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十年
에 太宗謂侍臣曰 太子保傅
는 古難其選
이라 成王幼小
에 以周召爲保傅
하고 左右皆賢
하니 足以長仁
注+① 足以長仁:長, 音掌.하여 致理太平
하여 稱爲聖主
라
及秦之胡亥
하여는 始皇所愛
요 趙高作傅
하여 敎以刑法
이러니 에 誅功臣
하고 殺親戚
하여 酷烈不已
하여 旋踵亦亡
하니 以此而言
이면 人之善惡
이 誠由近習
이라
朕弱冠
注+② 朕弱冠:去聲.交遊
가 惟柴紹
注+③ 惟柴紹:字嗣昌, 臨汾人, 以任俠聞, 高祖妻以平陽公主. 武德初, 拜左翊衛大將軍, 累從戰伐而有功.竇誕等
注+④ 竇誕等:外戚也, 貞觀爲宗正卿, 太宗與語, 昏謬失對, 以光祿大夫罷.이라 爲人旣非三益
注+⑤ 爲人旣非三益:論語曰 “益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이러니
及朕居玆寶位
하여 經理天下
가 雖不及堯舜之明
이나 庶免乎孫皓高緯之暴
注+⑥ 庶免乎孫皓高緯之暴:孫皓, 三國吳主, 是爲烏程侯, 降于晉. 高緯, 北齊後主, 爲周所虜.하니 以此而言
이면 復不由染
은 何也
오
魏徵曰
이나 然上智之人
은 自無所染
이니 陛下受命自天
하사 平定寇亂
하사 救萬民之命
하시고 理致升平
하시니 豈紹誕之徒
가 能累聖德
注+⑦ 豈紹誕之徒能累聖德:累, 音類.이리오
但經云 放鄭聲
하고 遠佞人
注+⑧ 放鄭聲 遠佞人:遠, 去聲. 論語孔子答顔淵問爲邦之辭.이라하니 近習之間
에 尤宜深愼
이니이다 太宗曰 善
注+⑨ 貞觀十年……太宗曰善:按自誠由近習已上, 文重出師傅篇, 舊本此章在直諫篇, 今附入於此.타하다
注
【集論】愚按 帝堯與共驩同處로되 而不爲共驩之所化하고 周公與管蔡同處로되 而不爲管蔡之所化라
夫
는 唯堯與周公爲能耳
라 然堯猶畏孔壬
하고 周公猶懼流言
하니
豈恃其資質之美
하고 而謂惡人不能染哉
아 下此
는 則
하여 未有不與之俱化者也
라
唐太宗이 少與柴竇爲友하되 而不能昏하니 太宗之德을 世莫不疑焉이라
以愚觀之컨대 太宗之所以爲太宗은 以其資質之過人也라
其不能進於三代之君者는 以柴竇輩爲之累也라 雖然이나 太宗少年之事爾요
及其君臨天下하여는 雖房杜王魏竝居輔相이나 而封權宇文之流가 亦得厠乎其間하니 此貞觀之治가 所以止於如是也라
정관貞觀 10년(636)에
태종太宗이
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
태자太子의
보부保傅는 옛날에도 선발하기 어려웠소.
성왕成王이 어려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으로 보부를 삼고 측근의 신하를 모두 어진 사람으로 하였으니, 충분히
인덕仁德을 길러서
注+장長(우두머리)은 음音이 장掌이다. 정치가
태평太平하게 되어
성주聖主라고 일컬었소.
진秦나라의 호해胡亥는 진 시황秦 始皇에게 사랑을 받고 조고趙高가 스승이 되어서 형법으로 교육하였소. 호해가 찬탈하여 황제가 되어서는 공신을 죽이고 친척을 죽여서 잔혹함을 그치지 않아서 곧바로 또한 망했소. 이것으로 말하면 사람의 선악이 진실로 근신近臣에게 달려 있는 것이오.
