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子曰 泰伯 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太王疾, 太伯因適吳越採藥, 太王歿而不返, 季歷爲喪主, 一讓也. 季歷赴之, 不來奔喪, 二讓也. 免喪之後, 遂斷髮文身, 三讓也.
疏
○正義曰 : 云‘泰伯 周太王之長子云云’者, 史記吳世家云 “泰伯‧弟仲雍, 皆周太王之子, 而王季歷之兄也.
於是泰伯‧仲雍二人, 乃奔荊蠻, 文身斷髮, 示不可用, 以辟季歷.
仲雍卒, 子季簡立. 季簡卒, 子叔達立. 叔達卒, 子周章立.
是時周武王克殷, 求太伯‧仲雍之後, 得周章. 周章已君吳,
因而封之. 乃封周章弟虞仲於周之北故夏墟, 是爲虞仲, 列爲諸侯.” 是泰伯讓位之事也.
“태백泰伯은 ‘지극한 덕德’이라고 이를 만하다.
세 번 천하를 사양하였으나, 백성들이 그 덕德을 칭송할 수 없었다.”
注
왕왈王曰 : 태백泰伯은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장자長子이다.
차자次子는 중옹仲雍이고, 계자季子는 계력季歷이다.
계력季歷이 현명한 데다 또 성자聖子인 문왕文王 창昌을 낳으니, 〈태왕太王은〉 창昌이 반드시 천하天下를 갖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태백泰伯이 왕계王季(季歷)에게 천하天下를 세 번 사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양한 것이 은미隱微해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그를 칭송할 수 있는 자취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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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經의 [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태백泰伯이 왕위를 사양한 덕德을 논한 것이다.
계력季歷이 현명한 데다 또 성자聖子인 문왕文王 창昌을 낳으니, 〈태왕太王은〉 창昌이 반드시 천하天下를 갖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태백泰伯이 왕계王季에게 천하天下를 세 번 사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양한 것이 숨겨져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칭송할 수 있는 자취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를 ‘지극한 덕德’으로 여겨 공자孔子께서 칭송하신 것이다.
정현鄭玄의 주注에 “태백泰伯은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장자이다.
태왕太王이 보기에 계력季歷은 현명한 데다 또 아들 문왕文王을 낳으니 〈문왕文王이〉 성인聖人의 의표儀表가 있었다.
그러므로 계력季歷을 세자世子로 세우려 하였으나, 명命을 내리지는 않았다.
태왕太王이 병이 나자 태백太伯(泰伯)이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오吳‧월越 지방으로 가서 약초藥草를 캐다가 태왕太王이 죽자 돌아오지 않고 계력季歷이 상주喪主가 되게 하였으니, 이것이 첫 번째 사양한 것이고, 계력季歷이 부고訃告를 보냈으나 분상奔喪(먼 곳에서 부모의 부음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옴)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두 번째 사양한 것이고, 탈상脫喪한 뒤에는 마침내 머리를 깎고 문신文身하였으니, 이것이 세 번째 사양한 것이다.
세 번 사양한 미덕美德이 모두 숨겨지고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칭송할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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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 : [泰伯 周太王之長子……] 《사기史記》 〈오세가吳世家〉에 “태백泰伯과 그 아우 중옹仲雍은 모두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아들로 왕王 계력季歷의 형이다.
계력季歷이 현명한 데다 또 성자聖子 창昌을 낳으니, 태왕太王은 계력季歷을 세자世子로 세워 창昌에게 왕위王位가 미쳐가게 하고자 하였다.
〈아버지의 뜻을 안〉 태백泰伯과 중옹仲雍 두 사람은 형만荊蠻으로 도망가서 문신文身을 하고 머리를 깎아 임금으로 쓰일 수 없음을 보여 계력季歷에게 피양避讓(사양)하였다.
계력季歷이 과연 군위君位를 승계하여 임금이 되니 이가 왕계王季이고, 뒤에 창昌이 승계하여 임금이 되니 이가 문왕文王이다.
태백泰伯은 형만荊蠻으로 도망간 뒤에 스스로 〈국명國名을〉 ‘구오句吳’라고 호칭하였다.
그를 의義롭게 여겨 귀의한 형만荊蠻 사람 천여千餘 가家가 그를 임금으로 옹립擁立하고서 오태백吳泰伯이라 하였다.
태백泰伯이 자식 없이 죽자 아우 중옹仲雍이 즉위하였으니, 이가 오중옹吳仲雍이다.
중옹仲雍이 죽자 아들 계간季簡이 즉위하였고, 계간季簡이 죽자 아들 숙달叔達이 즉위하였으며, 숙달叔達이 죽자 아들 주장周章이 즉위하였다.
이때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격멸擊滅하고 태백太伯(泰伯)과 중옹仲雍의 후손을 수소문해 주장周章을 찾았는데, 주장周章은 이미 오吳나라의 임금이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대로 그를 오吳나라에 봉封해주고, 주장周章의 아우 우중虞仲을 주周나라 북쪽 옛 하夏나라 유허遺墟에 봉하였으니, 이가 우중虞仲으로 지위地位가 제후諸侯의 반열班列에 올랐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태백泰伯이 군위君位를 사양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