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魯自東門襄仲殺文公之子赤而立宣公으로 於是政在大夫하야 爵祿不從君出하니라
疏
‘孔子曰 祿之去公室五世矣’者, 謂政在大夫, 爵祿不從君出, 始於宣公.
言君之政令及於大夫, 至今四世矣. 謂季文子‧武子‧悼子‧平子也.
‘故夫三桓之子孫微矣’者, 三桓, 謂仲孫‧叔孫‧季孫.
以禮樂征伐自大夫出, 五世希不失, 故夫三桓子孫至哀公時皆衰微也.
注
○正義曰 : ‘魯自東門襄仲殺文公之子赤而立宣公’者, 文十八年左傳云 “文公
妃, 敬嬴生宣公.
云‘至定公為五世矣’者, 謂宣公‧成公‧襄公‧昭公‧定公也.
“녹祿(政權)이 공실公室에서 떠난 지가 5세世이고,
注
정왈鄭曰 : 이 말씀을 하신 때는 노魯나라 정공定公 초기初期이다.
노魯나라는 동문양중東門襄仲이 문공文公의 세자世子 적赤을 죽이고 선공宣公을 세우면서부터 정권이 대부大夫의 수중으로 들어가서, 작록爵祿이 임금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정권政權이 대부大夫에게 미친 지가 4세世이다.
注
공왈孔曰 : 4세世는 문자文子‧무자武子‧도자悼子‧평자平子이다.
그러므로 저 삼환三桓의 자손子孫이 쇠미衰微해진 것이다.”
注
공왈孔曰 : 삼환三桓은 중손仲孫‧숙손叔孫‧계손季孫을 이른다.
세 경卿이 모두 환공桓公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삼환三桓’이라 한 것이다.
중손씨仲孫氏는 그 씨氏를 고쳐 맹씨孟氏로 칭하였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노魯나라 공실公室이 미약微弱하여, 정권이 대부大夫에게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孔子曰 祿之去公室五世矣] 정권이 대부大夫에게 있어 작록爵祿이 노군魯君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선공宣公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이른다.
이 말씀을 하신 때는 노魯나라 정공定公 초기初期였으므로 5세世가 된다.
노군魯君의 정령政令이 대부大夫의 수중으로 들어간 지가 지금 4세世임을 말한 것이니, 계문자季文子‧무자武子‧도자悼子‧평자平子를 이른다.
[故夫三桓之子孫微矣] 삼환三桓은 중손仲孫‧숙손叔孫‧계손季孫을 이른다.
세 경卿이 모두 환공桓公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삼환三桓’이라 한 것이다.
중손씨仲孫氏는 그 씨氏를 고쳐 맹씨孟氏로 칭하였다.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대부大夫로부터 나오면 5세世면 잃지 않는 자가 드물기 때문에 삼환三桓의 자손이 애공哀公 때에 이르러 모두 쇠미衰微해진 것이다.
注
○정의왈正義曰 : [魯自東門襄仲殺文公之子赤而立宣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8년에 “문공文公의 이비二妃 경영敬嬴이 선공宣公을 낳았다.
경영敬嬴은 〈문공文公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사사로이 양중襄仲을 섬겼다.
선공宣公이 장성하자 〈경영敬嬴은〉 선공을 양중襄仲에게 부탁하였다.
〈문공文公이 죽은 뒤에〉 양중襄仲이 선공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니 숙중叔仲이 반대하였다.
〈그러자〉 양중襄仲은 제후齊侯를 알현謁見하고서 선공을 노군魯君으로 세워주기를 청하였다.
〈그때〉 제후齊侯는 새로 즉위하였으므로 노魯나라와 친선親善하고자 하여 〈양중의 청을〉 허락하였다.
겨울 10월에 양중襄仲이 악惡(赤)과 시視(赤의 아우)를 죽이고서 선공宣公을 임금으로 세웠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악惡이〉 ‘자적子赤’으로 되어있다.
양중襄仲이 동문東門에 살았기 때문에 동문양중東門襄仲이라 한 것이다.
[至定公為五世矣] 5세世는 선공宣公‧성공成公‧양공襄公‧소공昭公‧정공定公을 이른다.
注
○정의왈正義曰 :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및 《사기史記》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의 글에 의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