 붙어서 가는데, 떨어지면 비틀거린다. 그러므로 졸지에 일어나는 일을 낭패狼狽라고 한다. 죽은 자가 길에 이어졌고,
무제武帝와
간문제簡文帝는
注+간문簡文은 이름이 강綱이니, 무제武帝의 세 번째 아들인데 후경侯景이 폐하였다. 마침내 후경에게 잡혀 핍박받아 죽고 말았소.
注+〈졸卒(마침내)은〉 피被와 율聿의 반절이다.
효원제孝元帝는
注+〈효원제孝元帝는〉 이름이 역繹이니, 무제武帝의 일곱 번째 아들인데 병사를 일으켜 후경侯景을 토벌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강릉江陵에 있을 때
注+〈강릉江陵은〉 군郡 이름이니 지금 중흥로中興路인데 형호荊湖에 속한다. 만뉴우근萬紐于謹에게 포위되었소.
注+양梁나라 승성承聖 3년(554)에 원위元魏에서 만뉴우근萬紐于謹을 보내어 군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침략케 하여 강릉江陵을 공격하였다. 그런데도 효원제는 《
노자老子》 강의를 그치지 않았고
注+원제元帝는 현담玄談을 좋아하여 용광전龍光殿에서 《노자老子》를 강의한 적이 있는데, 위魏나라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있자 강의를 정지하였는데 보고를 듣고 나서는 다시 강의를 열게 하였다. 백관들이 갑옷을 입은 채로 청강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에 성이 함락되어 효원제와 신하들이 모두 잡혔소.
注+〈집縶(포박하다)은〉 음音이 칩蟄이다.
유신庾信이
注+〈유신庾信은〉 양梁나라 장군將軍이 되어 서위西魏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었다. 또한 이와 같은 것을 한탄하여 〈
애강남부哀江南賦〉를 지었는데, 이르기를 ‘재상은 전쟁을 아이들의 놀이로 생각하고, 고관들은
노장老莊의
청담淸談을 조정의 책략으로 삼았네.’라고 읊었으니, 이 일은 또한 거울삼아 경계할 일이오.
짐朕이 지금 좋아하는 것은 오직 요순堯舜의 도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가르침에 있소. 새가 날개가 있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물에 의지하는 것과 같아서 그 가르침을 잃게 된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니,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오.”
注
호인胡寅은 말하였다. “태종太宗이 석씨釋氏를 좋아하지 않고 요순堯舜과 주공周公와 공자孔子의 도를 좋아하였으니 버리고 취할 것을 알았다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물고기가 물에 의지하는 것과 같고 새가 날개가 있는 것과 같아서 그 가르침을 잃게 된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니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진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아니면 다만 뜻만 말했을 뿐이다.
‘진실로 그 중도를 잡는다.’는 것은 요순堯舜의 성대함으로 도심道心에서 시작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은 공자孔子의 성대함으로 배움에 뜻[지志]을 두는 데서 시작되니, 지志는 글을 읽고 외우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도심의 은미함은 또 노자老子와 석씨釋氏의 현묘한 말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이로부터 들어가면 거의 도를 알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도를 앎이 이와 같으면 도를 좋아할 수 있다. 도를 안 적이 없으면서도 ‘나는 요‧순‧주공‧공자의 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자는 경망한 것이다.
도는 손에 쥐고 완상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하나의 물건이 아니다.
백성이 일상 생활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또한 새가 날개가 있고 물고기가 물에 의지하는 것과 같거늘 또한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注
진덕수眞德秀가 말하였다. “태종太宗의 말은 선택할 줄을 알았다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행한 바가 부끄러움이 없지 못했던 것은 배우기를 즐김이 비록 독실하였으나 강구한 것은 이전 시대의 득실에 불과하였고, 삼대三代 성인聖人의 주고받은 은미한 뜻과 육경六經의 지극한 치적의 법에는 들음이 없었다.
태종이 친한 사람은 비록 혹은 한때의 이름 있는 선비였으나 간사하며 아첨하는 소인들도 또한 그의 대열에 섞여 있었으니, 어찌 임금의 짐을 맡아 도와주는 이로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명분은 이전 성인聖人을 사모한다고 하지마는 도道에서는 실로 터득함이 없었으니 그 또한 유감스럽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태종太宗이 노자老子와 석씨釋氏의 허무虛無와 공적空寂은 사용하는 데 적당하지 않음을 알았고, 요순堯舜의 도와 주공周公‧공자孔子의 가르침이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 말은 삼대三代 이하로 임금들이 듣지 못하던 것이었다.
《중용中庸》에 말하기를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道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 고 하니, 도는 성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성인聖人이 이 도로 천하 후세에 교훈을 드리웠으니 이를 교敎라고 한다. 요순의 도는 이 도이고,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은 요순의 도로 가르침을 삼은 것이다.
또 말하기를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道가 아니다.” 라고 하니,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되면,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태종이 아직 여기까지 나아가는 데에는 부족하였지만 말은 그렇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