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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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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子張問曰 令尹子文
자장子張이 물었다. “영윤令尹 자문子文
[注]孔曰 令尹子文 楚大夫 姓鬥 名穀
공왈孔曰:영윤令尹 자문子文나라 대부이니, 성은 이고, 이름은 이고, 자는 오도於菟이다.
三仕爲令尹호대 無喜色하며 三已之호대 無慍色하고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하니 何如하니잇고
세 번 영윤令尹이 되었으되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 면직免職되었으되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으며, 옛 영윤의 정사를 반드시 새 영윤에게 일러주었으니, 어떻습니까?”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忠矣니라
충신忠臣이다.”
자장子張이 물었다.
仁矣乎잇가
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께서 말씀하셨다.
未知어니와 焉得仁이리오
“모르겠지만, 어찌 이 될 수 있겠느냐?”
[注]但聞其忠事 未知其仁也
단지 그의 충성스러운 일만을 들었을 뿐이니, 그가 한지는 모르겠다는 말이다.
崔子弑齊君이어늘 陳文子有馬十乘이러니 棄而違之하야
자장子張이 물었다.〉 “최자崔子나라 임금을 시해弑害하자, 진문자陳文子는 말 10(40匹)을 소유하였는데도 〈그 말들을〉 버리고 제나라를 떠나,
[注]孔曰 皆齊大夫
공왈孔曰:〈최저崔杼진문자陳文子는〉 모두 나라 대부이다.
崔杼作亂하니 陳文子惡之하야 捐其四十匹馬하고 違而去之하니라
최저가 반란을 일으키니, 진문자는 그를 미워하여 40필의 말을 버리고서 그곳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갔다.
至於他邦하야 則曰猶吾大夫崔子也라하고 違之하며 之一邦하야 則又曰 猶吾大夫崔子也라하고 違之하니 何如하니잇고
다른 나라로 가서 말하기를 ‘〈이곳의 대부도〉 우리나라의 대부 최자崔子와 같구나.’라고 하고서 그곳을 떠났으며, 또 한 나라로 가서 또 말하기를 ‘〈이곳의 대부도〉 우리나라의 대부 최자崔子와 같구나.’라고 하고서 그곳을 떠났으니, 어떻습니까?”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淸矣니라
청결淸潔하다.”
자장子張이 물었다.
仁矣乎잇가
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께서 말씀하셨다.
未知어니와 焉得仁이리오
“모르겠지만, 어찌 이 될 수 있겠느냐?”
[注]孔曰 文子避惡逆하야 去無道하고 求有道 當春秋時하야 臣陵其君 皆如崔子하니 無有可止者
공왈孔曰:문자文子는 간악한 역적을 피하여 도가 없는 나라를 버리고 도가 있는 나라로 찾아가려 하였으나, 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신하가 그 임금을 무시하고 침범하는 것이 모두 최자崔子와 같아서 머물 만한 곳이 없었다.
[疏]‘子張’至‘得仁’
의 [子張]에서 [得仁]까지
○正義曰:此章明仁之難成也.
○正義曰:이 장은 을 이루기 어려움을 밝힌 것이다.
‘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者,
[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弟子子張問於孔子曰 “楚大夫令尹子文, 三被任用, 仕爲令尹之官, 而無喜見於顔色,
제자 자장子張이 공자께 묻기를 “나라 대부 영윤令尹 자문子文이 세 차례 임용任用되어 영윤의 관직에 올랐으되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드러남이 없었고,
三被已退, 無慍懟之色, 舊令尹之政令規矩, 必以告新令尹, 慮其未曉也.”
세 차례 면직免職되었으되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으며, 옛 영윤의 정령政令법규法規를 반드시 새 영윤에게 일러주었으니, 이는 새 영윤이 잘 알지 못할 것을 염려해서입니다.”라고 하였다.
子文有此美行, 子張疑可謂仁,
자문子文에게 이런 미행美行이 있으니, 자장子張은 그를 인자仁者로 이를 만하다고 의심하였다.
故問曰 “何如.”
그러므로 “어떠하냐?”고 물은 것이다.
‘子曰 忠矣’者, 孔子答之, “爲行如此, 是忠臣也.”
[子曰 忠矣] 공자께서 자장에게 “그의 행위가 이와 같았으니 이는 충신忠臣이다.”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曰 仁矣乎’者, 子張復問子文此德可謂仁矣乎.
[曰 仁矣乎] 자장이 자문의 이러한 덕을 이라 이를 만하냐고 다시 물은 것이다.
‘曰 未知 焉得仁’者, 孔子答言 “如其所說, 但聞其忠事, 未知其仁也.”
[曰 未知 焉得仁] 공자께서 “너의 말대로라면 단지 그의 충성스러운 일만을 들었을 뿐이니, 그가 한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崔子弑齊君 陳文子有馬十乘 棄而違之 至於他邦 則曰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之一邦 則又曰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何如’者, 此子張又擧齊大夫陳文子之行而問孔子也.
[崔子弑齊君 陳文子有馬十乘 棄而違之 至於他邦 則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之一邦 則又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何如] 이것은 자장子張이 또 나라 대부 진문자陳文子의 행실을 들어 공자께 물은 것이다.
崔子, 崔杼也, 爲齊大夫, 作亂, 弑其君光.
최자崔子최저崔杼이니, 제나라 대부로서 변란을 일으켜 그 임금 (莊公)을 시해하였다.
陳文子惡之, 故家雖富有馬十乘(謂四十匹也), 而輒捐棄, 違去之.
