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靖
注+字藥師. 姿貌魁奇, 少有文武材, 每曰 “大丈夫若遇主逢時, 必當立事立功, 以取富貴.” 其舅韓擒虎, 號名將, 每與論兵, 必曰 “可與言孫吳者.” 仕隋, 爲長安縣功曹, 歷駕部員外郞. 楊素牛弘皆器之. 餘見下文.은 京兆三原人也
注+京兆, 見前註. 三原, 縣名, 今屬輝州路, 隷陝西.라
大業末
에 爲馬邑郡丞
注+大業, 隋煬帝年號. 馬邑郡, 今朔州路, 隷河東. 丞, 守之貳也.한대 會高祖爲太原留守
라
靖觀察高祖
하여 知有四方之志
하고 因自鎖上變
하여 詣江都
注+今揚州路江都縣, 隷淮東.라가 至長安
注+卽關中.하여 道塞不通而止
라
高祖克京城
하여 執靖
하여 將斬之
어늘 靖大呼曰
注+呼, 去聲.
公起義兵은 除暴亂이어늘 不欲就大事하고 而以私怨斬壯士乎아하고
이정李靖注+〈이정李靖은〉 자字가 약사藥師이다. 용모가 훤칠하고 어려서부터 문무文武의 자질을 갖추었다. 언제나 말하기를 “대장부가 군주를 만나고 시대를 만나면 반드시 일을 이루고 공을 세워 부귀를 취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의 외숙 한금호韓擒虎는 명장으로 불렸는데, 함께 병법을 논할 때마다 반드시 “함께 손자孫子와 오기吳起를 논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수隋나라에 벼슬하여 장안현長安縣 공조功曹가 되었고, 가부원외랑駕部員外郞을 지냈다. 양소楊素와 우홍牛弘이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나머지는 아래에 보인다.은경조京兆 삼원三原 사람이다.
注+경조京兆는 앞의 주註에 보인다. 삼원三原은 현縣의 이름이니, 지금의 휘주로輝州路에 속하며 섬서陝西 소속이다.
대업大業(605~617) 말엽에
마읍군馬邑郡의
승丞이 되었는데,
注+대업大業은 수隋나라 양제煬帝의 연호이다. 마읍군馬邑郡은 지금의 삭주로朔州路이니, 하동河東에 속한다. 승丞은 수守의 부관이다. 마침
고조高祖가
태원유수太原留守로 있었다.
이정이 고조를 보고 천하를 차지하려는 뜻이 있음을 알고는 스스로 죄인이 되어 조정에 고변하기 위해 〈
수隋 양제煬帝가 있는〉
강도江都注+〈강도江都는〉 지금의 양주로揚州路 강도현江都縣이니 회동淮東에 속한다.로 나아갔는데,
장안長安注+〈장안長安은〉 바로 관중關中이다.에서 길이 막혀 갈 수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고조가
경성京城(長安)을 함락하여 이정을 붙잡아 목을 베려고 하자, 이정이 큰 소리로 외쳤다.
注+호呼(소리치다)는 거성去聲이다.
“공이 의병을 일으킨 것은 흉포함과 혼란을 없애기 위함인데, 대사大事를 성취하려 하지는 않고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장사를 목 베려 하시오.”
태종太宗 역시 이정을 구원하는데 힘을 실어주니 결국 고조가 이정을 풀어주었다.
李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