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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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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로라
체제禘祭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한 뒤부터는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注]孔曰 禘祫之禮 爲序이라
공왈孔曰:체제禘祭협제祫祭소목昭穆차서次序를 살피기 위함이다.
於太祖니라
그러므로 훼묘毁廟의 신주와 군묘群廟의 신주를 모두 태조묘太祖廟에 모셔놓고서 합사合祀한다.
灌者 酌鬱鬯灌於太祖以降神也
울창주鬱鬯酒를 떠서 태조묘太祖廟 앞의 땅에 부어 을 내리게 하는 의식이다.
旣灌之後 列尊卑하고 序昭穆이어늘
강신降神한 뒤에는 존비尊卑소목昭穆의 순서에 따라 신주를 배열한다.
而魯하야 躋僖公하야 亂昭穆이라
그런데 나라는 역사逆祀하여, 희공僖公의 신주를 민공閔公의 신주 위로 올려 소목을 어지럽혔다.
故不欲觀之矣시니라
그러므로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신 것이다.
[疏]‘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의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正義曰:此章言魯禘祭非禮之事.
○正義曰:이 장은 나라가 체제禘祭를 지내는 것이 에 어긋난 일임을 말한 것이다.
禘者, 五年大祭之名.
는 5년에 한 번씩 지내는 대제大祭의 이름이다.
灌者, 將祭酌鬱鬯於太祖以降神也.
은 제사 지내려 할 때에 울창주鬱鬯酒를 떠서 태조묘太祖廟 앞의 땅에 부어 을 내리게 하는 의식이다.
旣灌之後, 列尊卑, 序昭穆.
강신降神한 뒤에는 존비尊卑소목昭穆의 순서에 따라 신주를 배열한다.
而魯逆祀, 躋僖公, 亂昭穆.
그런데 노나라는 역사逆祀하여, 희공僖公의 신주를 민공閔公의 신주 위로 올려 소목昭穆을 어지럽혔다.
故孔子曰 “禘祭自旣灌已往, 吾則不欲觀之也.”
그러므로 공자께서 “체제禘祭에 울창주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한 뒤부터는 나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신 것이다.
[疏]○注 ‘孔曰’至‘觀之’
의 [孔曰]에서 [觀之]까지
○正義曰:云 ‘禘祫之禮 爲序昭穆 故毁廟之主及群廟之主 皆合食於太祖’者,
○正義曰:[禘祫之禮 爲序昭穆 故毁廟之主及群廟之主 皆合食於太祖]
鄭玄曰 “魯禮, 三年喪畢, 而祫於太祖, 明年春, 禘於群廟.
정현鄭玄은 “나라 는 3년상을 마치면 태조묘太祖廟에서 협제祫祭를 지내고, 다음 해 봄에 여러 선군先君체제禘祭를 지낸다.
之後, 五年而再, 以, 新死之主, 又當與先君相接.
그런 뒤에 5년 사이에 은제殷祭를 두 차례 지내고서 원조遠祖의 신주를 비로소 조묘祧廟로 옮겨 모시고, 신사자新死者의 신주를 선군先君들과 서로 만나게 한다.
故禮因是而爲大祭, 以審序昭穆,
그러므로 에, 이로 인해 대제大祭를 거행하여 소목의 순서를 살피게 한 것이다.
故謂之禘.
그러므로 이를 라 한다.
禘者, 諦也, 言使昭穆之次, 審諦而不亂也.”
(살핌)이니, 소목의 순서를 자세히 살펴 어지럽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祫者, 合也. 文二年公羊傳曰 “大祫者何,
이니, 문공文公 2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대협大祫은 무엇인가?
合祭也.
합제合祭함이다.
其合祭奈何,
합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毁廟之主, 陳于太祖, 未毁廟之主, 皆升合食於太祖.” 是也.
