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以爲自古皇王이 君臨宇內에 莫不受命上玄하여 冊名帝籙하니
雖魏武
之資
注+ 雖魏武携養之資:曹操, 沛人. 父嵩爲漢中常侍曹騰養子, 不能審其生出本末. 操子丕, 受漢禪, 國號魏, 追號操爲武皇帝.와 漢高徒役之賤
注+ 漢高徒役之賤:漢高祖, 姓劉, 名邦, 字季, 沛人. 初爲泗上亭長, 爲縣送徒驪山, 徒多道亡, 自度比至必皆亡, 乃縱所送徒, 徒中願從者十餘人, 由是起兵.이라도 非止意有覬覦
라 推之亦不能去也
注+ 推之亦不能去也:推, 他回切.어니와
若其獄訟不歸
注+ 若其獄訟不歸:孟子曰 “獄訟者不之堯之子而之舜.”하고 菁華已竭
하면
雖帝堯之光被四表
注+ 光被四表:虞書贊堯之辭, 謂德之光顯, 被及于四外也.와 大舜之上齊七政
注+ 七政:虞書曰 “在璿璣玉衡, 以齊七政.” 謂日月五星也.이라도 非止情存揖讓
이라 守之亦不可焉
이라
以放勛重華之德
注+ 以放勛重華之德:放, 上聲. 勛與勳同. 重, 平聲. 放勛者, 總言堯之德. 重華者, 總言舜之德. 史記因以爲堯舜之名.으로도 尙不能克昌厥後
리니
是知祚之長短은 必在於天時요 政或興衰는 有關於人事니이다
雖淪胥之道
가 斯極
이나 而文武之器
가 尙存
하니 斯
之祚
가 已懸定於杳冥也
라
至使南征不返
注+ 至使南征不返:.하고 東遷避逼
注+ 東遷避逼:周平王東遷雒邑, 以避戎寇.하여 禋祀闕如
하고 郊畿不守
하니 此乃陵夷之漸
이 有累於封建焉
注+ 有累於封建焉:累, 去聲.이니이다
暴秦
은 運
하고 數終百六
注+ 暴秦運距閏餘 數終百六:秦世爲閏餘, 百六爲周之阨數也. 漢王莽傳云 “餘分閏位, 陽九之阨, 百六之會.” 謂莽爲閏位, 百六爲漢之阨數也. 律曆志曰 “易九厄曰 ‘初入元, 百六.’ 注, ‘易爻有九六七八, 百六與三百七十四, 六乘八之數也. 六八四十八, 合爲四百八十歲也.’”하며
受命之主
는 德異禹湯
하고 繼世之君
은 才非啓誦
注+ 才非啓誦:啓, 夏禹之子. 誦, 周武王之子成王也.이라
借使李斯王綰之輩
로 咸開四履
注+ 借使李斯王綰之輩 咸開四履:李斯王綰, 皆秦丞相. 四履, 爲諸侯而有四方所履踐之界也.하며 將閭子嬰之徒
로 俱啓千乘
注+ 將閭子嬰之徒 俱啓千乘:將閭, 秦公子, 爲二世所殺. 子嬰, 始皇之孫, 趙高立爲秦王, 後殺高降漢. 千乘, 諸侯之國, 其地可出兵車千乘者也.이라도
豈能逆帝子之勃興
하고 抗龍顔之基命者也
注+ 抗龍顔之基命者也:漢高祖, 應赤帝子之讖, 隆凖而龍顔.리오
신이 생각하건대 예로부터 천자가 천하에 군림할 때에는 상현上玄(하늘)에서 명을 받아 천제天帝의 예언서에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국가가 건립될 때는 왕이 일어날 운을 만나고, 깊은 근심이 있을 때는 성스러움이 열리는 시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비록
양자養子 계통이었던
위 무제魏 武帝와
注+조조曹操는 패沛 지역 사람이다. 부친 조숭曹嵩이 한漢나라 중상시中常侍 조등曹騰의 양자養子인데, 출생의 본말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가 한漢나라의 선양을 받아 국호를 위魏라 하고 조조를 추숭하여 무황제武皇帝라 하였다. 미천한 부역꾼이었던
한 고조漢 高祖도
注+한 고조漢 高祖는 성姓이 유劉이고, 명名이 방邦이며, 자字는 계季이며, 패沛 지역 사람이다. 처음에 사상정장泗上亭長이 되어 현縣을 위해 부역자들을 여산驪山으로 이송하였는데, 부역자들 대부분이 도중에서 도망을 쳤다. 도착할 즈음에는 모두 다 도망칠 것이라 생각하여 이송하던 부역자들을 놓아주니, 부역자들 중에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10여 명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병사를 일으켰다. 제위帝位를 넘보는 뜻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제위帝位에서 밀쳐내도 떠나가게 할 수가 없을 것이고
注+추推(밀어내다)는 타他와 회回의 반절이다.,
만일
옥송獄訟에 백성들이 귀의하지 않고
注+《맹자孟子》 〈만장萬章 상上〉에 “소송을 하는 자들도 요堯의 아들을 찾지 않고 순舜에게 찾아갔다.”라고 하였다. 정채精彩가 고갈되고 나면
비록 사방에 비치는
요堯임금의 덕과
注+《서경書經》 〈우서虞書〉에서 요堯임금을 찬미하는 말로, 덕이 빛나고 드러나 사방에 넓게 퍼지는 것을 말한다. 위로
칠정七政을 바르게 한
순舜임금도
