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疏]○注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 孤竹 國名’
○正義曰:案春秋少陽篇 “伯夷, 姓墨, 名允, 字公信.
叔齊, 名智, 字公達, 伯夷之弟. 齊, 亦諡也.”
及父卒, 叔齊讓伯夷. 伯夷曰 ‘父命也.’ 遂逃去.
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 ‘盍往歸焉.’ 及至, 西伯卒,
武王載木主, 號爲文王, 東伐紂. 伯夷‧叔齊叩馬而諫曰 ‘父死不葬, 爰及干戈, 可謂孝乎.
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 采薇而食之.
”者, 是也.
地里志 “遼西令支, 有孤竹城.” 應劭曰 “故伯夷國.”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남의 지난날의〉 악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注
공왈孔曰: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疏
○正義曰:이 장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두 사람의 행실을 찬미한 것이다.
지난날의 악행을 염두에 두어 보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의 원한을 사는 일이 적었다는 말이다.
疏
○正義曰:고찰하건대, 《춘추소양편春秋少陽篇》에 “백이伯夷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이 윤允이며 자가 공신公信이다.
숙제叔齊는 이름이 지智이고 자가 공달公達인데 백이의 아우이다. 제齊도 시호이다.”라고 하였다.
태사공太史公이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가 죽자, 숙제가 군위君位를 백이에게 사양하니,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이시다.’ 하고서 마침내 도망갔다.
숙제도 임금이 되려 하지 않고 도망가니 국인國人들이 가운데 아들을 임금으로 세웠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창昌(주周 문왕文王)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말을 듣고서 ‘어찌 그에게 귀의하지 않으랴?’ 하고서 〈주周나라로 갔다.〉 주나라에 도착해보니 서백西伯이 이미 죽었다.
무왕武王이 나무로 만든 신주神主를 수레에 싣고 문왕文王이라 호칭하고서 동으로 가서 은주殷紂를 치려 하니, 백이와 숙제는 말고삐를 잡고서 ‘아버지가 죽었는데 장사도 지내지 않고서 전쟁에 나서는 것이 효도라 할 수 있는가?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 것이 인仁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간諫하였다.
무왕의 좌우가 그를 죽이려 하니 태공太公이 ‘이분들은 의義로운 사람이다.’ 하고서 부축해 돌려보냈다.
무왕이 은殷나라의 혼란을 평정하자, 천하가 모두 주周나라를 높이 받들었으나, 백이와 숙제는 부끄럽게 여겨 의리상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살면서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주려서 죽을 때에 미쳐 〈‘저 서산西山에 올라 고사리를 캐었네. 포학한 신하가 포학한 임금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도 잘못인 줄을 모르네. 신농神農과 우虞(舜)‧하夏(禹)가 죽고 없으니, 내 어디로 가겠는가? 아! 죽을 것이다. 명운이 다하였으니.’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서 마침내 수양산首陽山에서 아사餓死하였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里志〉에 “요서遼西 영지令支에 고죽성孤竹城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주注에 응소應劭는 “옛날 백이伯夷의 나라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