朕惟三代而後에 治功莫盛於唐이요 而唐三百年間에 尤莫若貞觀之盛이라
誠以太宗克己勵精
하여 圖治於其上
하고 而群臣如魏徵輩
가 感其知遇之隆
하여 相與
하여 以輔治於下
하여
厥後에 史臣吳兢이 采其故實하여 編類爲十卷하고 名曰貞觀政要라하다
有元儒士臨川戈直이 復加考訂註釋하여 附載諸儒論說하여 以暢其義하고
而當時大儒吳澄
이 又爲之題辭
하여 以爲
라하니 其信然也
라
朕萬幾之暇에 銳情經史라가 偶及是編하여 喜其君有任賢納諫之美하며 臣有輔君進諫之忠하니
其論治亂興亡과 利害得失이 明白切要하여 可爲鑑戒하니 朕甚嘉尙焉하니라
顧傳刻歲久에 字多訛謬할새 因命儒臣重訂正之하여 刻梓以永其傳하니라
於戲라 太宗在唐爲一代英明之君으로 其濟世康民에 偉有成烈하여 卓乎不可及已로다
所可惜者
는 正心修身
이 有愧於
之道
하여 而治未純也
라
朕將遠師往聖
하고 允迪大猷
하여 以宏至治
에 固不專於是編
이나 然而嘉尙之者
는 以其可爲
之助也
라
짐朕은 생각해보니,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 이후에 치적이 당唐나라보다 성대한 나라가 없고, 당唐나라 300년 동안에는 정관貞觀만큼 더욱 성대한 시대가 없었다.
참으로 태종太宗은 사욕을 극복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위에서 정치를 계획하였고, 신하들 중에 위징魏徵 같은 이들은 융숭한 지우知遇에 감격하여 함께 옳은 것을 진언하고 그른 것을 그만두도록 하여 아래에서 정치를 도왔다.
임금은 명철하고 신하는 어지니 유독 성대한 것이 마땅하다.
원元나라의 유생儒生 임천臨川 사람 과직戈直이 다시 고정考訂하고 주석註釋하여 여러 학자들의 논설論說을 붙여 그 뜻을 밝히고,
짐이 많은 정무를 보는 여가에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예의 주시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어 임금은 현인을 임용하고 간언을 받아들인 아름다움이 있으며, 신하는 임금을 보좌하고 간언을 올린 충성이 있음을 기뻐하였다.
그 치란흥망과 이해득실을 논한 것이 명백하고 간절하여 감계鑑戒가 될 만하니, 짐이 매우 가상하게 여겼다.
살펴보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판각되고 세월이 오래되어 글자가 잘못된 곳이 많았기 때문에, 유신儒臣에게 명하여 거듭 고쳐 바로잡아 판각하여 오래도록 전하게 하였다.
아, 태종은 당唐나라에서 한 시대의 영명英明한 임금으로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에 훌륭하게 이루어 놓은 공적이 있으니, 우뚝하여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을 바로잡고 몸을 수양한 것이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의 도道에 못 미쳐 치적이 순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짐이 멀리 과거의 성인聖人을 스승으로 삼고 참으로 큰 도道를 실천하여 지극한 치적을 넓혀가려 하는데, 참으로 이 책만을 전용할 것은 아니지만 가상히 여기는 것은 〈《중용中庸》에서 말한〉 ‘먼 데를 갈 적에는 가까운 데에서 출발하며 높은 데를 오를 적에는 낮은 데에서 오른다.’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앞에 서문을 쓰니 읽는 이들은 살펴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