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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상서禮部尙書 영흥군공永興郡公 우세남虞世南(558~638)
우세남虞世南 월주越州 여요餘姚 사람으로 자는
백시伯施이다.
고야왕顧野王에게서 10여 년을 공부하였으며
왕희지王羲之의 후손에게서 서법을 익혀서
구양순歐陽詢 등과 함께
당초唐初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남조
진陳나라가 망한 뒤에
수 양제隋 煬帝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으나 중용되지 못하였다. 수 양제가 강도에서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시해를 당하였을 때 그의 형인
우세기虞世基도 죽임을 당하였다. 우문화급을 따라 화북으로 갔다가
두건덕竇建德에게 사로잡혔다. 이세민이 두건덕을 패망시켰을 때 우세남을
홍문관학사弘文館學士로 발탁하고 방현령과 함께 공문서를 담당하게 하였으며,
진왕부秦王府 18
학사學士의 하나가 되었다. 이후 태종에게 자주 간언을 올리기도 하였다. 우세남은
오절五絶로 알려졌는데, 첫째가 덕행, 둘째가 충직, 셋째는 박학, 넷째는
문사文詞, 다섯째는
서한書翰에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관 12년(638) 병사하니 향년 8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