진문자가 그를 미워하였기 때문에 그 집이 비록 말 10(40필)을 가진 부자였으되, 즉시 그 말들을 버리고 제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갔다.
至於他國, 亦遇其亂, 陳文子則曰 “猶吾齊大夫崔子也.” 而違去之. 復往一他邦, 則又曰 “猶吾齊大夫崔子也.” 而違去之.
다른 나라로 가서 또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변란을 만나자, 진문자는 “우리나라의 대부 최자와 같구나.”라고 하고서 그곳을 떠났으며, 다시 한 나라로 가서 진문자는 또 “우리나라의 대부 최자와 같구나.”라고 하고서 그곳을 떠났다.
爲行若此, 其人何如.
그 행위가 이와 같았으니, 그 사람이 어떠하냐고 물은 것이다.
‘子曰 淸矣’者, 孔子答言 “文子辟惡逆, 去無道, 求有道, 當春秋時, 臣陵其君, 皆如崔子, 無可止者, 可謂淸潔矣.”
[子曰 淸矣] 공자께서 자장에게 “진문자가 간악한 역적을 피하여 도가 없는 나라를 버리고 도가 있는 나라를 찾아가려 하였으나, 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신하가 그 임금을 무시하고 침범하는 것이 모두 최자와 같아서 머물 만한 곳이 없었으니, 청결淸潔하다고 이를 만하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曰 仁矣乎’者, 子張意其爲仁, 故復問之曰 “可以爲仁矣乎.”
[曰 仁矣乎] 자장은 그의 행위를 으로 여겼기 때문에 다시 “이라고 할 만하냐?”고 물은 것이다.
‘曰 未知 焉得仁’者, 孔子答言 “據其所聞, 但是淸耳, 未知他行, 安得仁乎.”
[曰 未知 焉得仁] 공자께서 “내가 들은 말에 의하면 단지 청결淸潔일 뿐이고, 다른 행실은 알 수 없으니, 어찌 이 될 수 있겠느냐?”고 대답하신 것이다.
[疏]○注 ‘孔曰’至‘於菟’
의 [孔曰]에서 [於菟]까지
○正義曰:案宣四年左傳云 “初若敖娶於䢵, 生鬥伯比.
○正義曰:고찰하건대, 선공宣公 4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당초에 약오若敖운국䢵國여인女人을 아내로 맞아 각백비鬥伯比를 낳았다.
若敖卒, 從其母, 畜於䢵.
약오若敖가 죽은 뒤에 각백비鬥伯比는 어머니를 따라가서 운국䢵國에서 자랐다.
淫於䢵子之女, 生子文焉, 䢵夫人使棄諸夢中, 虎乳之.
각백비鬥伯比운자䢵子의 딸과 사통私通하여 자문子文을 낳으니, 운부인䢵夫人이 사람을 시켜 이 아이를 운몽雲夢의 늪에 버리게 하였는데, 호랑이가 이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䢵子見之, 懼而歸.
운자䢵子가 사냥을 나갔다가 이 광경光景을 보고는 겁을 먹고 돌아왔다.
夫人以告, 遂使收之.
부인夫人이 사실대로 고하니, 운자䢵子는 드디어 사람을 보내어 그 아이를 거두어다가 기르게 하였다.
楚人, 謂乳穀, 謂虎於菟, 故命之曰 ‘鬥穀於菟’
나라 사람들은 ‘젖’을 ‘(누)’라 하고, ‘호랑이’를 ‘오도於菟(오도)’라 하기 때문에 그 아이의 이름을 ‘각곡오도鬥穀於菟’라고 하였다.
實爲令尹子文.” 是也.
이 아이가 실로 영윤令尹 자문子文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令尹, 宰也.
영윤令尹이다.
周禮, 六卿, 太宰爲長, 遂以宰爲上卿之號.
주례周禮》의 육경六卿태재太宰수장首長이므로 드디어 상경上卿의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
楚臣, 令尹爲長, 從他國之言, 或亦謂之宰, 宣十二年左傳云 “蔿敖爲宰.” 是也.
나라 신하 중에는 영윤이 수장首長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말할 때는 혹 로 말한 경우도 있으니, 선공宣公 12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위오蔿敖가 되었다.[蔿敖爲宰]”고 한 것이 이것이다.
令, 善也, 尹, 正也, 言用善人, 正此官也.
은 착함이고 은 바름이니, 착한 사람을 등용하여 관원들을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楚官多以尹爲名, 皆取其正直也.
초나라 관직에는 ‘’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 많은데, 모두 정직의 뜻을 취한 것이다.
[疏]○注 ‘孔曰’至‘去之’
의 [孔曰]에서 [去之]까지
○正義曰:云 ‘皆齊大夫’者, 並見春秋, 故知之.
○正義曰:[皆齊大夫] 모두 《춘추春秋》에 보이기 때문에 나라 대부인 줄을 안 것이다.
云 ‘崔杼作亂’者, 左襄二十五年.
[崔杼作亂]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의하면 양공襄公 25년에 있었다.
云 ‘四十匹馬’者, 古以四馬其駕一車, 因謂四匹爲乘.
[四十匹馬] 옛날에는 수레 한 대에 말 네 마리를 메웠기 때문에 4이라 하였다.
經言十乘, 故知四十匹也.
에 10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40필임을 안 것이다.
역주
역주1 於菟 : 오도
역주2 (母)[田] : 저본에는 ‘母’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 宣公 4년 조에 의거해 ‘田’으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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