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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3)

논어주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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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公山弗擾以費畔하야어늘 子欲往하시다
공산불요公山弗擾비읍費邑점거占據[以]해 반란을 일으키고서 〈공자孔子를〉 부르니, 께서 가려 하셨다.
[注]孔曰 弗擾為季氏宰하야 與陽虎共執季桓子하고 而召孔子하니라
공왈孔曰 : 공산불요公山弗擾계씨季氏읍재邑宰가 되어, 양호陽虎와 함께 계환자季桓子를 잡아 가두고서 공자孔子를 불렀다.
子路不說曰
자로子路가 좋아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리잇고
“갈 곳이 없으면 말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굳이 공산씨公山氏에게 가려 하십니까?”
[注]孔曰 之 適也
공왈孔曰 : (감)이다.
無可之則止 何必公山氏之適이리잇가
갈 만한 곳이 없으면 그만두실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굳이 공산씨公山氏에게 가려 하십니까?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夫召我者 而豈徒哉리오
“저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공연히 부르겠는가?
如有用我者 吾其為東周乎ᄂ저
만약 나를 등용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장차[其] 동방東方나라를 부흥復興시키겠다.”
[注]興周道於東方이라
나라의 동방東方부흥復興시킴이다.
故曰東周라하시니라
그러므로 ‘동주東周’라 한 것이다.
[疏]‘公山’至‘周乎’
의 [公山]에서 [周乎]까지
○正義曰 : 此章論孔子欲不避亂而興周道也.
정의왈正義曰 : 이 공자孔子께서 난적亂賊을 피하지 않으시고서 나라의 부흥復興시키고자 하심을 논한 것이다.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者, 弗擾, 卽左傳公山不狃也, 字,子洩,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 공산불요公山弗擾는 바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말한 공산불뉴公山不狃자설子洩이다.
為季氏費邑宰, 與陽虎共執季桓子, 據邑以畔, 來召孔子, 孔子欲往從之也.
공산불요公山弗擾계씨季氏비읍재費邑宰가 되어 양호陽虎와 함께 계환자季桓子를 잡아 가두고서 비읍費邑점거占據해 반란을 일으키고서 〈사람을 보내〉와서 공자孔子를 부르니, 공자孔子께서는 가서 그를 따르고자 하신 것이다.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者, 上下二之俱訓為適.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위아래의 두 ‘’字는 모두 (감)이다.
末, 無也. 已, 止也.
이고, 는 멈춤이다.
子路以為, 君子當去亂就治, 今孔子乃欲就亂,
자로子路는, ‘군자君子는 어지러운 곳을 피해 다스려진 곳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공자孔子께서는 도리어 어지러운 곳으로 가려 하신다.’고 여겼다.
故不喜說, 且曰 “無可適也則止之, 何必公山氏之適也.”
그러므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가실 만한 곳이 없으면 그만두실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굳이 공산씨公山氏에게 가려 하십니까?”라고 한 것이다.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為東周乎’者, 孔子答其欲往之意也.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為東周乎] 공자孔子께서 자로子路에게 가고 싶어 하시는 뜻으로 대답하셨다.
徒, 空也.
(공연히)이다.
言夫人召我者, 豈空然哉,
‘저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이 어찌 공연히 부르는 것이겠는가?
必將用我道也.
반드시 장차 나의 를 쓰려 해서일 것이다.
如有用我道者, 我則興周道於東方,其使魯為周乎.
만약 나의 도를 쓰는 자가 있다면 나는 나라의 동방東方부흥復興시켜 장차[其] 나라를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吾是以不擇地而欲往也.
나는 이 때문에 자리를 가리지 않고 가고자 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注‘弗擾為季氏宰 與陽虎共執季桓子’
의 [弗擾為季氏宰 與陽虎共執季桓子]
○正義曰 : 案定五年左傳曰 “六月, 季平子行東野. 還, 未至, 丙申, 卒于房.
정의왈正義曰 : 고찰하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정공定公 5년에 “6월에 계평자季平子동야東野순행巡行하고 돌아오다가 국도國都에 이르지 못하고 병신일丙申日(地名)에서 하였다.
陽虎將以璵璠斂, 仲梁懷弗與曰 ‘.’
양호陽虎여번璵璠(寶玉)을 에 넣으려 하니, 중량회仲梁懷동의同意[與]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보폭步幅을 바꾸었으니 패옥佩玉도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다.
陽虎欲逐之, 告公山不狃, 不狃曰 ‘彼為君也, 子何怨焉.’
양호陽虎가 그를 축출逐出하고자 하여 공산불뉴公山不狃에게 하니, 공산불뉴公山不狃가 말하기를 ‘저 사람이 주군主君(季平子)을 위해 그러는 것이니, 그대가 원망할 게 뭐 있는가?’라고 하였다.
