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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觀政要集論(1)

정관정요집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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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집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公之所陳 朕聞過矣 當置之几案하여 事等弦韋注+弦, 弓弦. 韋, 柔皮也. 韓子曰 “西門豹性急, 佩韋以自緩, 董安于性緩, 佩弦以自急.”하리라
의 진언에서 짐의 과실을 들었으니 당연히 책상에 놓아두고 완급緩急을 조절하는 지침으로 삼겠소.注+은 활줄이고, 는 부드러운 가죽이다. 《한비자韓非子》 〈관행觀行〉에 “서문표西門豹는 성격이 급하여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니면서 스스로 느긋하게 하였고, 동안우董安于는 성격이 느긋하여 활줄을 차고 다니면서 스스로 긴장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必望하여 期之歲暮하고 不使康哉良哉 獨美於往日注+美, 亦作盛. 虞書舜皐陶賡歌之辭曰 “股肱良哉, 庶事康哉.”하고 若魚若水 遂爽於當今注+蜀先主曰 “孤之有孔明, 猶魚之得水也.”이라
반드시 초년의 실수를 수습하여 늘그막에 도모하기를 바라고, 신하가 훌륭하여 일이 편안하게 된다는 것이 과거의 아름다운 일로만 남게 하지 말고,注+으로도 되어 있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익직益稷〉에 임금과 고요皐陶가 이어가며 노래한 가사에 “고굉(신하)이 훌륭하여 모든 일이 편안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물고기와 물과 같은 관계가 지금에도 어긋나게 하지 않겠소.注+촉한蜀漢 선주先主(劉備)가 “나에게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遲復嘉謀하노니 犯而無隱注+遲, 去聲. 禮 “事君有犯而無隠.”하라
아름다운 계획을 거듭하기를 기다릴 것이니, 면전에 직간함은 있고 은미하게 간함은 없어야 할 것이오.注+(기다리다)는 거성去聲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에 “임금을 섬기는 데에는 면전에 직간함은 있고 은미하게 간함은 없다.”라고 하였다.
朕將虛襟靜志하여 敬佇德音注+按太宗此詔, 係在十一年七月, 魏徴累上疏之後.하리라
짐은 장차 마음을 비우고 뜻을 안정시키고서 경건하게 훌륭한 말을 기다리겠소.”注+살펴보면 태종太宗의 이 조칙은 《자치통감資治通鑑정관貞觀 11년(637) 7월에 위징이 누차 올린 상소의 뒤에 실려 있다.
【集論】孫氏甫曰
【集論】孫甫가 말하였다.
魏公以忠直稱하여 歴數百年而名愈高하니
위공魏公충직忠直으로 칭송받아 수백 년을 거쳐오면서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李翶論修史之法 則曰 假如傳魏徴하면 則記其諫諍之詞 足以見正直이라하니
이고李翶가 역사 편찬의 법을 논할 적에 말하기를 ‘가령 위징魏徴의 열전을 만든다면 그 간쟁한 말을 기록하는 데에서 충분히 정직正直함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是魏公得諫諍之道 其言足以傳信於後也
이는 위공魏公간쟁諫諍를 얻었으니 그의 말이 충분히 후세에 진실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此二疏 乃諫諍之著者
이 두 건의 상소는 바로 간쟁에 관한 저술이다.
魏公事英主 力賛治道하여 已成太平之治하고 見其小失하면 尙孜孜諫諍以防其甚하니라
위공魏公은 영특한 임금을 모실 적에 힘써 정치의 도를 도와 이미 태평의 치적을 이룩하고, 태종太宗의 작은 실수를 보면 여전히 힘써 간쟁하여 심각한 상황을 예방하였다.
如事中常之主하여 天下未治 其君或有大過 諫必危切이요 至安危大計하여는 必忘身以爭也리라
만일 중간 등급의 임금을 섬겨 천하가 아직 다스려지지 않았을 적에 그 임금에게 혹 큰 과실이 있다면 간쟁을 반드시 위태롭고 절실하게 했을 것이고, 안위安危의 큰 계책에 있어서는 반드시 자신을 잊고 다투었을 것이다.
蓋輔相之道 不至此 不足以爲忠하니 後之爲相者 宜詳之로다
재상의 도가 이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충성이라고 하기에 부족하니 뒤에 재상이 된 자는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呂氏祖謙曰
여조겸呂祖謙이 말하였다.
