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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3)

논어주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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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衛靈公問陳於孔子한대
나라 영공靈公공자孔子께 군대의 항오行伍진열陳列하는 방법을 묻자,
[注]孔曰 軍陳行列之法이라
공왈孔曰 : 군진軍陣항오行伍를 진열하는 방법이다.
孔子對曰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之事 則嘗聞之矣어니와
조두俎豆의 일(俎豆를 진설陳設하는 일)이라면 들은 적이 있지만,
[注]孔曰 俎豆 禮器
공왈孔曰 : 조두俎豆예기禮器이다.
軍旅之事 未之學也라하시고
군려軍旅의 일은 배운 적이 없습니다.”
[注]鄭曰 萬二千五百人為軍이요 五百人為旅
정왈鄭曰 : 12,500이고, 500이다.
軍旅 末事 本未立이면 不可敎以末事
군려軍旅는 말단의 일이니, 근본이 확립確立되지 않았으면 말단의 일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疏]‘衛靈’至‘學也’
의 [衛靈]에서 [學也]까지
○正義曰 : 此章記孔子先禮後兵之事也.
정의왈正義曰 : 이 공자孔子께서 를 우선으로 여기고 을 뒤로 여기신 일을 기록한 것이다.
‘衛靈公問陳於孔子’者, 問軍陳行列之法於孔子也.
[衛靈公問陳於孔子] 공자孔子군진軍陣항오行伍진열陳列하는 방법을 물은 것이다.
‘孔子對曰 俎豆之事 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者, 俎豆, 禮器.
[孔子對曰 俎豆之事 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 조두俎豆예기禮器이다.
萬二千五百人為軍, 五百人為旅.
12,500이고, 500이다.
孔子之意, 治國以禮義為本, 軍旅為末, 本未立, 則不可敎以末事.
공자孔子께서는 나라를 다스림에는 예의禮義를 근본으로 삼고 군려軍旅로 삼아야 하니, 근본이 확립되지 않았으면 말단末端의 일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여기셨다.
今靈公但問軍陳, 故對曰 “俎豆行禮之事, 則嘗聞之. 軍旅用兵之事, 未之學也.”
그런데 지금 영공靈公군진軍陣만을 물었기 때문에 “조두俎豆를 사용해 를 행하는 일이라면 들은 적이 있지만, 군려軍旅를 사용해 전쟁戰爭하는 일은 배운 적이 없다.”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左傳哀十一年, “孔文子之將攻大叔也, 訪於仲尼. 仲尼曰 ‘胡簋之事, 則嘗學之矣. 甲兵之事, 未之聞也.’” 其意亦與此同.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애공哀公 11년에 “공문자孔文子태숙질太叔疾을 공격하려고 〈그 방법을〉 중니仲尼에게 묻자, 중니仲尼께서 “호궤胡簋(祭祀)의 일이라면 배운 적이 있지만 갑병甲兵(軍旅)의 일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신 일이 있는데, 그 뜻 또한 이와 같다.
軍旅甲兵亦治國之具也.
군려軍旅갑병甲兵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이다.
彼以文子非禮, 欲國內用兵, 此以靈公空問軍陳,
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공문자孔文子를 어기고서 국내國內에서 군대를 움직이고자 하였고, 여기에는 영공靈公이 공연히 군진軍陣을 물었다.
故竝不答, 非輕甲兵也.
그러므로 모두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지, 갑병甲兵을 가벼이 여기신 것이 아니다.
○注‘俎豆 禮器’
의 [俎豆 禮器]
○正義曰 : 案明堂位云 “俎, 有虞氏以梡, 夏后氏以嶡, 殷以椇, 周以房俎.” 鄭注云 “梡, 斷木為四足而已.
정의왈正義曰 : 고찰하건대,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는, 유우씨有虞氏완조梡俎를 사용하고, 하후씨夏后氏궐조嶡俎를 사용하고, 나라는 구조椇俎를 사용하고, 나라는 방조房俎를 사용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은 나무를 잘라 네 개의 다리만을 만들었을 뿐이다.
嶡之言蹷也, 謂中足為橫距之象, 周禮謂之距.
의 뜻은 (기울어짐)이니, 가운데 다리를 가로 붙은 며느리발톱 모양으로 만든 것을 이르는데, 《주례周禮》에 이것을 ‘’라 하였다.
椇之言枳椇也, 謂曲橈之也.
의 뜻은 지구枳椇이니, 구부정하게 휜 것을 이른다.
房謂足下跗也, 上下兩間, 有似於堂房.”
은 다리 밑의 받침대를 이르는데 위와 아래의 두 사이가 비슷하다.”라고 하였다.
魯頌曰 “籩豆大房.” 又曰 “夏后氏以楬豆, 殷玉豆, 周獻豆.” 鄭注云 “楬, 無異物之飾也.
시경詩經》 〈노송魯頌〉에 “변두籩豆대방大房이다.”라고 하였고, 또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하후씨夏后氏갈두楬豆를 사용하고, 나라는 옥두玉豆를 사용하고, 나라는 헌두獻豆를 사용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은 다른 물건으로 장식하지 않은 것이다.
獻, 疏刻之.
은 거칠게 구름 모양을 조각한 것이다.
齊人謂無髮為禿楬.”
나라 사람들은 대머리를 독갈禿楬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其委曲制度備在禮圖.