훼묘毁廟의 신주를 태조묘太祖廟에 진열하고, 아직 훼묘하지 않은 군묘群廟의 신주까지 모두 함께 태조묘에 모시고서 제사 지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 ‘灌者 酌鬱鬯灌於太祖以降神’者, 郊特牲云 “周人尙臭, 灌用鬯臭. 鬱合鬯, , 灌以, 用玉氣也.
[灌者 酌鬱鬯灌於太祖以降神]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주인周人향취香臭를 숭상하여, 강신降神[灌]할 때에 향취가 나는 울창주를 사용하였다. 울금초鬱金草를 달인 물을 창주鬯酒(기장으로 담근 술)에 타는 것은 향취가 지하地下[陰]의 연천淵泉(黃泉)에 도달하게 하기 위함이고, 강신할 때에 울창주를 규장圭璋으로 떠서 땅에 붓는 것은 의 기운이 서리게 하기 위함이다.
.” 鄭注云 “灌, 謂以酌鬯, 始獻神也.”
강신을 마친 뒤에 〈종묘에서 나와 묘정廟庭에서〉 희생犧牲을 맞이하는 것은 〈먼저〉 향취를 지하에 전하여 신의 강림을 구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에 “규찬圭瓚으로 창주鬯酒를 떠서 처음 신에게 올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鬱, 鬱金草, 釀秬爲酒, 煮鬱金草和之. 其氣, 故曰鬱鬯.
울금초鬱金草이니, 검은 기장으로 빚은 술에 울금초를 달인 물을 타면 그 향기가 조창調暢(막힘없이 퍼짐)하기 때문에 울창鬱鬯이라 한 것이다.
言未殺牲, 先酌鬱鬯酒灌地, 以求神於太祖廟也.
이는 희생을 죽이기 전에 먼저 울창주를 땅에 부어 태조묘에 신이 강림하기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云 ‘旣灌之後 列尊卑 序昭穆’者, 言旣灌地降神之後, 始列木主, 以尊卑陳列太祖前, 太祖東鄕, 昭南鄕, 穆北鄕.
[旣灌之後 列尊卑 序昭穆] 이미 울창주를 땅에 부어 강신한 뒤에 비로소 목주木主(나무로 만든 신주)를 배열하여 존비尊卑의 서차에 따라 태조의 신주 앞에 진열하는데, 태조의 신주는 동향해 앉히고, 는 남향, 은 북향해 앉힌다.
, 父曰昭, 子曰穆.
그 밖에 손자는 왕부王父(祖父)와 같은 에 배치하는데, 라 하고, 이라 한다.
昭取其鄕明, 穆取其北面尙敬.
소는 그 신주가 밝은 쪽을 향해 앉은 데서 뜻을 취한 것이고, 목은 신주가 북면北面하여 공경을 중시하는 데서 뜻을 취한 것이다.
三年一祫, 五年一禘, 禘所以異於祫者, 毁廟之主陳於太祖, 與祫同, 未毁廟之主, 則各就其廟而祭也.
3년에 한 번 협제祫祭를 지내고, 5년에 한 번 체제禘祭를 지내는데, 체제가 협제와 다른 것은, 훼묘毁廟의 신주를 태조묘太祖廟에 진열하는 것은 협제와 같으나, 훼묘하지 않은 신주에게는 각각 그 로 가서 제사 지내는 것이 다를 뿐이다.
云 ‘而魯逆祀 躋僖公 亂昭穆 故不欲觀之’者, 春秋 “文二年秋八月丁卯, 大事于太廟, 躋僖公.” 公羊傳曰 “躋者何,
[而魯逆祀 躋僖公 亂昭穆 故不欲觀之] 《춘추春秋》에 “문공文公 2년 가을 8월 정묘일丁卯日태묘太廟에 체제를 지낼 때에 희공僖公의 신주를 민공閔公 위로 올렸다.”고 하였는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는 무엇인가?
升也.
올린 것이다.
何言乎升僖公,
어째서 희공僖公을 올렸다고 말하였는가?
譏.
비난한 것이다.
何譏爾,
어째서 비난하였는가?
逆祀也.”
역사逆祀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何休云 “升, 謂禮.
