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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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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子畏於匡
[注]包曰 匡人誤圍夫子하야 以爲陽虎
陽虎曾暴於匡이러니 夫子弟子 時又與虎俱行이라
後尅爲夫子御하야 至於匡하니 匡人相與共識尅하고 又夫子容貌與虎相似
故匡人以兵圍之하니라
文王旣沒이시나 不在玆乎
[注]孔曰 玆 此也 言文王雖已死 其文見在此
自謂其身이라
天之將喪斯文也신댄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어니와
[注]孔曰 文王旣沒이라 故孔子自謂後死
言天將喪此文者ᄂ댄 本不當使我知之어늘 今使我知之하니 未欲喪也
天之未喪斯文也시니 匡人其如予何리오
[注]馬曰 其如予何者 猶言奈我何也
天之未喪此文하니 則我當傳之
匡人欲奈我何 言其不能違天以害己也
[疏]‘子畏’至‘予何’
○正義曰 : 此章記孔子知天命也.
‘子畏於匡’者, 謂匡人以兵圍孔子.
記者以衆情言之, 故云 “子畏於匡.” 其實孔子無所畏也.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者, 孔子以弟子等畏懼, 故以此言諭之.
玆, 此也.
言文王雖已死, 其文豈不見在我此身乎. 言其文見在我此身也.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者, 後死者, 孔子自謂也.
以文王旣沒, 故孔子自謂己爲後死者.
言天將喪此文者, 本不當使我與知之,
今旣使我知之, 是天未欲喪此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者, 如予何, 猶言奈我何也.
天之未喪此文, 則我當傳之,
匡人其欲奈我何. 言匡人不能違天以害己也.
[疏]○注 ‘包曰’至‘圍之’
○正義曰 : 此注皆約世家, 述其畏匡之由也.
案世家云“孔子去衛, 將適陳, 過匡.
顔尅爲僕, 以策指之曰 ‘昔日吾入此, 由彼缺也.’
匡人聞之, 以爲魯之陽虎.
陽虎嘗暴匡人, 匡人於是遂止孔子.
孔子狀貌類陽虎, 拘焉五日.
匡人拘孔子益急. 弟子懼.
孔子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已下文與此正同, 是其事也.


께서 광읍匡邑에서 두려워하실 적에,
포왈包曰 : 광읍匡邑 사람들이 부자夫子양호陽虎오인誤認하고서 포위한 것이다.
양호陽虎가 전에 광읍匡邑에서 포악한 짓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부자夫子제자弟子 안극顔尅양호陽虎와 함께 갔었다.
그 뒤에 안극顔尅부자夫子복어僕御(御者)가 되어 광읍匡邑에 이르니 광인匡人들이 안극顔尅을 알아보았고, 또 부자夫子용모容貌양호陽虎와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광인匡人병기兵器를 들고 와서 부자夫子를 포위한 것이다.
께서〉 말씀하셨다.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나, 은 나에게 있지 않은가?
공왈孔曰 : (여기)이니, 비록 문왕文王은 이미 죽었으나, 그 이 지금[見]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자신을 이른 것이다.
하늘이 이 을 없애려 하셨다면 내가 이 에 참여하지 못했을 터이지만,
공왈孔曰 :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므로 공자孔子께서 스스로 ‘후사後死’라고 하신 것이다.
‘하늘이 이 을 없애려 하였다면 본래 나로 하여금 이 을 알지 못하게 하였을 것인데, 지금 나로 하여금 〈이 을〉 알게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이 을〉 없애려 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이다.
하늘이 이 을 없애지 않으셨으니, 광인匡人이 장차[其] 나를 어찌하겠는가?”
마왈馬曰 : ‘기여여하其如予何’는 ‘내아하奈我何(나를 어찌하겠는가)’라는 말과 같다.
‘하늘이 이 을 없애지 않았으니 내가 응당 그 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광인匡人들이 나를 어찌하고자 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들이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의 [子畏]에서 [予何]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공자孔子께서 천명天命을 아셨음을 기록한 것이다.
[子畏於匡] 광인匡人들이 병기兵器를 들고 와서 공자孔子를 포위한 것을 이른다.
이 장을 기록한 자가 〈포위당했던〉 여러 사람들의 심정心情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공자께서 광읍匡邑에서 두려워하셨다.”라고 한 것이니, 실제로 공자孔子께서는 두려워하신 바가 없으셨다.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공자孔子께서는 제자弟子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제자들을 깨우치신 것이다.
(여기)이다.
‘비록 문왕文王은 이미 죽었으나, 그 이 어찌 지금[見] 내 몸에 있지 않으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 이 지금 나의 이 몸에 있다.’는 말이다.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후사자後死者공자孔子가 자신을 이르신 것이다.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스스로 자신을 후사자後死者라고 하신 것이다.
‘하늘이 이 을 없애려 하였다면 본래 응당 나로 하여금 이 을 알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미 나로 하여금 이 을 알게 하였으니, 이것은 하늘이 이 을 없애려 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이다.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여여하如予何내아하奈我何라는 말과 같다.
‘하늘이 이 을 없애지 않았으니, 내가 응당 그 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광인匡人들이 장차 나를 어찌하겠느냐?’라고 하였으니, ‘광인匡人들이 하늘의 뜻을 어기고서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의 [包曰]에서 [圍之]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는 모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의 내용을 요약要約하여 공자孔子께서 에서 두려움을 겪으신 이유를 서술한 것이다.
고찰하건대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孔子께서 나라를 떠나 나라로 가실 때, 광읍匡邑을 지나셨다.
이때 안극顔尅이 〈공자의〉 수레를 몰았는데, 채찍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전일에 제가 이 으로 들어갈 때는 저 무너진 성벽城壁 틈을 통해 들어갔습니다.’라고 하였다.
광인匡人들은 그 말을 듣고서 공자孔子나라의 양호陽虎로 오인하였다.
양호陽虎가 전에 광인匡人들에게 포악한 짓을 한 적이 있었으므로 광인匡人들이 마침내 공자孔子의 길을 막았다.
공자孔子용모容貌양호陽虎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광인匡人들은 공자를 양호로 오인하여〉 5일 동안 억류抑留하였다.
광인匡人들이 공자孔子를 더욱 사납게 구금拘禁하니 제자弟子들이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공자孔子께서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니 이 나에게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다.”라고 하였다.
이하以下의 글도 《논어論語》의 글과 일치하니, 이것이 바로 그 일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顔尅 : 阮刻本에서 밝힌 바와 같이 顔尅, 顔刻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한다.
역주2 : 注와 疏에는 ‘文’에 대한 해석이 없고, 皇侃의 《論語義疏》에 “文王의 文章이다.”라고 하였다. 文章은 禮樂制度를 이르니, 곧 文王이 나라를 다스리던 禮樂制度를 이른 것이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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