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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3)

정관정요집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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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貞觀十年 太宗謂侍臣曰 太子保傅 古難其選이라 成王幼小 以周召爲保傅하고 左右皆賢하니 足以長仁注+① 足以長仁:長, 音掌.하여 致理太平하여 稱爲聖主
及秦之胡亥하여는 始皇所愛 趙高作傅하여 敎以刑法이러니 誅功臣하고 殺親戚하여 酷烈不已하여 旋踵亦亡하니 以此而言이면 人之善惡 誠由近習이라
朕弱冠注+② 朕弱冠:去聲.交遊 惟柴紹注+③ 惟柴紹:字嗣昌, 臨汾人, 以任俠聞, 高祖妻以平陽公主. 武德初, 拜左翊衛大將軍, 累從戰伐而有功.竇誕等注+④ 竇誕等:外戚也, 貞觀爲宗正卿, 太宗與語, 昏謬失對, 以光祿大夫罷.이라 爲人旣非三益注+⑤ 爲人旣非三益:論語曰 “益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이러니
及朕居玆寶位하여 經理天下 雖不及堯舜之明이나 庶免乎孫皓高緯之暴注+⑥ 庶免乎孫皓高緯之暴:孫皓, 三國吳主, 是爲烏程侯, 降于晉. 高緯, 北齊後主, 爲周所虜.하니 以此而言이면 復不由染 何也
魏徵曰 이나 然上智之人 自無所染이니 陛下受命自天하사 平定寇亂하사 救萬民之命하시고 理致升平하시니 豈紹誕之徒 能累聖德注+⑦ 豈紹誕之徒能累聖德:累, 音類.이리오
但經云 放鄭聲하고 遠佞人注+⑧ 放鄭聲 遠佞人:遠, 去聲. 論語孔子答顔淵問爲邦之辭.이라하니 近習之間 尤宜深愼이니이다 太宗曰 善注+⑨ 貞觀十年……太宗曰善:按自誠由近習已上, 文重出師傅篇, 舊本此章在直諫篇, 今附入於此.타하다
【集論】愚按 帝堯與共驩同處로되 而不爲共驩之所化하고 周公與管蔡同處로되 而不爲管蔡之所化
唯堯與周公爲能耳 然堯猶畏孔壬하고 周公猶懼流言하니
豈恃其資質之美하고 而謂惡人不能染哉 下此하여 未有不與之俱化者也
唐太宗 少與柴竇爲友하되 而不能昏하니 太宗之德 世莫不疑焉이라
以愚觀之컨대 太宗之所以爲太宗 以其資質之過人也
其不能進於三代之君者 以柴竇輩爲之累也 雖然이나 太宗少年之事爾
及其君臨天下하여는 雖房杜王魏竝居輔相이나 而封權宇文之流 亦得厠乎其間하니 此貞觀之治 所以止於如是也
然則太宗所謂不由漸染者 리오


