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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3)

논어주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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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孔子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祿之去公室五世矣
祿(政權)이 공실公室에서 떠난 지가 5이고,
[注]鄭曰 言此之時 魯定公之初
정왈鄭曰 : 이 말씀을 하신 때는 나라 정공定公 초기初期이다.
魯自東門襄仲殺文公之子赤而立宣公으로 於是政在大夫하야 爵祿不從君出하니라
나라는 동문양중東門襄仲문공文公세자世子 을 죽이고 선공宣公을 세우면서부터 정권이 대부大夫의 수중으로 들어가서, 작록爵祿이 임금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至定公為五世矣
〈선공으로부터〉 정공定公까지가 5이다.
政逮於大夫四世矣
정권政權대부大夫에게 미친 지가 4이다.
[注]孔曰 文子‧武子‧悼子‧平子
공왈孔曰 : 4문자文子무자武子도자悼子평자平子이다.
故夫三桓之子孫微矣니라
그러므로 저 삼환三桓자손子孫쇠미衰微해진 것이다.”
[注]孔曰 三桓 謂仲孫叔孫季孫이라
공왈孔曰 : 삼환三桓중손仲孫숙손叔孫계손季孫을 이른다.
三卿皆出桓公이라 故曰三桓也
이 모두 환공桓公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삼환三桓’이라 한 것이다.
仲孫氏改其氏稱孟氏
중손씨仲孫氏는 그 를 고쳐 맹씨孟氏로 칭하였다.
至哀公皆衰하니라
애공哀公 때에 이르러 모두 쇠미衰微해졌다.
[疏]‘孔子’至‘微矣’
의 [孔子]에서 [微矣]까지
○正義曰 : 此章言魯公室微弱, 政在大夫也.
정의왈正義曰 : 이 나라 공실公室미약微弱하여, 정권이 대부大夫에게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孔子曰 祿之去公室五世矣’者, 謂政在大夫, 爵祿不從君出, 始於宣公.
[孔子曰 祿之去公室五世矣] 정권이 대부大夫에게 있어 작록爵祿노군魯君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선공宣公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이른다.
言此之時, 在魯定公之初, 故為五世矣.
이 말씀을 하신 때는 나라 정공定公 초기初期였으므로 5가 된다.
‘政逮於大夫四世矣’者, 逮, 及也.
[政逮於大夫四世矣] 는 미침이다.
言君之政令及於大夫, 至今四世矣. 謂季文子‧武子‧悼子‧平子也.
노군魯君정령政令대부大夫의 수중으로 들어간 지가 지금 4임을 말한 것이니, 계문자季文子무자武子도자悼子평자平子를 이른다.
‘故夫三桓之子孫微矣’者, 三桓, 謂仲孫‧叔孫‧季孫.
[故夫三桓之子孫微矣] 삼환三桓중손仲孫숙손叔孫계손季孫을 이른다.
三卿皆出桓公, 故曰三桓也.
이 모두 환공桓公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삼환三桓’이라 한 것이다.
仲孫氏改其氏稱孟氏.
중손씨仲孫氏는 그 를 고쳐 맹씨孟氏로 칭하였다.
以禮樂征伐自大夫出, 五世希不失, 故夫三桓子孫至哀公時皆衰微也.
예악禮樂정벌征伐대부大夫로부터 나오면 5면 잃지 않는 자가 드물기 때문에 삼환三桓의 자손이 애공哀公 때에 이르러 모두 쇠미衰微해진 것이다.
○注‘鄭曰’至‘世矣’
의 [鄭曰]에서 [世矣]까지
○正義曰 : ‘魯自東門襄仲殺文公之子赤而立宣公’者, 文十八年左傳云 “文公妃, 敬嬴生宣公.
정의왈正義曰 : [魯自東門襄仲殺文公之子赤而立宣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문공文公 18년에 “문공文公이비二妃 경영敬嬴선공宣公을 낳았다.
敬嬴嬖, 而私事襄仲.
경영敬嬴은 〈문공文公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사사로이 양중襄仲을 섬겼다.
宣公長, 而屬諸襄仲.
선공宣公이 장성하자 〈경영敬嬴은〉 선공을 양중襄仲에게 부탁하였다.
欲立之, 叔仲不可,
문공文公이 죽은 뒤에〉 양중襄仲이 선공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니 숙중叔仲이 반대하였다.
仲見于齊侯而請之.
〈그러자〉 양중襄仲제후齊侯알현謁見하고서 선공을 노군魯君으로 세워주기를 청하였다.
齊侯新立, 而欲親魯, 許之.
〈그때〉 제후齊侯는 새로 즉위하였으므로 나라와 친선親善하고자 하여 〈양중의 청을〉 허락하였다.
冬十月, 仲殺惡及視, 而立宣公.” 是也.
겨울 10월에 양중襄仲(赤)과 (赤의 아우)를 죽이고서 선공宣公을 임금으로 세웠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公羊傳作子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이〉 ‘자적子赤’으로 되어있다.
襄仲居東門, 故曰東門襄仲.
양중襄仲동문東門에 살았기 때문에 동문양중東門襄仲이라 한 것이다.
云‘至定公為五世矣’者, 謂宣公‧成公‧襄公‧昭公‧定公也.
[至定公為五世矣] 5선공宣公성공成公양공襄公소공昭公정공定公을 이른다.
○注‘孔曰 文子武子悼子平子’
의 [孔曰 文子武子悼子平子]
○正義曰 : 此據左傳及世家文也.
정의왈正義曰 :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및 《사기史記》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의 글에 의거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子)[二] : 저본에는 ‘子’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 文公 18년에는 ‘子’가 ‘二’로 되어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2 [襄仲] : 저본에는 ‘襄仲’ 2字가 없으나, “《春秋左氏傳》 文公 18년에는 ‘欲’ 위에 ‘襄仲’ 2자가 두 번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논어주소(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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