注+《서경書經》 〈우서虞書〉에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살피시어, 칠정七政을 바로잡으소서.”라고 하였으니, 해와 달과 다섯별을 말한다. 제위帝位를 양보하는 뜻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제위帝位를 지키게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요순堯舜의 거듭되고 빛나는 덕으로도
注+방放(이르다)은 상성上聲이다. 훈勛은 훈勳과 같다. 중重(거듭)은 평성平聲이다. 방훈放勛은 요堯임금의 덕을 종합해서 말한 것이다. 중화重華는 순舜임금의 덕을 종합해서 말한 것이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는 이를 인하여 요堯와 순舜의 이름으로 했다. 오히려 후손을 창성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니,
왕업의 길고 짧음은 반드시 천시天時에 달려 있고, 정치의 흥망성쇠는 사람의 일에 관계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융성한 주周나라는 세대와 연수가 30대 700년을 점쳤기에
비록 몰락하는 도가 지극했으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덕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 이는 나라의 운명이 이미 멀리 아득한 하늘에서 미리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주 소왕周 昭王은 남방 정벌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하였고
注+주 소왕周 昭王은 덕이 쇠하였는데, 남쪽으로 순행하여 한수漢水를 건너려고 하자 사람들이 미워하여 아교로 접합시킨 배를 소왕에게 바쳤다. 배를 타고 중류에 이르자 배를 붙인 아교가 녹아 배가 해체되어 소왕은 물에 빠져 죽었다.,
주 평왕周 平王은 도읍을 동쪽으로 옮겨 오랑캐의 핍박을 피하느라
注+주 평왕周 平王은 동쪽 낙읍雒邑으로 천도하여 융적을 피하였다.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도읍 부근조차 지키지 못하였으니, 이렇게 점점 쇠퇴해진 원인이 봉건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注+누累(관련되다)는 거성去聲이다.
포학했던
진秦나라는 운수가
윤여閏餘(윤달 같은 나머지)에 이르렀고 운명도
백육百六의 액운에서 끝났으며
注+진秦나라 시대는 윤여閏餘(윤달처럼 치는 비정통 시대)이고, 백육百六은 주周나라 때의 액수阨數이다.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에 “여분餘分의 윤위閏位(윤달 같은 비정통 위치)이고, 양구陽九의 액운이고, 백육百六의 불운不運이다.”라고 하였는데, 왕망王莽이 윤위閏位이고, 백육百六이 한漢나라의 액운 수임을 말한 것이다.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이르기를 “《주역周易》의 9가지 액운에 말하기를 ‘처음에 원년元年으로 들어가서 106년 만에……’라고 하였는데, 안사고顔師古 주注에 ‘역易의 효爻에는 구육칠팔九六七八이 있는데, 백육百六과 삼백칠십사三百七十四는 육승팔六乘八의 수이다. 육팔사십팔六八四十八이 합쳐 사백팔십세四百八十歲가 된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천명을 받은 시황제는 덕이
우禹임금과
탕湯임금과는 달랐고,
대代를 이은 임금의 재능도
우禹임금과
탕湯임금의 아들인
계啓와
송誦과는 달랐습니다.
注+계啓는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아들이다. 송誦은 주 무왕周 武王의 아들 성왕成王이다.
가령
이사李斯나
왕관王綰의 무리들을 제후로 삼고
注+이사李斯와 왕관王綰은 모두 진秦나라의 승상이다. 사리四履는 제후諸侯가 되어 사방을 다닐 수 있는 경계 지역을 소유하는 것이다. 장려將閭와
자영子嬰으로 제후를 삼았다고 하더라도
注+장려將閭는 진秦나라의 공자로, 2세世 황제에게 죽임을 당했다. 자영子嬰은 진 시황의 손자로, 조고趙高가 진왕秦王으로 세웠으나 뒤에 조고를 죽이고 한漢나라에 항복하였다. 천승千乘은 제후국이니, 그 지역에서 병거兵車 천 대를 마련할 수 있다.
어찌
제자帝子(
유방劉邦)가 일어나는 것을 거스르고 용의 얼굴을 한 자가 천명을 받는 것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注+한 고조漢 高祖는 적제赤帝의 아들이라는 참위에 걸맞게 걸출하고 높은 코에 용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