旣葬, 桓子行東野, 及費.
장사葬事를 지낸 뒤에 계환자季桓子동야東野순행巡行하여 비읍費邑에 이르렀다.
子洩為費宰, 逆勞於郊, 桓子敬之,
자설子洩(不狃)이 읍재邑宰교외郊外까지 나와 맞이해 위로하니, 계환자季桓子는 그에게 경의敬意를 표하였다.
勞仲梁懷, 仲梁懷弗敬.
중량회仲梁懷를 위로하니 중량회仲梁懷경의敬意를 표하지 않았다.
子洩怒, 謂陽虎 ‘子行之乎.’” “九月乙亥, 陽虎囚季桓子.” 是其事也.
자설子洩이 노하여 양호陽虎에게 ‘그대는 중량회仲梁懷축출逐出하십시오.’라고 하였다.”라고 하고, “9월 을해일乙亥日양호陽虎계환자季桓子를 잡아 가두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일을 말한 것이다.
至八年, 又與陽虎謀殺桓子, 陽虎敗而出. 至十二年, 季氏將墮費, 公山不狃‧叔孫輙率費人以襲魯,
8년에 이르러 또 양호陽虎와 더불어 계환자季桓子살해殺害하려고 모의하였다가 양호陽虎가 패배해 출분出奔하였고, 12년에 이르러 계씨季氏비읍費邑을 허물려 하자, 공산불뉴公山不狃숙손첩叔孫輒비인費人을 거느리고 와서 나라를 습격襲擊하였다.
國人敗諸姑蔑, 二子奔齊.
국인國人공산불뉴公山不狃의 군대를 고멸姑蔑에서 패배시키니, 공산불뉴公山不狃숙손첩叔孫輒나라로 달아났다.
역주
역주1 改步改玉 : 步幅을 바꾸었으니 佩玉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로 임금의 일을 代行하는 자리에서 물러나 신하의 지위로 돌아왔으니 임금의 佩玉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禮記》 〈玉藻〉에 “임금이 尸와 함께 걸을 때에 임금은 接武(尸가 디딘 발자국의 반을 밟고 감)하고, 大夫는 繼武(尸가 디딘 발자국의 끝을 밟고 감)하고, 士는 中武(尸가 디딘 발자국에서 발 하나의 간격을 두고 따라감)한다.”고 하였으니, 각각 步幅의 廣狹이 다르다. 보폭의 廣狹을 바꾸었으면 당연히 佩玉의 등급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주2 : 이 章에 대해 崔述은 《洙泗考信錄》에서 後人의 僞撰이라고 하면서 많은 典據와 情況을 들어 辨論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春秋左氏傳》을 고찰하면 “季氏가 費邑의 城을 허물려 하자 公山弗擾가 費人을 거느리고 魯나라 國都를 襲擊하였다. 費人이 定公의 곁에까지 쳐들어오자, 仲尼가 申句須와 樂頎에게 명하여 내려가서 討伐하게 하니, 費人이 敗北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公山弗擾의 반란을 孔子께서 토벌한 것이니, 애당초 공자를 부르거나 공자가 가려 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또 孟子가 “孔子께서 《春秋》를 지으시자 亂臣賊子가 두려워하였다.”고 하였다. 公山弗擾가 이미 費人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켰다면 바로 亂臣賊子인데 공자께서 그를 도우려 하였겠는가?
그리고 또 孔子께서는 “句有用我者 期月而已可也 三年有成”이라고 하셨다. 聖人께서 ‘可’라 하고 ‘成’이라고 하시어 이처럼 謙讓하셨는데, 周禮가 아직 바뀌지 않은 이때에 공자께서 공공연히 東周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씀하였겠는가?
또 《春秋左氏傳》을 고찰하면 費人의 叛亂이 定公 12년 여름에 있었으니, 이때는 공자께서 魯나라 司寇로서 國政에 참여하고 계셨는데, 季氏의 家臣에 불과한 公山弗擾가 어찌 감히 와서 공자를 부를 수 있었겠는가? 공자께서는 바야흐로 定公을 도와 周公의 道를 행하고 계시는 때였는데, 임금을 버리고 叛人을 도우려 하였겠는가?
또 《春秋公羊傳》을 고찰하면 費城을 헐기를 주장한 분이 바로 공자였다. 公山弗擾는 費城을 헐지 않으려고 費人을 거느리고서 魯나라를 습격하기까지 하였으니, 孔子를 깊은 원수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도리어 공자를 부를 리가 있었겠는가. 여러 가지를 종합해보면 반드시 없었던 일이다.

논어주소(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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