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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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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子謂公冶長하사대 可妻也로다
께서 공야장公冶長하시기를 “딸을 줄 만하다.
雖在縲絏之中이나 非其罪也라하시고 以其子妻之하시다
그가 비록 감옥에 갇힌 적이 있으나, 그의 가 아니었다.”라고 하시고서, 당신의 딸을 그의 아내로 주셨다.
[注]孔曰 冶長 弟子 魯人也
공왈孔曰:공야장公冶長은 제자로 나라 사람이다.
姓公冶 名長이라
성은 공야公冶이고 이름은 이다.
黑索이요 攣也 所以拘罪人이라
는 검은 끈이고, 은 묶음이니, 죄인을 구속하는 것이다.
[疏]‘子謂’至‘妻之’
의 [子謂]에서 [妻之]까지
○正義曰:此章明弟子公冶長之賢也.
○正義曰:이 장은 제자 공야장公冶長의 어짊을 밝힌 것이다.
‘子謂公冶長 可妻也’者, 納女於人曰妻.
[子謂公冶長 可妻也] 딸을 남에게 주는 것을 ‘’라 한다.
孔子評論弟子公冶長德行純備, 可納女與之爲妻也.
공자께서 제자 공야장은 덕행이 순정純正하고 완비되었으니 딸을 그의 아내로 줄 만하다고 평론하신 것이다.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者, 縲, 黑索, 絏, 攣也, 古獄以黑索拘攣罪人.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는 검은 끈이고, 은 묶는 것이니, 옛날에는 감옥에 갇힌 죄인을 검은 끈으로 구속하였다.
於時冶長以枉濫被繫, 故孔子論之曰 “雖在縲絏之中, 實非其冶長之罪也.”
이때 공야장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으므로 공자께서 “비록 감옥 속에 갇힌 적이 있으나 사실은 그것이 공야장의 죄가 아니었다.”고 논평하신 것이다.
‘以其子妻之’者, 論竟, 遂以其女子妻之也.
[以其子妻之] 논평을 마치시고서 마침내 당신의 딸을 그의 아내로 주신 것이다.
[疏]○注 ‘孔曰’至‘罪人’
의 [孔曰]에서 [罪人]까지
○正義曰:云 ‘冶長 弟子 魯人也’者, 案家語弟子篇云 “公冶長, 魯人, 字子長.
○正義曰:[冶長 弟子 魯人也] 고찰하건대 《공자가어孔子家語》 〈제자편弟子篇〉에 “공야장公冶長나라 사람으로 자가 자장子長이다.
爲人能忍恥, 孔子以女妻之.” 又案史記弟子傳云 “公冶長, 齊人.”
사람됨이 치욕을 잘 참으니, 공자께서 딸을 그의 아내로 주셨다.”고 하였고, 또 고찰하건대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공야장은 나라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而此云 “魯人.” 用家語爲說也.
여기에 “노인魯人이다.”라고 한 것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설을 준용準用(전거로 삼아 채용함)한 것이다.
云 “公冶長墓, 在陽城姑幕城東南五里所, 基極高.”
장화張華는 “공야장의 무덤이 양성陽城 고막성姑幕城 동남쪽 5리 지점에 있는데 기지基地가 매우 높다.”고 하였다.
, 故繫之縲絏.” 以其不經, 今不取也.
구설舊說에는 “공야장이 새들의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고 하였으나, 사리에 맞지 않는 허황된 말이므로 지금 취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公]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皇本에는 公冶長으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孔安國의 注에 ‘姓公冶 名長’이라고 하였으니, 응당 ‘冶長’이라고 單稱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 張華 : 晉나라 惠帝 때 太子少傅와 右光祿大夫를 지낸 사람으로, 圖讖과 緯書 및 醫藥‧筮‧風水地理 등에 해박하였다고 한다. 《晉書》에 그의 傳이 있다.
역주3 舊說 冶長解禽語 : 舊說은 皇侃의 《論語義疏》에 보이는 《論釋》을 이른 듯한데, 作者 미상이다. 《論語義疏》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별개의 한 책이 있는데 書名이 《論釋》이다. 그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公冶長이 衛나라에서 魯나라로 돌아올 때 두 나라 국경에 당도하여, 새들이 서로 부르며 ‘淸溪로 가서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자.’고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조금 뒤에 한 老婆가 길을 막고 앉아 통곡하는 것을 보고서 공야장이 왜 우느냐고 물으니, 그 노파가 ‘우리 아들이 얼마 전에 먼 길을 떠나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으니,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시신이 어디 있는지 몰라 〈이렇게 찾아 나선 것이오.〉’라고 하였다. 공야장이 ‘조금 전에 새들이 서로 부르며 「청계로 가서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자.」고 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죽은 사람이 아마도 노파의 아들인 성싶소.’라고 말해주었다. 노파가 청계로 가서 그 아들을 찾았는데, 이미 죽어있었다.
노파가 즉시 村長에게 고소하니 촌장이 ‘노파는 시신이 청계에 있는 줄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노파가 ‘공야장을 만났는데 그가 그렇게 말하였소.’라고 대답하였다. 촌장은 ‘공야장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시신이 청계에 있는 줄을 알았겠는가?’라고 하고서, 공야장을 구속하여 獄官에게 넘겼다.
옥관이 공야장에게 ‘어째서 사람을 죽였느냐?’고 묻자, 공야장은 ‘나는 새의 말을 알기 때문에 시신이 그곳에 있는 줄을 안 것이지, 내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옥관은 ‘시험해보고서 만약 새의 말을 안다면 즉시 석방하겠지만 만약 새의 말을 알지 못한다면 죽일 것이다.’라고 하고서, 60일을 기한으로 정해 공야장을 옥에 가두었다.
60일이 되는 날에 참새가 獄舍의 울짱에 앉아 서로 부르며 지저귀니 공야장이 빙그레 웃었다. 이를 본 獄吏가 옥관에게 ‘공야장이 참새의 말에 웃었으니 새들의 말을 아는 것 같습니다.’라고 아뢰니, 옥관이 옥리를 시켜 공야장에게 참새들이 무슨 말을 하였기에 웃은 것인지를 묻게 하였다. 공야장이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白蓮水 가에 곡식을 싣고 가던 수레가 엎어져서 황소가 뿔이 부러졌다. 곡식을 다 수습하지 않았으니 가서 쪼아 먹자고 서로 불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옥관은 믿지 않고서 사람을 보내어 가서 살펴보게 하니,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논어주소(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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