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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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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晉文公 譎而不正하고
문공文公은 속이고 바르지 않았으며,
[注]鄭曰 譎 詐也 謂召天子而使諸侯朝之
정왈鄭曰 : 은 속임이니, 천자天子를 불러 제후諸侯로 하여금 조현朝見하게 한 것을 이른다.
仲尼曰 以臣召君 不可以訓이라
중니仲尼께서는 “신하로서 임금을 부른 것은 교훈으로 삼을 수 없다.”라고 하셨다.
故書曰 天王狩於河陽이라하시니 是譎而不正也
그러므로 《춘추春秋》에 “천왕天王하양河陽에서 사냥하였다.”라고 기록하셨으니, 이것이 ‘휼이부정譎而不正’이다.
齊桓公 正而不譎하니라
환공桓公은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
[注]馬曰 伐楚以公義하야 責苞茅之貢不入하며 問昭王南征不還하니 是正而不譎也
마왈馬曰 : 공정한 의리로 나라를 토벌하여, 포모苞茅공물貢物을 바치지 않은 것을 꾸짖고, 주소왕周昭王남방南方순수巡狩하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을 따져 물었으니, 이것이 ‘정이불휼正而不譎’이다.
[疏]‘子曰 晉文公 譎而不正 齊桓公 正而不譎’
의 [子曰 晉文公 譎而不正 齊桓公 正而不譎]
○正義曰 : 此章論二霸之事也.
정의왈正義曰 : 이 은 두 패주霸主의 일을 논한 것이다.
譎, 詐也,
은 속임이다.
謂晉文公召天子而使諸侯朝之, 是詐而不正也.
문공文公천자天子를 불러 제후諸侯들로 하여금 조현朝見하게 한 것을 이르니, 이것이 ‘사이부정詐而不正’이다.
齊桓公伐楚, 實因侵蔡而遂伐楚, 乃以公義責苞茅之貢不入, 問昭王南征不還, 是正而不詐也.
환공桓公나라를 토벌한 것은 실로 나라를 침공侵攻한 기회를 이용해 드디어 나라를 토벌하여, 공정한 의리로써 포모苞茅공물貢物을 바치지 않은 것을 꾸짖고, 소왕昭王남방南方순수巡狩하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을 따져 물었으니, 이것이 ‘정이불사正而不詐’이다.
[疏]○注 ‘鄭曰’至‘正也’
의 [鄭曰]에서 [正也]까지
○正義曰 : 云‘謂召天子而使諸侯朝之’者, 案左傳僖二十八年, “冬, 會于溫.
정의왈正義曰 : [謂召天子而使諸侯朝之]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28년을 고찰하건대, “겨울에 에서 회합會合하였다.
是會也, 晉侯召王, 以諸侯見, 且使王狩.” 是也.
이 회합에 진후晉侯(晉 문공文公)가 소왕昭王을 불러 제후諸侯들을 거느리고서 조현朝見하였고, 또 소왕昭王에게 사냥하게 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仲尼曰 以臣召君 不可以訓 故書曰 天王狩於河陽’者, 亦彼傳文也.
[仲尼曰 以臣召君 不可以訓 故書曰 天王狩於河陽] 이 또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28년의 글이다.
云‘是譎而不正也’ 晉侯本意, 欲大合諸侯之師, 共尊事天子, 以爲臣之名義, 實無覬覦之心,
[是譎而不正也] 진후晉侯본의本意제후諸侯의 군대를 대대적으로 규합糾合하여 함께 천자天子존경尊敬봉사奉事하고자 한 것이니, 신하의 명분과 도의를 지키려 한 것이고 실로 분수 밖의 자리를 넘보는 마음이 없었다.
但於時, 周室旣衰, 天子微弱, 忽然帥九國之師, 將數萬衆入京師, 以臨天子, 似有篡奪之說, 恐爲天子拒逆, 或復天子怖懼, 棄位出奔,
그러나 이때 나라 왕실王室이 이미 하여 천자天子미약微弱하였으니, 갑자기 아홉 나라의 군대와 수십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경사京師로 들어가서 천자天子알현謁見하려 하였다면 찬탈篡奪하러 왔다는 풍설風說이 퍼져, 천자天子입조入朝를 거부하거나 혹은 천자天子가 겁을 먹고 왕위王位를 버리고 출분出奔할 우려가 있었다.
則諸侯心實盡誠, 無辭可解,
그리된다면 충성을 다하는 제후諸侯들의 진심眞心을 무슨 말로도 해명解明할 수가 없다.
故自嫌彊大, 不敢朝王,
그러므로 강대彊大한 것을 스스로 혐의쩍게 여겨 감히 입조入朝하지 않은 것이다.