하휴何休는 “서상西上(서쪽을 상위上位로 삼음)의 를 이른다.
昭穆, 指父子.
소목昭穆부자父子를 가리킨다.
近取法春秋,惠公與莊公, 當同南面西上, 隱‧桓與閔‧僖, 亦當同北面西上, 繼閔者在下.
〈멀리에서 법례法例를 취할 필요 없이〉 가까이 《춘추春秋》에서 법례를 취하더라도 혜공惠公장공莊公의 신주를 당연히 같이 남면南面해 앉히고서 서쪽을 상위上位로 삼았고, 은공隱公환공桓公민공閔公희공僖公의 신주도 당연히 같이 북면北面해 앉히고서 서쪽을 상위上位로 삼았으니, 민공閔公을 계승한 희공의 신주를 민공의 신주 아래에 앉힌 것이다.
文公緣僖公於閔公爲庶兄, 置僖公於閔公上, 失先後之義,
그런데 문공은 희공이 민공의 서형庶兄이란 이유로 희공의 신주를 민공의 신주 위에 앉혀 선후의 도리를 잃었다.
故譏之.” 是知當閔在僖上.
그러므로 비난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에서 민공의 신주를 희공의 신주 위에 앉힌 것이 마땅했음을 알 수 있다.
今升僖先閔, 故云 “逆祀.”
그런데 지금 희공의 신주를 올려 민공의 신주 앞에 안치하였기 때문에 ‘역사逆祀’라 한 것이다.
二公位次之逆, 非昭穆亂也.
〈그러나 이는〉 두 위차位次를 뒤바꾼 것뿐이고 소목을 어지럽힌 것은 아니다.
此注云 “亂昭穆.” 及魯語云 “將躋僖公, 曰 ‘非昭穆也.’
이 주에는 “소목을 어지럽혔다.”고 하였으나, 《국어國語》 〈노어魯語〉에 “희공의 신주를 민공 위로 올리려 하자, 종유사宗有司가 ‘소목의 차례에 맞지 않는다.’고 하니,
弗忌曰 ‘我爲, 明者爲昭, 其次爲穆, 何常之有.’”
불기弗忌가 ‘내가 종백宗伯이 되어, 현명한 분을 (왼쪽)에 모시고, 그 다음 분을 (오른쪽)에 모시려는 것이니, 〈소목에〉 어찌 일정한 규칙이 있는가?’라고 하였다.”고 하였으니,
如彼所言, 又似閔僖異昭穆者,
이 말대로라면 또 민공과 희공을 소목을 달리하여 모신 것 같다.
位次之逆, 如昭穆之亂, 假昭穆以言之, 非謂異昭穆也.
그러나 위차를 거스른 것이 소목을 어지럽힌 것과 같기 때문에 소목을 가탁하여 말한 것뿐이고, 〈참으로〉 소목을 달리하였다는 말이 아니다.
若兄弟相代, 卽異昭穆, 設今兄弟四人皆立爲君, 則祖父之廟, 卽已從毁.
만약 형제가 서로 대를 이어 임금이 된 이들을, 이들이 죽은 뒤에 소목을 달리하여 모실 경우 가령 지금 형제 네 사람이 모두 임금이 되었다면 그 조부祖父는 즉시 훼철毁撤해야 한다.
知其理必不然, 故先儒.
그 사리가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선유先儒 중에 이런 말을 한 분이 없다.
以此逆祀失禮, 故孔子不欲觀之也.
역사逆祀는 예가 아니기 때문에 공자께서 보고자 하지 않으신 것이다.
역주
역주1 昭穆 : 宗廟를 배치하는 차례이다. 天子는 七廟를 세우는데, 중앙에 太祖廟를 세우고, 昭와 穆에 각각 祧廟를 하나씩 세우고, 昭에 考廟, 穆에 王考廟, 소에 皇考廟, 목에 顯考廟를 세운다. 代盡한 조상은 그 묘를 毁撤하고서 그 신주를 祧廟의 夾室로 옮겨 모신다. 祧廟는 功德이 있어 遷廟하지 않고 대대로 奉祀하는 두 廟를 이르니, 周나라의 경우, 文王廟와 武王廟가 이에 해당한다. 제사를 지낼 때는 자손들도 소목의 순서로 배열해 서서 예를 행한다.