정관貞觀 10년(636)에 태종太宗근신近臣에게 말하였다. “태자太子보부保傅는 옛날에도 선발하기 어려웠소. 성왕成王이 어려서 주공周公소공召公으로 보부를 삼고 측근의 신하를 모두 어진 사람으로 하였으니, 충분히 인덕仁德을 길러서注+(우두머리)은 이다. 정치가 태평太平하게 되어 성주聖主라고 일컬었소.
나라의 호해胡亥진 시황秦 始皇에게 사랑을 받고 조고趙高가 스승이 되어서 형법으로 교육하였소. 호해가 찬탈하여 황제가 되어서는 공신을 죽이고 친척을 죽여서 잔혹함을 그치지 않아서 곧바로 또한 망했소. 이것으로 말하면 사람의 선악이 진실로 근신近臣에게 달려 있는 것이오.
약관弱冠注+(으뜸가다)은〉 거성去聲이다. 교류한 사람은 오직 시소柴紹注+시소柴紹는〉 사창嗣昌이며, 임분臨汾 사람이다. 의협심으로 소문나서 고조高祖평양공주平陽公主로 아내를 삼아주었다. 무덕武德 초기에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에 임명되어 여러 번 전쟁을 따라가 공이 있었다. 두탄竇誕 등이었는데注+두탄竇誕은〉 외척外戚이다. 정관貞觀 시대에 종정경宗正卿이 되어 태종太宗과 함께 대화하는데 흐리멍덩하게 대답을 잘하지 못해서 광록대부光祿大夫로 파직되었다. 사람됨이 이미 유익한 세 가지 벗이 아니었소.注+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말하기를 “유익한 것이 세 가지 벗이요, 손해되는 것이 세 가지 벗이니, 벗이 곧으며, 벗이 성실하며, 벗이 문견聞見이 많으면 〈유익하다.〉” 하였다.
짐이 이 보위寶位에 있으면서 천하를 경영함이 비록 임금과 임금의 명철함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거의 손호孫皓고위高緯의 잔악함은 면하였으니注+손호孫皓삼국시대三國時代나라 임금이며 오정후烏程侯가 되어 나라에 항복하였다. 고위高緯북제北齊후주後主이며 북주北周에 사로잡혔다., 이것으로 말한다면 다시 짐이 근신近臣에게 물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오.”
위징魏徵이 말하였다. “중인中人은 함께 선을 할 수 있고 함께 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등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스스로 물들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천명을 받아서 난리를 평정하시어 만민의 목숨을 구제하시고 다스림이 태평을 이루시니, 어찌 시소와 두연의 무리가 성덕聖德에 누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注+(누가 되다)는 이다.
다만 《논어論語》 〈위영공衛靈公〉에 ‘나라의 음악을 추방하고, 아첨하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하였으니注+(멀리하다)은 거성去聲이다. 《논어論語》 〈위영공衛靈公〉에서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질문하자 공자孔子가 대답한 말이다., 근신들의 사이에는 더욱 마땅히 깊이 삼가야 할 것입니다.” 태종이 좋다고 말하였다.注+살펴보면 ‘성유근습誠由近習(진실로 가까운 습관을 따른다.)’으로부터 이상은 글이 〈논존경사부論尊敬師傅〉편에 거듭 나온다. 구본舊本에 이 장은 〈직간直諫〉편에 있었는데 지금 여기에 붙인다.
내가 살펴보건대, 임금이 공공共工환도驩兜와 같은 곳에 살았지만 공공‧환도가 〈요임금을〉 변화시키지 못하였고, 주공周公관숙管叔채숙蔡叔과 같은 곳에 살았지만 관숙과 채숙이 주공을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상지上智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오직 요임금과 주공만이 능할 뿐이다. 그러나 요임금은 오히려 크게 간악한 마음을 품은 자[공임孔壬]를 두려워하였고 주공은 오히려 유언비어를 두려워했다.
어찌 자질의 아름다음을 믿고 악인이 물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였겠는가. 이보다 아래는 착한 사람이 지초와 난초의 향기와 같고 악한 사람이 절인 생선의 비린내와 같아서 그들과 함께 모두 변화되지 않는 자가 없다.
당 태종唐 太宗이 젊어서 시소柴紹두탄竇誕과 함께 친구가 되었으나 어리석어지지 않았으니 태종太宗의 덕을 세상에서 의심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내가 살펴보면 태종이 태종이 되는 이유는 그의 자질이 남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태종이 삼대三代의 임금 수준에 나가지는 못한 것은 시소와 두연의 무리들이 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는 태종의 나이가 젊어서의 일일 뿐이다.
그가 임금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게 되어서는 비록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왕규王珪위징魏徵이 함께 재상에 있었으나 봉덕이封德彛권만기權萬紀우문사급宇文士及 같은 무리들 또한 그 사이에 섞여 있었으니, 이것이 정관貞觀의 치적이 이와 같음에서 그치게 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태종이 이른바 따라 물들지 않았다고 한 것은 과연 그러한가. 어찌 그러하겠는가.


역주
역주1 及其篡也 : 胡亥가 태자인 형 扶蘇를 죽이고 皇帝 자리를 빼앗은 것을 말한다.
역주2 中人可與爲善 可與爲惡 : 《漢書》 〈古今人表〉에 “함께 선을 할 수 있고 함께 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中人이라 한다.[可與爲善 可與爲惡 是謂中人]”라고 하였다.
역주3 上智不移 : 《論語》 〈陽貨〉에 “오직 上智와 下愚는 변화시킬 수 없다.[唯上智與下愚不移]”라고 하였다.
역주4 善人之芝蘭 惡人之鮑魚 : 《孔子家語》 〈六本〉에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지초와 난초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더라도 곧 그것과 동화되고, 착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 가게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더라도 또한 그것과 동화된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與不善人居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라고 하였다.
역주5 其然 豈其然乎 : 《論語》 〈憲問〉에 보인다.

정관정요집론(3)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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