魏徵教太宗十思 使太宗能以是十思而充之 則當時之治 不惟貞觀而已리니 雖竝隆於堯舜이라도 可也니라
“위징이 태종太宗에게 열 가지 생각[十思]을 가르치매 만일 태종이 이 열 가지 생각을 잘 확충해나갔다면 당시의 치적이 정관貞觀 정도에 그칠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니, 비록 임금‧임금과 나란히 융성한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然魏公之十思 可以與孔子之 同垂訓於萬世矣
그러나 위공의 열 가지 생각은 공자孔子의 아홉 가지 생각[九思]과 함께 만대에 훈계를 남길 수 있다.”
愚按 魏徵之於諫也 可謂難矣
내가 살펴보건대 위징魏徵이 간언함에 있어서 신중했다고 이를 만하다.
不惟大事能諫이라 雖小事라도 未嘗舍也 不惟初年能諫이라 雖末年이라도 未嘗輟也
큰일을 잘 간언했을 뿐만 아니라 비록 작은 일이라도 버려둔 적이 없고, 초년에 잘 간언했을 뿐만 아니라 비록 말년에 이르러서도 그친 적이 없었다.
이어늘 而是年一月之中 見於諫疏者 凡二焉이라
역사에서 위징의 평생 간언한 상소가 200여 편이라고 일컫는데 이해(貞觀 11년) 한 달 동안 간언한 상소로 보이는 것이 두 건이다.
見於書者如此하니 則其見於言者 可知矣 傳於世者如此하니 則其不傳於世者 亦可知矣로다
글에 나타난 것이 이와 같으니 말에 나타난 것을 알 만하고, 세상에 전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세상에 전하지 않는 것을 또한 알 만하다.
臣不以數諫爲嫌하고 君不以數諫爲忤하니 其致貞觀之治 有以也夫로다
신하가 자주 간언함을 꺼리지 않고 임금이 자주 간언을 듣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니 정관貞觀의 치적을 이룬 것이 이유가 있도다.
今以二疏觀之하니 一以爲當監隋之所以失하고 念唐之所以得이요 一以爲有善始者實繁이나 能克終者實寡
지금 이 상소 두 건을 살펴보니, 하나는 나라가 천하를 잃은 까닭을 거울삼고 나라가 천하를 얻은 까닭을 생각하라는 것이며, 하나는 시작을 잘하는 이는 실로 많으나 끝까지 잘하는 이는 실로 적다는 것이다.
夫能懼得失而後 能愼終始 能愼終始 則有得而無失矣리니 二疏之言 相爲表裏者也
얻고 잃는 것을 두려워한 뒤에야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히 할 수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히 할 수 있으면 얻음은 있고 잃음이 없을 것이니, 두 건 상소의 말은 서로 표리가 되는 것이다.
吳氏合二疏하여 爲一章하니 厥有旨哉로다
오긍吳兢이 두 건 상소를 합하여 1으로 만들었으니 그 뜻이 있도다.
역주
역주1 收彼桑榆 : 초년의 실패를 뒤에 수습하는 것을 말한다. 後漢 때의 장수 馮異가 赤眉의 난을 토벌하다가 처음 싸움에서 패하고, 얼마 뒤에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적미의 군대를 격파하였는데, 光武皇帝가 “처음에 회계에서 날개가 꺾였지만 마침내 민지에서 날개를 떨쳤으니, 아침에 잃었다가 저녁에 거두었다고 이를 만하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澠池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楡]”라고 하였다. 《後漢書 권17 馮異列傳》
역주2 通鑑 : 《資治通鑑》 권195 唐紀 11 太宗에 보인다.
역주3 九思 : 군자가 생각할 아홉 가지 일로,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視思明],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聽思聰], 안색을 온화하게 하기를 생각하고[色思溫], 용모를 공손하게 하기를 생각하고[貌思恭], 진실하게 말하기를 생각하고[言思忠], 공경히 일할 것을 생각하고[事思敬], 의심나면 묻기를 생각하고[疑思問], 화나면 환난을 생각하고[忿思難], 얻을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것[見得思義]이다. 《論語 季氏》
역주4 史稱其平生諫疏二百餘篇 : 《舊唐書》 〈魏徵列傳〉에 “〈太宗이 위징을 위로하기를〉 卿이 진술한 간언이 전후로 200여 건인데 경이 지극 정성으로 나라를 받들지 않는다면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겠소.[卿所陳諫 前後二百餘事 非卿至誠奉國 何能若是]”라고 하였다.

정관정요집론(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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