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子曰 吾自衛反魯然後 樂正 雅頌各得其所’
孔子以定十四年去魯, 應聘諸國. 魯哀公十一年, 自衛反魯.
疏
○正義曰 : 案左傳哀十一年冬, “衛孔文子之將攻大叔也, 訪於仲尼,
仲尼曰 ‘胡簋之事則嘗學之矣, 甲兵之事未之聞也.’
杜注云 “於是自衛反魯, 樂正, 雅頌各得其所.” 是也.
“내가 위衛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돌아온 뒤에 악장樂章이 바로잡혀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자리를 찾았노라.”
注
정왈鄭曰 : 공자孔子께서 노魯나라로 돌아온 것은 애공哀公 11년 겨울이다.
이 당시 도道가 쇠퇴하고 악樂이 퇴폐頹廢하였는데, 공자孔子께서 돌아오셔서 마침내 바로잡으셨다.
그러므로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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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經의 [子曰 吾自衛反魯然後 樂正 雅頌各得其所]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공자孔子께서 퇴폐된 악樂을 바로잡은 일을 말씀하신 일을 기록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정공定公 14년에 노魯나라를 떠나시어 여러 나라의 초빙招聘에 응應해 〈각국各國을 주유周遊하시다가〉 노魯나라 애공哀公 11년에 위衛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돌아오셨다.
이때 도道가 쇠퇴하고 악樂이 퇴폐하였으므로 공자孔子께서 돌아오셔서 바로잡으셨다.
그러므로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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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 : 고찰하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11년 겨울에 “위衛나라 공문자孔文子가 태숙太淑을 공격하려고 중니仲尼에게 묻자,
중니仲尼가 ‘호궤胡簋(祭祀)의 일이라면 일찍이 배웠지만 갑병甲兵의 일이라면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하고,
물러나와 수레에 말을 메우라고 명하여 떠나면서 말하기를 ‘새는 나무를 선택할 수 있지만, 나무가 어찌 새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공문자孔文子가 급히 만류하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 감히 나 개인의 이익을 꾀하겠습니까?
위衛나라의 화난禍難에 대해 자문諮問하려 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중니仲尼께서 머물고자 하셨으나 노魯나라 사람이 폐백幣帛을 보내 불렀으므로 이에 노魯나라로 돌아오셨다.”라고 하였다.
두예杜預의 주注에 “이때 위衛나라에서 노魯나라로 돌아오시니 악樂이 바로잡혀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자리를 찾았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