그 자세한 제도制度는 《삼례도三禮圖》에 자세히 실려 있다.
○注‘鄭曰 萬二千五百人為軍 五百人為旅’
의 [鄭曰 萬二千五百人為軍 五百人為旅]
○正義曰 : 皆司馬文也.
정의왈正義曰 : 〈이는〉 모두 《주례周禮》 〈하관夏官 사마司馬 서관序官〉의 글이다.
明日遂行하시다
다음날 드디어 〈나라를〉 떠나셨다.
在陳絶糧하야 從者病하야 莫能興하다
나라에 계실 때에 양식糧食이 떨어져서 따르던 제자들이 허기虛飢에 지쳐 일어나지 못하였다.
[注]孔曰 從者 弟子
공왈孔曰 : 종자從者제자弟子이다.
起也
은 일어남이다.
孔子去衛如曹 曹不容하니 又之宋하시다
공자孔子께서 나라를 떠나 나라로 가셨으나, 나라가 공자를 수용收容하지 않으니, 또 나라로 가셨다.
宋遭匡人之難하야 又之陳하시다
나라에서 광인匡人의 난리를 만나 또 나라로 가셨다.
會吳伐陳하야 陳亂이라
이때 마침 나라가 나라를 침벌侵伐하여 나라가 어지러웠다.
故乏食하니라
그러므로 양식糧食이 떨어진 것이다.
子路慍見曰
자로子路가 화난 기색으로 와서 공자孔子를 뵙고 말하였다.
君子亦有窮乎잇가
군자君子할 때가 있습니까?”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君子固窮이어니와 小人窮斯濫矣니라
군자君子는 본래 할 때가 있으나, 소인小人하면 〈분수를〉 넘는다.”
[注]濫 溢也
(넘침)이다.
君子固亦有窮時 但不如小人窮則濫溢為非
군자君子도 본래 할 때가 있으나, 소인小人하면 〈분수를〉 넘어 잘못을 저지르는 것과 같지 않을 뿐이다.
[疏]‘明日’至‘濫矣’
의 [明日]에서 [濫矣]까지
○正義曰 : 此章記孔子阨於陳也.
정의왈正義曰 : 이 공자孔子께서 나라에서 곤액困厄을 당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明日遂行’者, 旣答靈公之明日也, 遂去衛國而之於他邦也.
[明日遂行] 영공靈公에게 대답하신 다음날에 드디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신 것이다.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者, 從者, 弟子也.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종자從者제자弟子이다.
興, 起也.
은 일어남이다.
孔子適在陳, 會吳伐陳, 陳亂,
공자孔子께서 나라에 계실 때에 마침 나라가 나라를 침벌侵伐하여 나라가 어지러웠다.
故乏絶糧食, 弟子從者困病, 莫能興起也.
그러므로 양식糧食이 떨어져 따르는 제자弟子들이 허기虛飢에 지쳐 일어나지 못한 것이다.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者, 慍, 怒也.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함이다.
子路以為, 君子學則祿在其中, 不當有窮困.
자로子路군자君子학문學問을 하면 작록爵祿이 그 속에 있으니 궁곤窮困함이 있어서는 부당不當하다고 여겼다.
今乃窮困, 故慍怒而見, 問於夫子曰 : “君子豈亦如常人有窮困邪.”
그런데 지금 궁곤窮困하기 때문에 한 기색으로 와서 부자夫子를 뵙고 “군자君子도 그래 일반인들처럼 궁곤窮困할 때가 있단 말입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者, 濫, 溢也.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은 넘침이다.
言君子固亦有窮困時, 但不如小人窮則濫溢為非.
군자君子도 본래 궁곤窮困할 때가 있으나, 소인小人궁곤窮困하면 〈분수를 넘어〉 잘못을 저지르는 것과 같지 않을 뿐이라는 말이다.
○注‘孔曰’至‘乏食’
의 [孔曰]에서 [乏食]까지
○正義曰 : 云‘孔子去衛如曹 曹不容 又之宋 宋遭匡人之難 又之陳 會吳伐陳’者, 皆以孔子世家文而知也.
정의왈正義曰 : [孔子去衛如曹 曹不容 又之宋 宋遭匡人之難 又之陳 會吳伐陳] 이것은 모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의 글에 의거해 안 것이다.
如‧之, 皆訓往.
는 모두 (감)이다.
역주
역주1 俎豆 : 俎는 祭祀나 燕享에 牲體를 올려놓는 도마이고, 豆는 汁이 있는 食物을 담는 그릇이다. 이에 대한 疏의 梡俎‧嶡俎‧椇俎‧房俎와 楬豆‧玉豆‧獻豆는 그 그릇의 생김새와 장식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 것인 듯한데, 이에 대해서는 《禮記》의 疏를 단 孔穎達도 “옛 제도는 알기 어려우니, 자세히 알 수 없다.[古制難識 不可悉知]”라고 하였으니, 闕疑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 譯註를 붙이지 않는다.
역주2 序官 : 《周禮》의 〈天官〉‧〈地官〉‧〈春官〉‧〈夏官〉‧〈秋官〉 및 〈考工記〉 등 6篇의 篇首에 六官이 통솔하는 官屬의 職掌과 人員數를 대략 列記한 부분을 이른다.

논어주소(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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