짐朕이
약관弱冠에
注+〈관冠(으뜸가다)은〉 거성去聲이다. 교류한 사람은 오직
시소柴紹와
注+〈시소柴紹는〉 자字가 사창嗣昌이며, 임분臨汾 사람이다. 의협심으로 소문나서 고조高祖가 평양공주平陽公主로 아내를 삼아주었다. 무덕武德 초기에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에 임명되어 여러 번 전쟁을 따라가 공이 있었다. 두탄竇誕 등이었는데
注+〈두탄竇誕은〉 외척外戚이다. 정관貞觀 시대에 종정경宗正卿이 되어 태종太宗과 함께 대화하는데 흐리멍덩하게 대답을 잘하지 못해서 광록대부光祿大夫로 파직되었다. 사람됨이 이미 유익한 세 가지 벗이 아니었소.
注+《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말하기를 “유익한 것이 세 가지 벗이요, 손해되는 것이 세 가지 벗이니, 벗이 곧으며, 벗이 성실하며, 벗이 문견聞見이 많으면 〈유익하다.〉” 하였다.
짐이 이
보위寶位에 있으면서 천하를 경영함이 비록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명철함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거의
손호孫皓와
고위高緯의 잔악함은 면하였으니
注+손호孫皓는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오吳나라 임금이며 오정후烏程侯가 되어 진晉나라에 항복하였다. 고위高緯는 북제北齊의 후주後主이며 북주北周에 사로잡혔다., 이것으로 말한다면 다시 짐이
근신近臣에게 물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오.”
위징魏徵이 말하였다. “
중인中人은 함께 선을 할 수 있고 함께 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등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스스로 물들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천명을 받아서 난리를 평정하시어 만민의 목숨을 구제하시고 다스림이 태평을 이루시니, 어찌 시소와 두연의 무리가
성덕聖德에 누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注+누累(누가 되다)는 음音이 유類이다.
다만 《
논어論語》 〈
위영공衛靈公〉에 ‘
정鄭나라의 음악을 추방하고, 아첨하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하였으니
注+원遠(멀리하다)은 거성去聲이다. 《논어論語》 〈위영공衛靈公〉에서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질문하자 공자孔子가 대답한 말이다., 근신들의 사이에는 더욱 마땅히 깊이 삼가야 할 것입니다.” 태종이 좋다고 말하였다.
注+살펴보면 ‘성유근습誠由近習(진실로 가까운 습관을 따른다.)’으로부터 이상은 글이 〈논존경사부論尊敬師傅〉편에 거듭 나온다. 구본舊本에 이 장은 〈직간直諫〉편에 있었는데 지금 여기에 붙인다.
注
내가 살펴보건대, 요堯임금이 공공共工‧환도驩兜와 같은 곳에 살았지만 공공‧환도가 〈요임금을〉 변화시키지 못하였고, 주공周公이 관숙管叔‧채숙蔡叔과 같은 곳에 살았지만 관숙과 채숙이 주공을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상지上智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오직 요임금과 주공만이 능할 뿐이다. 그러나 요임금은 오히려 크게 간악한 마음을 품은 자[공임孔壬]를 두려워하였고 주공은 오히려 유언비어를 두려워했다.
어찌 자질의 아름다음을 믿고 악인이 물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였겠는가. 이보다 아래는 착한 사람이 지초와 난초의 향기와 같고 악한 사람이 절인 생선의 비린내와 같아서 그들과 함께 모두 변화되지 않는 자가 없다.
당 태종唐 太宗이 젊어서 시소柴紹와 두탄竇誕과 함께 친구가 되었으나 어리석어지지 않았으니 태종太宗의 덕을 세상에서 의심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내가 살펴보면 태종이 태종이 되는 이유는 그의 자질이 남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태종이 삼대三代의 임금 수준에 나가지는 못한 것은 시소와 두연의 무리들이 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는 태종의 나이가 젊어서의 일일 뿐이다.
그가 임금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게 되어서는 비록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왕규王珪‧위징魏徵이 함께 재상에 있었으나 봉덕이封德彛‧권만기權萬紀‧우문사급宇文士及 같은 무리들 또한 그 사이에 섞여 있었으니, 이것이 정관貞觀의 치적이 이와 같음에서 그치게 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태종이 이른바 따라 물들지 않았다고 한 것은 과연 그러한가. 어찌 그러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