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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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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我見君固執不已하고 疑君蔽此事러니 今論國家不信하면 乃人情不通이라하니
“나는 그대들이 고집하여 물러서지 않는 것을 보고 그대들이 이 일에 어둡다고 의심했는데, 지금 논하기를 ‘국가가 신뢰가 없으면 백성의 마음과 소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소.
我不尋思 過亦深矣
내가 이를 세심히 생각하지 못했으니 과실이 또한 크오.
行事往往如此錯失하면 若爲致理리오하고
정무가 이따금 이처럼 잘못되면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소.”
乃停中男하고 賜金甕一口하고 賜珪絹五十匹하다
이에 중남中男의 징발을 정지하고, 위징魏徵에게는 금옹金甕 1를 하사하고 왕규王珪에게는 비단 50필을 하사했다.
【集論】愚按 이라하고
【集論】내가 살펴보건대,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먹을 것을 버리고 병력은 버려도, 백성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면 존립存立하지 못한다.”라고 하였고,
湯之有天下也 首曰이라하고
임금이 천하를 소유하고 나서 〈중훼中虺가〉 가장 먼저 “덕이 드러나서 백성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였고,
武王之有天下也 首曰라하니
무왕武王이 천하를 소유하고 나서 가장 먼저 “신의를 돈독히 하고 의리를 밝히겠다.”라고 하였으니,
三代之得天下 未有不以信爲先者也
삼대三代 시대에 천하를 얻을 때 신의를 우선으로 삼지 않음이 없었다.
太宗即位之初 首欲以誠信待物하니 可謂能以湯武爲法者矣
태종太宗이 즉위 초기에 우선 진실과 신뢰로 사람을 대하려 하였으니, 탕왕湯王무왕武王을 법으로 삼았다고 할 만하다.
然徒知其爲信하고 不知其所以信이라
하지만 그저 신뢰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몰랐다.
故魏徵歷陳其目하여 謂原免逋債로되 而秦府不與 一不信也
그래서 위징魏徵이 그 조항을 낱낱이 거론하여 “포탈한 세금과 빚을 면제했는데 진왕부秦王府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불신이고,
給散租調라가 已散復徵 二不信也
세금을 나누어주기로 하고 이미 나누어준 것을 다시 징수한 것이 두 번째 불신이고,
簡點丁男 不任守令 三不信也라하니
장정을 간택하고 점검하는 것을 수령守令에게 맡기지 않은 것이 세 번째 불신이다.”라고 하자,
太宗 欣然從徵之言하니
태종太宗이 위징의 말을 흔쾌히 따랐다.
實始于此 終致貞觀之盛 有以也哉인저
임금과 신하가 물과 물고기처럼 떨어질 수 없는 것은 실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니, 결국 정관貞觀의 성대한 정치를 완성한 것은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역주
역주1 孔子曰……無信不立 : 《論語》 〈顔淵〉에 “子貢이 정치를 묻자, 孔子가 ‘양식을 넉넉하게 갖추고 군대를 넉넉하게 갖추고 백성이 나라를 믿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공이 ‘부득이하여 버려야 한다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하자 ‘군대를 버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자공이 ‘부득이하여 버려야 한다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하자, 공자가 ‘양식을 버려야 한다. 예부터 사람은 다 죽지만 백성이 믿음이 없으면 存立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라고 하였다.
역주2 彰信兆民 : 《書經》 〈商書 中虺之誥〉에 보인다.
역주3 惇信明義 : 《書經》 〈周書 武成〉에 보인다.
역주4 君臣魚水 : 劉備와 諸葛孔明의 관계처럼 君臣 간의 밀착을 비유한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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