역주2 毁廟之主 : 代盡하여 廟를 毁撤하고서 祧廟로 옮겨 奉安한 조상의 신주를 이른다.
역주3 群廟之主 : 현재 宗廟에 봉안하고서 봉사하는 조상의 신주를 이른다.
역주4 合食 : 合祀이다. 여러 신주를 한곳에 모셔놓고서 제사함이다.
역주5 逆祀 : 신주의 위차를 뒤바꿔 배치하고서 지낸 제사를 이른다. 魯나라 僖公은 閔公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으니, 그 신주의 위차가 민공의 뒤에 있는 것이 당연한데, 文公이 자기 아버지 희공이 민공의 형이라 하여 민공의 신주를 아래로 내리고 희공의 신주를 민공의 신주 위에 모시고서 제사 지낸 것을 이른다. 《春秋公羊傳 文公 2년》
역주6 自爾 : 自此와 같다.
역주7 殷祭 : 성대한 제사이니, 곧 3년에 한 번 지내는 祫祭와 5년에 한 번 지내는 禘祭를 이른다.
역주8 遠主初始入祧 : 遠主는 代盡한 5代祖의 신주이니, 곧 대진한 조상의 신주를 비로소 祧廟로 옮겨 모신다는 말이다. 3년의 喪期가 끝나면 新死者의 神主를 宗廟에 奉安해야 하므로 대진한 5대조의 신주를 종묘에서 모셔내어 祧廟에 봉안한다.
역주9 臭陰達於淵泉 : 臭는 香臭이고, 陰은 陰濕한 地下이고, 達은 到達이고, 淵泉은 深淵과 黃泉이니, 곧 降神할 때 울창주를 땅에 붓는 것은 향취가 지하의 연천에 계시는 신령에게 도달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역주10 圭璋 : 朝聘이나 제사 때에 사용하던 玉製器具인데, 여기서는 圭瓚(옥으로 자루를 만든 국자)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11 旣灌……致陰氣也 : 강신을 마친 뒤에 희생을 맞이하는 것은 먼저 향기를 지하에 있는 신에게 전하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陳澔의 《禮記集說》에 “울창주를 땅에 부은 뒤에 희생을 맞이하는 것은, 먼저 향기를 地下[陰]에 전하여 神의 降臨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향기를 지하에 전하는 것이다.[灌後 乃迎牲 是欲先致氣於陰以求神 故云致陰氣也]”라고 하였다.
역주12 圭瓚 : 圭로 자루를 만든 국자 모양의 玉製酒器이다.
역주13 芬芳調暢 : 芬芳은 향기이고, 調暢은 막힘없이 퍼져나감이다.
역주14 其餘孫從王父 : 一昭一穆 이외의 신주는 손자의 신주를 조부와 같은 列에 모신다는 말이다. 종묘에 신주를 배열하는 제도는 一昭에 高祖를 모시고 二昭에 祖를 모시며, 一穆에 曾祖를 모시고 二穆에 父를 모시니, 父子는 소목이 다르고 祖孫은 소목이 같다.
역주15 西上 : 서쪽을 上位로 삼음이니, 곧 僖公의 신주를 閔公의 신주 서쪽(왼쪽)으로 옮겨 안치하고서 희공을 상위로 삼았다는 말이다.
역주16 宗有司 : 宗廟의 일을 담당한 官吏이다.
역주17 宗伯 : 周代에 六卿의 하나로 종묘의 제사를 주관하던 長官이다.
역주18 無作此說 : 형이나 아우가 형이나 아우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을 경우, 비록 형제라 하더라도 그 신주는 부자처럼 소목을 달리하여 모셔야 한다고 말한 이가 없다는 말이다.

논어주소(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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