故召諸侯來會于溫.
그러므로 제후諸侯들을 불러와서 에서 회합한 것이다.
溫去京師路近, 因加諭, 令王就會受朝.
경사京師와 거리가 가까우므로, 그 기회를 이용해 넌지시 깨우쳐 으로 하여금 회합會合에 와서 조현朝見을 받게 한 것이다.
天子不可以受朝爲辭, 故令假稱出狩, 諸侯因會遇王, 遂共朝王, 得盡君臣之禮, 皆孔子所謂譎而不正之事.
그러나 천자天子조현朝見을 받기 위해 온 것으로 문사文辭를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냥을 나온 것으로 가칭假稱하고, 제후諸侯회합會合으로 인해 을 만나 드디어 함께 조현朝見하여 군신君臣의 예를 다한 것으로 〈문사文辭를 만든 것이니〉 이것이 모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휼이부정譎而不正’의 일이다.
聖人作法, 所以貽訓後世. 以臣召君, 不可以爲敎訓,
성인聖人을 만드는 것은 후세에 교훈을 남기기 위함인데, 신하로서 임금을 부르는 것은 교훈이 될 수 없다.
故改正舊史.
그러므로 구사舊史개정改正하신 것이다.
舊史當依實而書, 言晉侯召王, 且使王狩.
구사舊史에는 응당 사실에 의거해 기록하여, “진후晉侯을 불렀고, 또 으로 하여금 사냥하게 하였다.”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仲尼書曰 “天王狩于河陽”, 言天王自來狩獵于河陽之地, 使若獵失其地, 故書之以譏王然.
중니仲尼는 “천왕天王하양河陽에서 사냥하였다.”라고 기록하여, 천왕天王이 스스로 와서 하양河陽에서 수렵狩獵한 것으로 말하여, 마치 〈천자天子가 스스로 사냥을 나왔고,〉 사냥한 장소만이 합당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기록하여 기풍譏諷한 것처럼 한 것이다.
[疏]○注 ‘馬曰’至‘譎也’
의 [馬曰]에서 [譎也]까지
○正義曰 : 云‘伐楚以公義 責苞茅之貢不入 問昭王南征不還’者, 案左傳僖四年 “春, 齊侯以諸侯之師侵蔡,
정의왈正義曰 : [伐楚以公義 責苞茅之貢不入 問昭王南征不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4년을 고찰하건대, “봄에 제후齊侯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蔡潰, 遂伐楚.
나라 군대가 흩어져 도망가니 드디어 나라를 토벌하였다.
楚子使與師言曰 ‘君處北海, 寡人處南海, 唯是風馬牛不相及也, 不虞君之涉吾地, 何故
초자楚子제후諸侯군중軍中으로 사신使臣을 보내어 말하기를 ‘임금(齊 환공桓公)께서는 북해北海에 살고 과인寡人남해南海에 살아 바람난 우마牛馬도 서로 미칠 수 없는 먼 거리이니, 임금께서 우리의 땅에 오실 줄은 생각지 못하였습니다.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라고 하자,
管仲對曰 ‘昔召康公命我先君大公曰 「五侯九伯, 汝實征之, 以夾輔周室.」
관중管仲이 대답하기를 ‘옛날에 소강공召康公께서 우리 선군先君 태공太公에게 하기를 「5와 9을 그대가 실로 토벌討伐하여 나라 왕실王室보좌輔佐하라.」라고 하고서,
賜我先君履, 東至于海, 西至于河, 南至于穆陵, 北至于無棣.
우리 선군先君에게 정벌征伐할 수 있는 범위를 으로는 바다까지 西로는 황하黃河까지 으로는 목릉穆陵까지 으로는 무체無棣까지로 정해주셨습니다.
爾貢苞茅不入, 祭不供, 無以縮酒, 寡人是徵.
그런데 나라가 바치는 포모苞茅가 들어오지 않아 천왕天王의 제사에 공급供給하지 못해 축주縮酒할 수 없게 하였으니, 과인寡人은 이 죄를 묻습니다.
昭王南征而不復, 寡人是問’” 是也.
그리고 소왕昭王남방南方순수巡狩하다가 돌아오지 못하셨으니, 과인寡人은 이것도 묻습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이 이것이다.
[疏]杜注云 “苞, 裹束也. 茅, 菁茅也. 束而灌之以酒爲縮酒.
두예杜預에 “는 싸서 묶음이고, 정모菁茅(띠)인데, 를 묶어 세워놓고서 술을 부어 술을 거른다.
尙書‘包匭菁茅’ 茅之爲異, 未審.
상서尙書》에 ‘싸서 궤에 담은 정모菁茅이다.’라고 하였으니, 〈나라의〉 가 다른 곳의 와 다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昭王, 成王之孫,
소왕昭王성왕成王손자孫子이다.
南巡狩, 涉漢, 船壞而溺. 周人諱而不赴, 諸侯不知其故,
남방南方순수巡狩할 때 한수漢水를 건너다가 배가 부서져 익사溺死하였는데, 주인周人이 숨기고 부고赴告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후諸侯가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故問之”
그러므로 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案禹貢 “荊州包匭菁茅” 孔安國云 “其所包裹而致者.
상서尙書》 〈우공禹貢〉을 고찰하건대, “형주荊州공물貢物은 싸서 궤에 담은 정모菁茅이다.”라고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은 “싸서 바치는 것이다.
匭, 匣也.
(작은 상자)이다.
菁以爲菹,茅以縮酒”
은 김치를 담그는 데 쓰고, 는 술을 거르는 데 쓴다.”라고 하였다.
郊特牲云 “縮酌用茅” 鄭玄云 “泲之以茅, 縮去滓也”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술을 거르는 데 를 사용한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은 “를 사용해 술을 걸러서 찌꺼기를 제거함이다.”라고 하였다.
周禮甸師 “祭祀共蕭茅” 鄭興云 “蕭字或爲莤,
주례周禮》 〈전사甸師〉에 “제사祭祀소모蕭茅공급供給한다.”라고 하였는데, 정흥鄭興은 “‘’字는 ‘’字인 듯하다.
莤讀爲縮.
독음讀音이다.
束茅立之祭前, 沃酒其上, 酒滲下去, 若神飮之,
띠를 묶어 신위神位 앞에 세워놓고서 그 위에 술을 부으면 술이 새어 내려가는 것이 마치 이 마시는 것 같다.
故謂之縮. 縮, 滲也.
그러므로 그것을 이라 하니, 은 새는 것이다.
故齊桓公責楚不貢苞茅, 王祭不共, 無以縮酒.”
그러므로 환공桓公나라가 포모苞茅를 바치지 않아 천왕天王의 제사에 공급하지 못하여 축주縮酒할 수가 없게 한 것을 꾸짖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杜預用鄭興之說.
두예杜預정흥鄭興을 채용하였다.
孔安國以菁與茅別. 杜云 “茅, 菁茅” 則以菁茅爲一,
공안국孔安國별개別個의 물건으로 보았는데, 두예杜預는 “정모菁茅이다.”라고 하였으니, 정모菁茅일물一物로 본 것이다.
特令荊州貢茅, 必當異於餘處,
우공禹貢〉에 특별히 형주荊州로 하여금 를 바치게 한 것은 필시 다른 곳의 와 다름이 있어서일 것이다.
但更無傳說, 故云 “茅之爲異, 未審也”
그러나 다시 전해지는 말이 없기 때문에 〈두예杜預가〉 “가 다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沈氏云 “大史公封禪書云 ‘江淮之間, 一茅三脊’
심씨沈氏는 “태사공太史公의 〈봉선서封禪書〉에 ‘장강長江회수淮水 사이의 〈는〉 한 줄기에 척골脊骨이 셋이다.’라고 하였다.
杜云 ‘未審’者, 以三脊之茅, 比目之魚, 比翼之鳥, 皆是靈物, 不可常貢,
두예杜預가 ‘자세히 알 수 없다.’라고 한 것은 삼척모三脊茅비목어比目魚비익조比翼鳥는 모두 영물靈物이어서 항상 진공進貢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故杜云‘未審’也”
그러므로 두예杜預가 ‘자세히 알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舊說皆言漢濱之人以膠膠船, 故得水而壞, 昭王溺焉, 不知本出何書.
구설舊說에는 모두 “한수漢水 가의 사람들은 아교로 붙여 배를 만들었기 때문에 물을 만나자 부서져서 소왕昭王익사溺死하였다.”라고 하는데, 어떤 책에 처음 나온 설인지 모르겠다.
역주
역주1 (千)[十] : 저본에는 ‘千’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千은 十의 誤字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十’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謂)[諷] : 저본에는 ‘謂’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謂는 諷의 誤字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獵) : 저본에는 이 글자가 있으나 阮刻本에 “各本에 ‘狩’ 아래에 ‘獵’字가 衍文으로 남아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獵’을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4 [也] : 저본에는 없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해 보충하였다.
역주5 (主)[王] : 저본에는 ‘主’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主’는 마땅히 ‘王’이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王’으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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